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서재에는 아주 오래 전에 구입한 턴테이블이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머리가 복잡할 때 종종 듣는 LP 판 레코드도 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 쉬는 날에는 서재에서 커피 한 잔 끓여 놓고 비틀즈의 명곡‘YESTERDAY’를 듣고 있노라면 영락없이 그 옛날 1980년 초에 학부를 다닐 때 DJ들이 음악을 틀어주는 음악다방에 와 있는 향수를 느끼곤 합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회귀본능에 밝아진다는 말을 합니다. 그것은 정답인 듯합니다. 저 역시 옛날의 것들이 그리워지고 산과 들에 핀 꽃들을 보면 요즈음은 왜 그리 예뻐 보이는 지 늙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둥, 늙어간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면 조금은 슬퍼하실 수 있는 분이 있을 것 같아 다른 용어로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저는 1961년생 베이비부버 출신 입니다. 286세대이지요. 그래서 당연히 디지털 시대에 익숙하지 않고 아날로그 체계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들고 다니는 휴대폰은 폼을 잡으려고 갤럭시 노트를 들고 다니지만 실상은 그 안에 있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의 상당수는 이용하고 있지 못하는 앱-맹입니다. 물론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를 하면 저 역시 아주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을 압니다. 그런데 솔직한 말로 이야기를 하면 공부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게으름이 주된 이유이겠지만 왠지 다양한 디지털 모드에 포로가 되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에 여러 차례 SNS에서 다양한 친구 초청의 메시지를 받지만 제가 열지를 않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연유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뉴스 미디어를 통해서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아이들 중에 한 달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아이들이 10명 중에 3명에 달한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비극입니다. 정말로 비극입니다.
지난 10일, 목요일에 경로잔치의 일환으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남이섬을 다녀왔습니다. 승용차에 걷기가 불편하신 권사님 세 분을 모셨습니다. 남이섬 관광을 마치고 제천으로 돌아오는 노정을 제가 모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 아주 어려웠던 과거 이야기보따리들을 내놓으셨습니다. 세 분 다 의견이 일치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먹거리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때 음식을 지금 음식이 못 따라간다는 정담(情談)이었습니다. 저 역시 사실이 그렇기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음식을 어떻게 옛날 음식과 비교를 할 수 있습니까? 어불성설입니다. 노권사님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찬밥에 물 말아서 김치 쫙 찢어서 얹어 먹으면 왜 그리 많이 있어! 요즈음에는 아무리 먹어도 그 맛이 안 나와요.”
세 분 권사님과 종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동의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해 놓으신 김장 김치 중에 담겨 있는 석박지를 아십니까? 찬밥에 물 말아 석박지를 하나 얹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맛이 있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듣도 보도 못한 퓨전음식이 얼마나 많이 나와 있습니까? 그런데 먹을 때마다 실망합니다. 몇 점을 주워 먹다가 이내 수저를 놓을 때가 많습니다. 아날로그 중의 아날로그 음식인 석박지가 그리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이를 먹긴 먹나 봅니다. 아, 옛날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