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지! 서울신학대학에 입학을 해서 목사가 되겠다고 공부할 때 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지평과 성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서 나름 서울신학대학에서의 공부는 최고의 신학 공부라고 생각하며 학업에 정진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무지하게 시작했던 신학생 시절을 마감하는 학부 마지막 학기에 수강한 기독교윤리학은 저에게 참으로 많은 사고의 변화를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소개한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와 ‘옥중 서간’을 만나면서 동시에 마틴 부버의 ‘ICH UND DU’를 만나면서 그동안 너무나 획일화 된 이론의 주입에 너무 길들여져 있는 나를 발견하고 신학의 지평과 외연을 확장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당시 단독목회를 시작한 때였기에 목사 안수에 대한 이모저모의 혜택이 주어진 M.A 과정을 본 대학원에서 이수하면서 이런 제 생각은 더없이 굳어졌습니다. 그러던 어간, 정글 같은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을 위해 몸으로 뛰며 사역을 하면서 보수적인 신학적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의 ‘목회의 상황화와 다양화(이 단어 속에는 상당히 많은 함의가 포함되어 있음)’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제가 선택한 것은 진보적인 신학의 경험이라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실행한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M 과정의 입학은 지금 생각을 해보아도 저에게는 모험이었습니다. 첫 학기, 서울신학대학에서 공부한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회학적인 신약 성서 해석의 진수를 보여준 하워드 클락 키의 ‘신약성서 이해’ 그리고 서중석 박사의 ‘복음서 해석’에서 받았던 충격은 적어도 저에게는 벼락이었습니다. 교단 신학교에는 이런 것이 있다고 겉핥기로 대충 때웠던 양식비평과 편집비평 그리고 전승 및 원전 비평으로 접근한 민영진 박사의 ‘구약 석의’ 를 공부하면서 얼마나 내가 무지한 성서신학의 소유자였는지를 실감나게 깨닫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몰트만과 판네베르그의 ‘희망의 해석학’과 ‘자연신학’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생태신학’과 씨름하는 조직신학의 새로운 방법을 만나면서 전혀 기초가 안 되어 있는 내가 이 학문을 따라갈 수 있을까를 놓고 학업 포기까지 염두 했던 수치스러운 기억이 저에게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결국 이 학문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어떻게 목사로서 바른 신학에서 배태된 말씀을 교우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에 정신이 번쩍 들어 두 번째 대학원 과정 기간 동안 쌍코피가 터져 가는 강행군 끝에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진해에서 목회를 하던 탓에 전업학생으로 계속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차선으로 선택한 D-Min 코스워크 과정에서 만났던 ‘요하임 예레미아스’, ‘로즈마리 튜터’, ‘헨리 루백’, ‘울리히 단네만’, ‘토마스 뮌처’ 등은 우물 안 개구리로 머물러 있었던 저를 한 단계 뜀박질하도록 해 준 좋은 선생님들이었습니다. 특히 루백(Henri De Lubac)의 ‘Origen on the Principles’를 통 번역하여 발제를 준비할 때, 처음으로 체휼했던 ‘사람이 공부를 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소회를 느끼면서 이상한 쾌감(?)을 맛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저에게는 큰 자부심으로 우뚝 서 있는 추억입니다. 아들이 지난 학기 서울신학대학 신대원을 졸업하고 지금 에비가 갔던 길을 가기 위해 준비 중에 있습니다. 한 학기 연대 본대학원 청강을 하며 입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수업하는 구약전승사 수업을 들으면서 아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게, 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선택한 길이 바른 신학과 본인을 더 수준 높은 신학의 장으로 업그레이드 해 주는 좋은 선택의 호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에비를 훌쩍 뛰어넘는 날이 빠르게 오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코피가 터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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