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아주 옛날, 노래 참 잘하는 가수인 이선희씨가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물거리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오 끝내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초라한 속죄가 옛 이야기처럼 뿌연 창틀의 먼지처럼 오 가슴에 쌓이네.” 여기까지만 보면 이 노래가 유행가 가사인지 복음성가 가사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사가 참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인간이라는 동물은 추억을 만들고 또 남기는 유일한 피조물입니다. 헌데 그렇게 남긴 추억의 책장들을 넘기다보면 노랫말처럼 어떤 경우에는 끝내 이루지 못한 아쉬움으로 넘쳐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초라한 속죄가 말 그대로 옛 이야기처럼 뿌연 창틀에 먼지처럼 가슴에 소복이 쌓이는 회한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 참 유감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2015년 마지막 주일을 만났습니다. 이 때 즈음이면 역시 2015년의 추억의 책장을 뒤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왠지 12월 달력은 왜 그렇게 초라해 보이는지... 저만의 병인가요?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리 세인 지체들 역시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항상 아쉬움이 남는 이 맘 때입니다. 이런 생각이 출렁거리면 항상 또 다시 스멀대며 올라오는 오기가 있습니다. 내년에는 이런 회한을 갖지 않을 거야. 내년에는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내년에는 아쉬움이 없게 할 거야. 등등. 허나 그게 어디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이랍니까? 지난주에 신비주의 신학자인 마이스터 엑카르트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깜짝깜짝 놀라는 그의 말들을 만나면서 너무 행복한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돌멩이도 하나님을 드러낸다.” 이것은 동양의 샤먼적인 신앙의 발언이 아닙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신학적인 의도는 “피조물은 하나님의 메아리이고, 피조물은 하나님의 의사전달”이라는 심오한 영성의 고백입니다. 엑카르트를 읽으면서 전술한 오기가 아니라 너무 자연스러운 오기가 생겼습니다. 나는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오기 말입니다. 내가 추억의 책장을 넘길 때 참 괜찮은 소망의 흔적들을 남길 수 있다는 오기 말입니다. 돌멩이도 하나님을 드러내는데. 2015년을 이제 한 주 남겨두었습니다. 끝까지 잘 달려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루라는 시간의 한 올을 엮어 하나님의 메아리로 살고, 하나님의 의사전달로 살기만 한다면 나와 여러분의 2015년의 추억의 책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감동의 글월들로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인교우들의 추억의 책장들이 아름답기를 기도해 봅니다. PS: 아직 오른쪽 손을 조심해서 쓰라고 의사가 권했지만 용기를 내 두 손으로 워드 작업을 하니 너무 행복하네요. 목양터 이야기마당을 쓰고 나니 손이 다시조금 붓기는 했지만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