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게 교회다.
밀양에 농촌교회인 대곡교회에서 목사 안수 조건인 단독목회를 할 때였습니다. 장년 가정이 5가정이라 대 심방이라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때가 되면 심방을 했습니다. 처음 부임하여 인사 심방을 할 때, 지금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노 집사님이 예배를 마치고 도시에서 온 새파랗게 젊은 전도사 부부를 섬긴다고 내 온 것이 커피에 관한 에피소드는 정겨웠던 러브스토리였습니다. 이름 하여 ‘사발 커피 사건’입니다. 도시에 거주하는 아들이 고향에 올 때 가지고 온 당시에 시골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알 커피를 큰 사발에 담아서 듬뿍 넣은 흑설탕과 내 놓으며 많이 드시라던 그 끔찍했던(ㅎㅎ) 기억이 아름답게 남아 있습니다. 다 안 마시면 시험에 들까봐 인정사정없이 그 사발 커피를 들이키던 그때의 소박한 추억은 지금도 심방을 할 때마다 저를 울컥하게 하는 이야깃거리입니다. 아내의 친구가 현역 시절 몸 담았던 서울에 소재한 모 군인교회는 제법 큰 대형교회였습니다. 대전에서 근무를 하다고 남편이 서울로 근무지를 옮기는 바람에 등록하게 된 그 교회에 가서 신기하게 생각한 것 중에 하나는 교회 안에 소그룹을 위한 룸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소그룹 성경 공부반을 위한 공간으로 알았던 그 장소는 다름 아닌 구역 예배 장소였습니다. 직업 군인들 중에 고급 장교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던 그 교회에는 대심방이나 구역 예배를 집에서 드리지 않는 신자들을 즐비했는데 이유는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집을 개방하기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신자들을 위해 배려한 끝에 교회 건물 내에 소그룹 장소를 세팅한 것이었습니다. ‘에클레시아’ 가 교회라는 신학적 정체성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그래서 목사도, 그 누구도 집에 오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는 그들을 사람들은 그냥 편안하게 그리스도인라고 부를 것입니다. 어불성설입니다. 지난주부터 봄 대심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두 셀을 마쳤는데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성도들 가정, 가정에 얽히고설킨 기도제목을 점검했습니다. 자녀들의 근황도 나누었습니다. 누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지근거리에서 교우들의 절박함을 경청했습니다. 작년에 숟가락이 몇 개였는데, 금년 봄에는 식구가 늘어서 그 숟가락이 조금 늘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가정에 도착해서는 지나간 추억들을 소담스럽게 반추하며 함께 웃고 울었습니다. 목사가 새벽에 교우의 이런 기도제목을 기도의 테이블에 올려 놓고 기도한다는 위로도 전했습니다. 모든 예배를 마치고 함께 식탁공동체도 나누며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대 심방을 진행하면서 봄바람의 내음 때문에 처녀 가슴처럼 설레는 감동도 느끼고, 진정성을 갖고 교우의 속내를 위로하며 무엇보다도 목사로 살아가며 내 왜 성도들의 이 ‘삶의 자리’에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뭉클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도 드리게 되었습니다. 1년 사시사철 담임목사와 인격적인 교제를 하지 못하는 교회, 아니 이제는 그 교제의 감동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폐쇄적인 이기적 집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교회를 보면서 그게 교회인가, 괴물이지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올 때가 너무 많습니다. 심방 후, 식탁공동체를 함께 나누며 서로 수다를 떨고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로 깔깔대는 지체들을 보며 이렇게 읊조려 봅니다. “그래, 이게 교회지!” 그래서 5월이나 6월 즈음에 세간에 내놓을 세 번째 출간 예정 책 제목의 가 제목을 두 가지로 올려놓았습니다. “시골목사로 살아내기” 또 하나 “시골목사의 수다 떨기”
어떤 게 좋을까요? 이상은 시골 목사의 수다 떨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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