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2024-04-15 10:57
작성자 Level 10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자라고 부른다그러나 내가 왜 가난한 이들에게 굶주리는지를 물으면 그들을 나를 빨갱이라 부른다.”(김기석저,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p,229에서)

브라질 출신의 대주교 돔 헬더 까마라의 경험에 관한 소회입니다읽다가 밑줄을 그어 놓았습니다절절해서 말이죠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압살하는 괴물은 강제(强制)하는 폭력입니다누군가에게 자기의 생각을 주입시키고 그 생각을 따르지 않으면 아주 불순한 존재로 낙인찍는 바로 그런 폭력 말입니다지난 주간제천에 거주하는 지인 한 명이 저에게 이런 소회를 피력했습니다.

목사님제가 원하는 세상은 상식이 통하는 세상입니다이번 새 정부가 이런 세상을 만들어 줄까요?”

지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정부가 하는 것일까그리고 잠정적으로 내린 저의 결론은 정부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었습니다상식이 통하는 세상어떤 세상인가저는 돔 헬더 까마라주교가 전술한 선긋기가 사라지는 세상이라 단언합니다.

목회를 하는 목사로서 가끔 탄식할 수밖에 없는 어이없음을 경험하곤 합니다목사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 일이라고 하면 참 괜찮은 목사라고 보수적 성향이 있는 성도들이 박수를 쳐 줍니다그러나 그 목사가 세월호는 진상을 반드시 규명해야 하는 일이라고 역설하면 돌변하여 불순한 빨간 목사라고 매도합니다반대의 경우도 매일반입니다세월호 사건에 대한 유족의 입장을 지지하면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역사적 의식이 있는 꽤 괜찮은 목사라고 평가하며 응원합니다그러나 그 입으로 동성애가 죄라고 역설하면 수구적인 사상을 버리지 못한 구태의 목사라고 공격합니다이런 모순덩어리인 흑백논리식의 강제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그런데 아픈 것은 이 기막힌 현상이 한국교회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복음주의 교회 안에서 자라난 우리는 십일조에 대한 상식에 대하여 별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십일조에 관한 담론도 교계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또 하나의 논쟁거리입니다십일조에 대한 토론의 구도에 진입하면 항상 도마 위에 오르는 성경적 텍스트가 마태복음 23:23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주님의 의도하심은 분명 이 텍스트에서는 십일조는 강조하면서도 그것에 비해 결코 과소평가하면 안 되는 미슈파트(정의)와 체다카(공의)를 상실한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서슬이 시퍼런 주님의 경고입니다그런데도 자기의 고집에 치우쳐 십일조만을 강조하는 몰상식한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시는 주님의 메시지는 의미심장합니다해서 개인적으로 저는 이 본문을 해석할 때면 언제나 미슈파트와 체다카의 회복이라는 가장 상식적인 교회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서는 것에 한 표를 던지며 주석합니다이걸 전제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주님이 선언하신 이 문장에서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또 하나의 구절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상식은 균형입니다균형을 잃은 신앙은 강제요폭력입니다.

지난 주간에 새롭게 선출된 국가 리더십이 서민들을 위한 섬김의 리더십 정권이 되도록 중보하자고 쓴 제 글 때문에 지체로부터 빨간 목사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헌데 듣고 보니 제가 아픈 것은 빨간 목사라는 소리를 들어 가슴 아픈 것이 아니라 그것이 폭력인지 모르는 그 무지함을 소신이라고 강제하는 그 아픔이 더 아팠습니다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균형 잡힌 사회인 것처럼 상식이 통하는 교회는 균형을 잃지 않는 교회입니다그래서 주님의 말씀이 더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