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퀄라이저(equalizer)
아내가 결혼 때 혼수용품으로 준비해 가전제품 유일하게 3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한 것이 있습니다. 오디오입니다. 우리나라 전자제품의수명은 아무리 길어야 15년 정도인데 거의 30년이라는 세월을 버텼으니 칭찬 받을 만합니다. 그 중에 제일 신기한 것은 앰프입니다. 중간 중간 고장이 나서 치명적인 것이 아니면 부품을 교체하는 정도로 버텼는데 이제 고장이 나면 방법이 없어 조마조마한 것이 사실입니다. 가지고 있는 앰프의 부품이 단종 된 지는 이미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LP로 음악을 듣는 것이 제 취미 중에 하나이기에 앰프가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지인들은 아시겠지만 앰프의 기능 중에 ‘이퀄라이저’(equalizer)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음성 신호 등의 전체적인 주파수 특성을 가공하고 조절하여 알맞은 음역을 유지시키는 장치’ 정도로 어렵지만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쉽게 다시 풀자면 우리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청각의 가청 주파수를 가장 기분 좋게 맞추어 주는 기계 장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한 쪽으로 주파수가 기울어져 소리가 좋지 않아 귀에 거슬리면 이 이퀄라이저를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소리의 음이 치우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앰프를 통해 배우는 교훈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균형의 중요성입니다. 어떤 이들은 제가 균형을 말하면 색깔이 분명하지 않다고 타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보지는 못했지만 혹 조금의 극단을 달리는 사람은 저에게 회색분자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래 이념적, 혹은 사상적 이분법을 내 편, 너 편으로 분리하려는 척도로 쓰려는 자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모 정당의 대표가 현 정부의 기관장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그의 돌직구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삼류가 일류를 깔보았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렇게 말한 장본인이 정치에 입각했을 때,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자리에 들어오는 악수(惡手)를 두는 것 같아 내심 안타까워했던 감회가 있습니다. 그냥 지금의 자리에 있으면 존경받을 만한 인생을 살터인데 굳이 시궁창과 같은 정치판에 들어오는 것에 대한 유감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 장본인이 이 발언을 한 것입니다. 이 발언의 깊이를 들추어보면 복합적인 정치구도적인 내용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발언입니다. 그래서 그 내용 자체에 대한 지지와 거부는 제게 관심 밖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 발언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게 했습니다. 기업을 일군 그래서 막대한 경제적 창출과 이윤을 국가에 준 재벌이라는 일류를 감히 조그마한 별 볼일이 없는 출신의 삼류가 건드렸다는 불편한 심기의 발로인 이 표현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인간, 뭐지? 일류는 삼류를 마음대로 유린해도 되고, 삼류는 일류를 건드리면 안 되는 발상이 무엇일까? 민주적 발상인가? 저에게는 가장 민주적인 정부에 적임자인 것처럼 수없이 발언한 그의 공격에서 극단적 파시즘의 악취가 풍기는 것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습니다. 때문에 매우 유감스러웠습니다. 누가 재벌을 일류로 정의했는가? 삼류들이 그들을 일류로 정의해 주었습니까? 어불성설도 이런 어불성설이 어디에 있습니까? 삼류가 일류를 깔보았다는 말에서 나는 왜 조백헌이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삼류입니까? 일류라고 자칭하는 무례한 자들이 만들어 낸 폭력적인 단어가 삼류라는 것을 그들만 모르는 것일까? 지난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교회가 혹시 모를 지양의 고착점인 차별함과 결별하고 반드시 지향해야 할 성별함의 구별성을 메시지로 전하면서 교우들과 함께 나누었던 금언과도 같은 문장을 무례함과 건방짐의 극치를 보여 준 그 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차제에 한 마디를 하고 싶습니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편 가르고 싶지는 않지만 그가 언급한 단어 그대로 말하고 싶습니다. “삼류도 일류를 깔보아야 그게 공평한 민주국가이지 않겠는가?”
엔니노 모리코네가 만든 영화 ‘미션’의 OST 인 ‘넬라 판타지아’가 찌찍거리는 LP 음반으로 나오는 데 서재에 그 웅장함이 가득합니다. 내친 김에 이퀄라이저 상태가 좋은지 다시 한 번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음색이 조금 불편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