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TH.M 석사학위 논문을 쓸 때 ‘능력치유’가 한창 유행을 했다. 미국의 풀러 신학대학교의 피터 와그너를 중심으로 한 ‘능력 치유 사역’이라는 용어로 대변되던 치유 사역이 한국교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당시의 선풍적인 능력 치유 사역은 실로 엄청났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에서 휩쓸고 지나간 빈야드와 같은 여러 사역들이 이단화로 정죄되기에 이르렀다. 사실 개인적으로 ‘귀신들림 현상에 관하니 치유목회 가능성 연구’ 라는 석사학위 논문을 쓸 때 내가 계획했던 논문의 논지는 무분별하고 신학적이지 못한 귀신들림 현상을 비롯한 능력 치유 사역에 대한 비평적 관찰이 주된 테마였다.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나에게 있어서 정립되어 있는 치유 사역의 신학적인 견지의 내용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사역의 현장에서 목양을 하다 보니 맞닥뜨리는 중요한 실천신학적인 치유 사역(Healing ministry)이 교과서이지 않다는 것에 대한 공감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 두드러진 것은 능력 치유 사역의 근간이 되는 ‘영적 전쟁’이라는 스펙트럼의 다양성을 많이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15-6년 전의 신학적 사고의 틀과 적지 않은 패러다임 쉬프트가 있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보았던 당시의 책들은 요즈음 서재에서 아주 빈번하게 다시 끄집어내는 습관이 생겼다. 아마도 이런 발췌하여 읽고 있는 책 중에 하나가 딘 셔만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영적 전쟁”일 것이다. 이 책은 우리 교회 부교역자들과 2012년 들어 처음으로 BOOK-REVIEW 를 한 책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영적인 전쟁이 주님이 미리 이겨주신 이긴 싸움이라고 선언은 하지만 정작 그 분이 이기신 그 능력을 믿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내 안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딘 셔만의 갈파가 가슴에 남아 있다. 우리들은 항상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전쟁이 치열하다고 말하고 논한다. 그러나 막상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님이 이겨주신 전쟁의 그 영적인 감동을 체휼하고 있지 못한 것이 실상이다. 그 이유는 일련의 이런 능력 치유의 현상들을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치유 사역이라고 하면 이성적이고 신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교만함이 우리 안에 있다. 이런 현상은 어찌 보면 우리들의 STATUS QUO 가 영적이지 않은 데에 있는 것 같다. 책에서 셔만이 갈파한 내용이 눈에 아른 거린다.
“우리가 마귀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 마귀가 떠나는 것이 아니다.”
덕지덕지하게 아주 견고한 진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는 마귀의 집요한 공격을 무시한다든지 아니면 과소평가한다든지 또 아니면 단순히 소극적으로 대처한다고 해서 마귀의 궤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귀담을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영적인 면을 소홀히 여기면 항상 실패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기에 항상 영적으로 민감해지려고 노력한다. 그것만이 실패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영적 전쟁”은 두 날개 사역을 하면서 필독 도서이기에 읽어본 책이지만 복음주의적인 창에 서서 한 번 즈음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영적 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해주는 귀한 도서임이 분명하다.
지체들에게 정독을 권해 본다.
딘 셔만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영적 전쟁”, 이상신역, 예수 전도단,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