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부였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말이 지난 수요일부터 가슴을 내리쳤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은 이 세상에 사랑할 사람이 오직 나 하나 뿐 인 것처럼 사랑하시는 사랑이다.” 나는 가끔 불경하게도 이 문장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에 어머니라는 단어로 대치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할 사람이 오직 나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시는 존재가 어머니 말고 누가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보고 또 다른 존재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 했나요? 부모님의 돌아가심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고통이기에. 모든 자식이 그런 것 것처럼 부족한 사람 역시 지난 주, 천붕의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1928년생이시니까, 금년 어머님은 89세이셨습니다. 이렇게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줄 수 있겠습니까 만은 그러나 속속히 들여다보면 이 숫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한 복판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경험한 산 증인으로 역사를 살아왔다는 말이고 당신에게 근현대사의 격동기에 펼쳐진 엄청난 사건들을 직접 눈으로 몸으로 견험하고 체휼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엄청난 사건들이 당신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다만 당신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오직 ‘3남 1녀의 우리 아이들’이었습니다. 이 대명사 앞에서 당신은 여자로서의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으셨고, 심신의 피로함도 문제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한 가지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진액으로 만드셔서 자식들의 골수에 주입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사신 엄마를 보면서 못난 저는 시인 심순덕이 말한 것처럼 ‘엄마는 당연히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천하의 불효한 저는 지난 주간 ‘엄마는 그래도 안 되는 것’임을 알고 후회하며 울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은 다분히 유교적 냄새가 진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적 발걸음 역시 단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우리 아이들’ 때문이었습니다. 뛰어난 고등교육을 받을 시대에 사신 분이 아니기에 어머니는 마땅한 갖고 계신 지식도 일천(日淺)하셨습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그 어려운 교리적인 앎, 신학적인 지식의 충만함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당신의 몸이 부스러진다하더라도 기도를 통하여 자식들의 잘 됨을 볼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는 각오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셨던 어찌 보면 참 이기적인 신앙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하는 자식인 저는 어머니의 그런 신앙을 타박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당신에게는 전부이셨기에. 부교역자를 고향에 먼저 보내야 했기에 설 명절 연휴 기간 동안 교회를 비울 수 없어 한 주간 미루어 지난 주 월요일에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병원에서 뵈었을 때, 호흡이 너무 가빠 고통스러워하시던 어머니, 해서 맥박이 137까지 오르셨던 어머니, 이제는 의학적으로 어떤 것도 해드릴 수 없는 어머니의 가여운 육체를 보고 한없이 울며 하나님께 제발, 어머님의 영혼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한지 48시간이 채 안 되어 수요일 오전 어머니의 소천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람 마음이 왜 그리 간사한지 소천소식을 듣고 나자 덜컹 그토록 어머님의 소천을 위해 기도한 불효막심한 죄 때문에 또 한 번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에 이제는 고통도 애곡함도 없이 안기신 어머니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난 자식은 왜 이리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어 있는지 이론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어머님의 장례 예배를 인도한 친구 목사의 설교가 또 한 번 멍들어 있는 부족한 사람의 가슴을 시퍼렇게 때립니다. “엄마라는 단어는 자식이라는 단어의 일체의 모든 것을 사랑으로 쓸어 담는 블랙홀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그렇게 사신 어머니, 89년이라는 세월을 그렇게 사신 어머니이시기에 저는 죽는 날까지 그 사랑을 제 마음의 한 칸에 보관하려 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너무 상투적인 인사말이지만 마지막으로 어머님의 영정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엄마,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엄마 영원히 사랑할 겁니다. 엄마, 엄마, 사랑하는 나의 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