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게 하옵소서!
참 오랜만에 명절이었지만 고향에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로. 하나는 명절이 주일과 너무 가까이 있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체력적으로 온전히 13일 주일을 섬기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아버님의 11주기 기일이 23일이기에 동기간들 모두가 이천에서 모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해서 아들이 제천에 내려와 추석 명절을 같이 하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교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목회의 내용을 많이 튼 까닭도 있겠지만, 이번 추석 명절에는 더 더욱 교우들이 가족들과 함께 여유롭게, 행복한 시간을 가지도록 배려하기 위해 연휴 3일 동안 새벽예배를 쉬기로 큰마음도 먹었습니다.
연휴 3일 동안, 아무도 없는 새벽에 교회 본당에서 홀로 새벽예배를 드리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홀로 기도하는 본당은 너무 제게는 큰 홀이었습니다. 매일 새벽에 그랬던 것처럼, 새벽예배를 쉬겠다고 공지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기도하러 오는 교우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교회 정문을 열었습니다. 외등들을 밝히고, 본당에 들어와 강단 LED 십자가 조명을 켜고, 가장 작은 음향으로 새벽예배 용 찬송가 음악 CD를 켜고, 주님의 면전에 섰습니다. 순간, 젊은 목사 시절 몇 안 되는 교우들과 함께 시작했던 치열한 새벽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밀양에서 목사 안수를 위해 단독 목회를 시작할 때, 새벽 4시가 되면 약속이나 한 듯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던 노 집사님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너무 소중했던 보물들이었습니다. 파주에서 청년 목회를 할 때, 새벽 운행을 하며 무서운 호랑이 선생이 되어 참 잠 많을 시절의 청년들을 깨워 새벽예배를 통한 열정을 불태웠던 일들도 상기되었습니다. 그런 청년들은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이 왠지 서글펐습니다. 조직 교회였던 진해 교회에 부임하여 특새를 강조하며 일주일에 소 예언서 강해를 한 권씩 감당하며 강행군했던 그 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천에서 이제 목회의 마지막 필드에 들어선 목사로서 나는 어떻게 목양하며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가를 깊이 묵상하며 혼자만의 새벽을 지켰습니다.
이번 학기 첫 수업을 하는 시간에 학생 한명이 이렇게 제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목회 리더는 영성을 훈련을 통해 만들어간다고 하셨는데, 교수님은 지금 어떻게 영성 훈련을 감당하고 계시는지요?” 라고 약간은 도발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학생의 질문을 받고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목사는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엑사고라조마이’(건지는 것)할 수 있는 최적은 새벽입니다. 새벽을 실패한 목사는 건강한 영성을 유지할 없습니다. 저는 새벽을 철저하게 깨워 기도합니다. 목회자들은 새벽을 깨우는 것에 대해 핑계대지 말아야 합니다.”
금요일 새벽, 개인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서 새벽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교우들의 자리에 번갈아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들을 위해 화살기도를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 이 자리는 장로님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아무개 권사님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는 아무개 집사님의 자리입니다. 여기는 아무개 성도의 자리입니다. 이들이 있어서 세인교회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종이 이들의 자리에 대신 앉았습니다. 이들을 요한복음 13:1절 말씀 그대로 끝까지 사랑하여 주시고, 강복하여 주옵소서.”
그들을 자리를 쓰다듬고 일어서는 데 왠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컥하는 감동이 스며들어 또 다른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그렇게 집중하여 기도하고 본당 창문의 커튼을 여는데 이미 동이 터 있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활짝 개여 있는 하늘이라 그런지 하늘이 눈부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하가’하며 기도했습니다.
“주여, 다시 한 번 이 땅의 교회들에 영적 동이 트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