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하면서 부교역자가 함께 동역을 해 준 시기를 계산해 보니 30년 목회 여정 중에 21년 동안이었습니다. 이모저모로 부족한 담임목사와 함께 동역해 준 부교역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 한 번 전합니다. 19년 들어, 30대에 했던 새벽예배 운행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새벽예배를 운행할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교역자를 청빙하기 위해 인터뷰를 하는 중에 부임 조건이 새벽예배 운행에 부담을 지우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리 부교역자 청빙이 절박해도 그 정도 수준의 부사역자는 들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어쩔 수 없이 담임목회자가 이 부담을 떠안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 같아 봉고차 운전대를 새벽에 다시 잡았습니다. 오전 3시 30분에 기상하여 세면을 하고, 옷을 추려 입은 후 예배당에 나가 난방을 세팅하고, 승합차를 원격 시동으로 약 5분 동안 예열한 뒤, 카스테레오를 도구 삼아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한 곡을 듣고 출발합니다. 중무장한 교우들이 기다리고 있는 지역으로 성도들을 픽업하기 위해 제천 시내를 차례로 돌다보면 어느새 차 안은 히터의 열기로 인해 훈훈해집니다. 새벽을 깨우는 한 명, 한 명을 태워 교회로 돌아오면 오전 4시 30분, 이윽고 묵상하고 오전 5시 새벽 성경 통독 기도회를 마치고 다시 오전 5:55분 즈음 봉고차 운전대를 잡고 제천 지역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오면 오전 6시 30분이 됩니다. 이제 내일 모레면 이순의 나이에 접어든 저로서 새벽예배 운행이 체력적으로 상당히 부담이 되는 이 사역을 언제까지 역동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조금은 염려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의 재정적인 상태를 볼 때 새벽예배 운행을 감당하는 시간제 파트 기사를 모집해서 사역을 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함에도 제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중대형교회가 아닌 교회에서 버스 기사를 채용하는 것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충분히 신앙적인 자기부인의 헌신만 있으면 가능한 사역을 유급직으로 돌리는 것에 대한 목사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신도들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을 요구하고 운운하는 시대가 지났음을 해를 넘길 때마다 절감합니다. 주의 종으로 부름 받은 부교역자 청빙 대상자까지도 운전을 기피하는 지경에 성도들에게 새벽예배 차량 운행을 종용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가늠해 볼 때, 차제에 제 스스로 새벽예배 운행을 맡는 것이 도리어 본질적인 목양의 리더십을 갖고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데에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에 지난 주간부터 30대 목사로 돌아가 보기로 용기를 냈습니다. 새벽예배 운행을 담임목사가 진행하면서 다행히 이제 새벽예배를 나오는 교우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해하지 않아 감사하고, 담임목사의 운행에 대하여 송구스러워하는 마음들이 있어 그나마 위안을 받으며 새벽예배 운행을 재개했습니다. 차제에 지면을 빌어, 육체적으로 너무 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날마다 똑같은 마음으로 낯 빛 한 번 바꾸지 않고 새벽마다 자기부인의 헌신을 감당해주고 있는 우정제 권사님께 다시 한 번 진정성이 있는 감사의 목례를 올립니다. 한 해를 바꾸는 시기동안 경험한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정말로 두려운 것은 이러다가 너무나도 이기적인 자아 형성으로 중무장한 현대판 신자들이 어느 날, 목회자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는 그 때가 올까 심히 두렵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제 대신 예배를 드려줄 사람을 대신 샀습니다.” 말 그대로 용역 예배 시대가 도래 하지는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새벽예배 운행, 아직은 괜찮습니다. 육십이 넘으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