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출신의 심리학자이자 최고의 지성으로 뽑히는 마이클 폴라니가 자기의 역작인 ‘개인적 지식’에서 이렇게 논한 것을 읽으면서 왠지 모른 위로를 받았다. “어떤 주제를 검토하는 과정은 그 주제에 대한 탐구는 물론이고 우리가 거기에 접근할 때 사용하는 우리의 근본 신념에 대한 해석도 포함된다. 즉 탐구와 해석의 변증법적 조합 말이다. 우리의 근본 신념은 그런 과정을 밟으며 계속해서 재고되기는 하지만 그 자체의 기본 전제 범위 내에서 그렇게 될 뿐이다.”(p,62) 이 글을 읽다가 오늘 목사로 살면서 목마른 상태에 있는 나의 갈함에 시원한 생수와 같은 목축임을 경험했다. 교회 공동체를 섬기며 사역하는 오늘의 목사로서 가장 힘든 갈등은 교회가 성장되지 않는 것도 아니요, 사역의 형편이 안락해지지 않는 것도 아니요, 교회의 물리적인 힘과 능력이 많아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21세기에 목회를 목사로서 날마다 고민하고 지쳐가게 하는 요소는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이라는 근본 신념을 정치가, 이성이, 관념이, 과학이, 철학이, 심지어는 신학까지 포기하라는 무차별적인 공격이다. 진보적인 스펙트럼으로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언급하면 종북 좌빨 빨갱이라고 몰아붙인다. 보수적 스펙트럼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면 보수 꼴통이라고 공격한다. 탐구와 해석의 변증법으로 종교가 해석되고 또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이성적으로 성찰하려는 가치는 분명히 존중받아야 하는데 또 그것이 건강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념은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유대인 학자인 조너선 색스는 ‘차이의 존중’(Dignity of difference)에서 “차이가 전쟁으로 이어질 때 쌍방 모두 패배하며, 거꾸로 차이가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할 때는 모두가 승리한다.”(p,51)고 갈파했는데 오늘 내 조국교회는 전자에 함몰되어 있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아 아쉽다. 해서 이래 저래 이왕 먹는 욕이니 왕창 먹기로 결심한다. 폴라니의 말대로 그 자체의 기본 전제 범위를 사수하기로 말이다. “예수는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예비일 늦은 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