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대학원 학기 강의를 시작된 지 5주가 되었습니다. 1년 전, 처음 사역을 할 때 예상보다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참여도는 물론 몰입도가 대단히 빠르게 교수의 강의에 빨려 들어오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갖고 있던 차라, 이번 학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의 기대는 지난 5주 수업 결과, 조금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기대 이하였습니다. 이번 학기 강의 준비는 1년 전에 비해 더 철저하게 준비했고, 미흡했던 부분들을 보완하려고 노력했기에 교수의 역할을 하는 제 입장에서는 이번에 만나는 학생들은 조금 더 수업의 질에 있어서 선배들에 비해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나름 생각했는데 4번에 걸친 수업의 결과물은 제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 유감스럽다는 생각이 진했습니다. 그렇게 미온적이었던 학생들이 5주차 강의를 진행하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였습니다. 4주차 강의의 제목이 ‘목회 리더십과 독서’였는데 이 강의에서 학생들이 나름 충격과 도전이 동시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신학도로 치열한 공부를 해 왔는가,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지식에 있어서 얼마나 느슨한 태도로 달려왔는가, 정글이라는 목회 현장을 너무 쉽게 보아 왔던 것은 아닌가, 목사가 얼마나 목숨을 걸고 공부하는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나누는 동안 적지 않은 도전이 임한 것 같아 다행이었습니다. 5주차 강의 시간, 예수님의 리더십을 나눌 때, 그 분의 리더십은 ‘체다카’(정의)와 ‘미슈파트’(공의)의 실천적 리더십을 갖고 계셨으며, ‘스프랑크니조마이’(내장이 끊어지는 아픔)가 기초가 된 공감의 리더십으로 섬기셨던 분임을 나누는 시간에 학생들의 마음이 강의의 현장이지만 은혜의 블랙홀로 빠져 들어오는 영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SNS 계정으로 과대표가 립 서비스용으로 교수에게 5주차 수업이 끝나자 메일을 보냈습니다. “교수님 잘 내려가셨나요? 늘 교수님 강의에 도전 받고 결단하고 있어요. 또 다른 원우들도 원래 리액션들이 조신 조신하고 웃는 소리만 크지만 많은 원우들이 너무 좋은 강의라 많이 도전 받고 있답니다.” 또 다른 여학생 원우가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어제 하교 길. 교수님의 강의 녹취를 다시 들으며 귀한 가르침과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며 돌아왔습니다. 감사드려요.” 제가 대학원에 출강을 하는 것은 상업적인 일이라 나가는 일이 아닙니다. 상업적인 마인드로 나간다면 오히려 저에게는 데미지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일을 하는 것은 개인적인 생업을 병행해야 하기에 심신이 너무 피곤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조국교회를 위하여 마지막 열차에 올라탄 마음으로 헌신한 제자들의 면면이 너무나 고맙고 귀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은 지난한 길입니다. 척박한 여정입니다. 외로운 길입니다. 앞으로는 더 더욱. 그러기에 그 정글 같은 목회 현장에서 먼저 알고 깨달았던 실천신학적인 교훈들을 선배 입장에서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그들에게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주는 것이 주의 일이기에 기쁨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한 학생들이 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지금 선지동산에서 밀려오는 졸음과 싸우며 주의 종으로 조각되어가고 있는 제자들이 현장에 나아가 번영신학에 함몰된 괴물로 변질되지 않도록, 수백 억 원의 예상을 집행하는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며 이 일은 십자가를 물려주는 일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이와는 정반대로 맡겨주신 양떼들을 체다카와 미슈파트의 실천을 기초로 언제나 스프랑크니조마이의 공감의 사랑을 전하는 아름다운 선한 목자들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부족한 사람은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합니다. 이제 조금씩 반응하는 제자들이 보여 힘을 얻습니다. 지난 주간에 핵 펀치 급 자폭 테러를 당했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