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짜여진 일상에서 해보고 싶었던 공부였지만 크로스웨이를 공부한다는 것은 나에겐 너무 큰 부담이었다. 작년에도 목사님이 권면하셨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었다. 올해도 역시 자신은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볼 것이다. 출근길에 매일 보는 어느 상점 앞 계단 한 구석에 버려진 듯이 보이는 화분이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그 화분에 누런 떡잎 사이로 싹이 돋아났다. 잊고 지낸 지 얼마만인가? 연보라 빛에 하얀 펄이 섞인 예쁜 꽃이 활짝 폈다.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꽃을 보았다. 핸드폰을 열어 사진도 찍었다.
매서운 찬바람도 감사했고
몰아치는 눈보라도 감사했고
처마 끝 낙숫물에도 감사했고
따스한 햇살엔 더욱 감사했다고
꽃이 말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인이다. 크리스천 스타트를 읽고 나선 더 없이 부끄럽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온전히 드리지 못함이 그리고 내 나약한 신앙이...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니 나는 말씀대로 살기를 노력할 것이고 하나님을 향한 나의 방향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천 스타트를 읽고 배운 교훈과 반성을 크로스웨이를 통해서 많이 부족한 나의 신앙을, 영적 성장을, 추운 겨울을 감사함으로 이겨낸 저 꽃처럼 나도 성장할 것이다. 2011.6.10.”
크로스웨이 4기에서 사역을 시작한 우정제 집사님이 쓴‘크리스천 스타트’를 읽고 낸 첫 번째 독후감 보고서를 읽으며 잠시 동안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멍했습니다. 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그렇게 혼미했는가 하면 이 글을 쓴 지체가 우리 교회 교우의 순결한 마음 밭에서 우러나오는 영적 고백의 감동 때문이었습니다. 뭐라고 표현할까, 개펄에서 진주를 찾은 기쁨이라고 할까, 아니면 심신산중에서 산삼을 찾은 벅참이라고 할까. 여하튼 나는 정말로 몇 번이나 이 글을 읽으며 행복했습니다.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기에 친필로 써서 다소곳한 봉투에 고이 접어 낸 독후감의 내용은 근래 종이 경하지 못한 감동을 주기에 너무나도 충분했습니다. 길거리에 방치되어 있는 꽃의 부활을 느끼는 감성은 누구나 갖지 못하는 은혜를 소유한 것이고 그 꽃의 생동함을 보고 본인의 영적 성장의 태동으로 승화시킨 감동은 오랫동안 부족한 사람의 심장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목회자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그것은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침이 없는 적절한 표현으로 답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양이 자라는 것입니다. 양이 커가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어린양 아르니온(arnion)에서 조금 더 성장한 양인 프로바티온(probation)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프로바톤(probaton)이라는 성숙한 양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마도 모든 목회자의 바람이며 행복일 것입니다. 우집사님에게서 이 가능성을 보았기에 행복했습니다. 동시에 이제 막 자라는 순결한 양으로 발을 띤 4기생들 전체에게 이 가능성이 보여 종을 더 영적으로 흥분하게 합니다. 귀한 지체의 아름다운 글을 통한 너무 행복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앞으로도 행복으로 인하여 계속 정신을 못 차리는 감동들이 우리 세인 공동체에서 일어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