영하 23도
둘째 날, 새벽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숙소에서 나와 승용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 안에 내장되어 있는 외부 온도 알림이 순간 영하 29도를 가리켰다. 말도 안 돼! 너무 추워서 기계도 맛이 갔다는 생각을 순간 하면서 빙판 천지인 도로를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집회 장소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 40분. 외부 온도 알림이 영하 23도로 바뀌었다. 나중에 뉴스를 통해 알았지만 그날 철원의 최저 기온이 영하 17도였다는데 분명히 승용차에 새겨진 온도는 영하 29도에서 23도를 찍었다. 체감 온도를 가리킨 것인지, 아니면 있었던 장소의 특수한 지형의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금년 들어 최고로 추운 날씨에, 최고로 추운 지역에서 1박 2일의 사역을 감당하고 돌아왔다. 전국 텔레비전 방송에서 철원과 제천이라는 지역이 동시에 소개되는 유일한 프로그램이 일기예보이듯이 나 역시 추위에 관하여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에서 목회를 한 지 17년째라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지만, 철원에 가서는 기죽고 왔다. 눈다운 눈까지 내려 완전히 겨울 왕국이 된 날, 새벽 집회에 삼삼오오 앉아 있는 약 30여 명의 철원평화교회 신자들을 보고 순간 울컥했다. 그들에게 이렇게 운을 떼고 설교를 시작했다. 여러분은 살아 있는 순교인 새벽 예배에 나온 영웅들이라고. 그것도 영하 23도에 나온 순교자라고. 아주 오래 전, 미국에서 암 전문의로 활동하는 원종수 권사의 간증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원 박사가 시카고에 거주할 때, 새벽예배에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영하 20도 정도로 기온이 떨어졌고, 엄청난 눈까지 내렸다고. 그날따라 차 시동이 걸리지 않아 하나님께 오늘은 새벽예배를 쉬겠다고 다짐하면서 한 번 다시 시동을 걸었는데 시동이 걸려 할 수 없이 차량으로 약 20분 정도가 걸리는 교회를 향해 억지로 갔다고 술회했다. 막상 그렇게 어렵사리 교회에 도착했건만 담임목사도 새벽에 안 나와 아무도 없는 교회 문을 열고 혼자 그 추운 예배당에 앉았는데 갑자기 주위가 따뜻해지면서 이런 음성이 들렸다고 한다. 종수야! 왔니? 네. 하나님, 아버지가 좋아서 왔어요. 그러자 다시 음성이 이렇게 들렸단다. “종수야!, 나는 네가 와서 너무 기쁘단다. 너무 좋단다. 나는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너를 좋아한단다.” 제천도 철원만은 못하지만 만만치 않게 추운 도시다. 부교역자가 부재였을 때, 한 동안 새벽 예배 차량을 인도하던 어느 추운 겨울날, 약속된 장소에 차가 도착하면 마치 미라처럼 온 몸을 중무장하고 두꺼운 옷으로 둘러싼 채로 교회 차량을 기다리는 지체들이 있었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을 맞으며 새벽을 깨우려는 교우들이 기다리고 있는 감동을 맛보았다. 김기석 목사가 쓴 어느 책에 이런 글이 실려 있음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어머니들이 신앙을 지키던 60-70년대, 교회에 가면 톱밥 난로가 전부였던 가난한 시대였다. 그 때 어머니를 따라 새벽예배에 가서 발과 손이 시려 부들부들 떨 때, 어머니들이 무릎을 꿇고 열심히 기도하셨다. 어머니들이 기도를 마치고 일어난 그 자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얼어붙은 눈물 자국들이 흥건히 보였다.” 2020년 2월 9일, 이제 그 눈물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 눈물 때문에 오늘 나와 당신이 이만큼 주 안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그렇게 안 살고도 기세 등등이다. 오히려 새벽예배는 농경 시대의 구시대적 산물이기에 폐지해야 한다고 역정을 낸다. 톱밥 난로는 전설의 고향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되었다. 중앙난방 격인 빵빵한 히터가 나오는 따뜻한 예배당에서 각종 현대의 이기(利器)들로 편안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배당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건만, 그 어느 교회에도 어머니의 눈물 자국은 보이지 않는 시대로 전락되고 있다. 해서 이렇게 말하면 요즈음 젊은 아이들이 말하는 언어로 표현하자면 꼴통 목사라고 공격을 받겠지만 그래도 한 마디를 남기고 싶다. “한국교회에 새벽예배가 사라지는 그 날, 한국교회도 사라진다.”
영하 23도까지 곤두박질하고 폭설이 내린 철원에 새벽을 깨우기 위해 교회에 나와 앉아 있는 성도들을 보면서 아직 내 사랑하는 교회들이 심정지가 되지 않고 가냘프나마 호흡하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새벽 기도는 목사가 목사답게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아딧줄이요, 성도가 성도로서 21세기를 살아낼 수 있는 영적 산소호흡기다. 새벽마다 교회에서 다시 기도의 눈물 자국이 새겨질 수 있을까! 먹먹하지만 그렇게 되기를 중보해 본다. 더불어 그 추운 철원에서 목양일념의 일사각오로 분투하고 있는 후배 목사의 사역이 자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철원 평화교회의 부흥과 승리가 있기를 두 손 모아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