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 2017년은 독일의 비텐베르크에서 교회사의 사전 중에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수록되어 있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신학교 졸업 30년, 목사 안수 25년이 되는 나름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평범한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지만 예외 없이 생애에 잊지 못할 의미를 주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승화된 삶을 만들어내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매일반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25,30년 동안의 성역(聖役)의 과정을 반추해 보니 나름 못내 아쉬웠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쉬움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목양의 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아침은 지난 시간들을 반추하는 여유를 가져보았습니다.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신학교 졸업을 6개월 앞둔 1986년 가을, 나는 유대인 출신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부버((Martin Buber)를 만났습니다. “자기의 창문을 통해서 응시하는 무신론자가 자기가 만든 거짓된 하나님의 상(像)에 사로잡힌 신앙인보다 하나님에게 더 접근해 있다.” 벼락같이 떨어진 이 비수는 내 심장에 박혔습니다. 신학교 교문을 나서면서 건방지게도 이렇게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하나님, 어느 교회, 어느 땅에서 목회를 하든지 자기가 만든 거짓된 하나님의 상에 사로잡힌 교회가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 다짐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길을 가야하며, 수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인지 가늠도 못한 채, 입으로 여는 무모함이었는지를 훗날 목양터에서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1992, 4,30일, 청주 서문교회 강단에서 무릎을 꿇고, 목사 로브를 착용한 채 목사 안수기도를 받던 시간 하나님께 세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사람에게 무릎을 꿇는 목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봉착해도 물질에 무릎을 꿇는 비겁한 목사가 되지 않겠습니다. 오늘부터 은퇴하는 날까지 정치하는 목사가 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면전에서 고백한지 30년, 25년이 속절없이 흘렀습니다. 언제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 뒤돌아보면 순간이었는데. 부패한 중세 가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오늘 다시 영성신학의 거인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마이스터 엑카르트(Meister Eckhart)의 촌철살인이 몇 년 전에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무엇인지를 기억하는 것이 먼저다.”(매튜 폭스,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p,684) 목회를 시작한 지 30년, 목사로 산지 25년이 된 2017년 저는 참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반추해 보니 촌스럽기 그지없는 지난 30,25년의 삶의 줄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에 천착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엑카르트의 고언을 받은 이후부터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더 많이 묵상하며 나아가려는 틀 정비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진행형으로. 이렇게 몸부림치는 이유는 그래야 남은 목회의 여정을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야 은퇴한 이후에 아쉬움을 극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야 졸업식 날 신학교 교문을 나설 때 다짐했던 그 결기에 더 가깝게 근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야 목사 안수를 받던 날, 흘리던 눈물 사이로 다짐했던 그 결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고 피리어드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목양터의 이야기 마당을 쓰고 있는 이 새벽 시간, 북 웨일즈가 낳은 천제 솔리스트라고 칭송받고 있는 알레드 존스가 부르는 바흐 구노의 아베 마리아가 천국의 방언처럼 서재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 호사 속에서 30,25년의 반추를 통해 공명해주는 울림들이 더 큰 은혜로 나의 심장을 두들겨 주는 고즈넉한 새벽 미명입니다. 이제 시작하는 설교 준비 시간에도 은혜가 지속되기를 두 손 모아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