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교회 이전을 마쳤습니다.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과 헌신의 열매로 인하여
정말 은혜롭게 교회 이사를 마쳤습니다.
한 가정이 이사를 해도 조만조만한 일들이 많이 있는데
어찌 150명이 이동을 하는 교회가 이사를 했는데 일이 없겠습니까?
이제 이사를 마치고 나서 새 예배 처소에서 눈에 보이는
부족한 부분들을 메워 나가려고 합니다.
이사를 하고 난 뒤에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제일 감격적이고,
감사한 것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었습니다.
직전 예배당에서 주일학교 예배 처소와 장년 예배 처소가
이원화되어 예배를 드릴 때, 도로가 한 복판에 있어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이제는 한 공간에서 또 쾌적한 장소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예배를 드리고
뛰어놀 수 있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것이 있으면 또 예기치 않는 가슴을 뛰게 하는 놀라움이 있는 법,
지난 주 주일학교 아이들이 2층과 3층 계단을 가로지르는 난간에서
곡예를 하며 걷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아이들이 그렇게 위험한 곳으로 다니는지는 아동 심리를 공부하신 분들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장로님께서 보시고 아마 놀라신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따끔하게 야단을 치셨지만 어디 아이들이
그 좋은 놀잇감을 포기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마냥 즐겁게 뛰어논다는 것이
어찌 보면 정상이기에 주간에 물리력을 동원하여 아이들이 다니던 난간에
집사님 한 분이 화분을 구입하여 봉헌한 뒤 그 장소에 화분을 올려놓았습니다.
아이들이 다음 주부터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로운 방법을
동원한 것입니다.
이전 주일학교 예배당에서 3년을 살았습니다.
그곳을 예배당 삼아 3년을 살아준 아이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은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겨울에 난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곳이기에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하소연이 표면으로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지는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2년 전인가, 너무나도 추운 겨울을 보내던 그 때, 하수구가 얼어붙어 물이
역류되어 예배당이 아수라장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가스를 동원하여 빙판을 녹였지만 도무지 녹지 않는 고통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장판을 모두 뜯어내며 차디찬 공간에 다시 예배 공간을 만들던 그 때를 잊지 않으렵니다.
과거의 고난을 승화시키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삶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아이들이 계단 난간을 뛰어다니는 위험천만의 모습을 보았지만
그 위험은 뒤로 하고 한 주간은 그냥 행복하기로 했습니다.
수연이가 1층 출입문에서 전도사님 사택 문까지 100M 달리기를 하는데
그냥 잘 한다고 손뼉을 쳐 주었습니다.
그 놈은 그 열악한 환경에서 지난 3년 동안 말없이 잘 지내준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어디 수연이 뿐이겠습니까? 우리 아이들, 천사 같은 우리 아이들에게 담임목사
꾸벅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너희들이 있어 세인교회가 행복하고 앞으로는 더 행복할 것이라고.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에게 고백합니다. 얘들아,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