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죄에 고뇌하시는 하나님 류호준 박사(백석대학교) 이레서원 2006년
--------- 풍전등화 같은 조국 유다를 바라보며 목 놓아 심판과 회개를 외쳤던 구약의 대표적 예언자 예레미야. 그의 삶과 메시지는 수많은 고난의 날줄과 씨줄로 엮여있습니다. 우리는 한 민족 유다와 한 인간 예레미야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커다란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는 우리가 함께 엮어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짧은 삶의 이야기들이 직조되듯 커다란 이야기를 이루어가며 문양이 드러납니다. 혹은 작은 이야기들을 이리저리 퍼즐 맞추듯이 맞추어 커다란 윤곽을 잡아가며 온전한 그림을 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좋은 그림은 색깔과 명암, 문양들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런 기준으로 우리는 작품들을 감상합니다. 이는 우리가 성경을 읽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제 유다라 불리는 한 나라, 예레미야라 불리는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커다란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우리를 위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예레미야서를 차근차근 읽은 독자라면 그 안에 사랑, 배반, 자괴, 우울, 박해, 탄식, 기쁨, 잔인함, 욕망, 실패, 세속, 신실, 절망, 희망 같은 것들이 프리즘처럼 깊게 채색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기꺼이 들으려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다. 그 '옛적 말씀'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도 살과 피가 되고, 영적 자양분을 공급해 준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며. 영적 자원의 공급 없이는 사는 것이 결코 사는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을 위한 책이다.
죄가 넘쳐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는 세대입니다. 2009년 고난주간에 추천하는 또 한 권의 책입니다.
------- 어느 분의 독서감상문을 올려 봅니다.
“예레미야” 고통하는 선지자 예레미야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목회의 길로 들어서기를 희망하는,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예비 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진정 무엇을 준거인 삼아야하는가? 나는 여기 예언서 과제를 준비하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진정 남들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우리는 예레미야처럼 보고 듣고 느껴야 하지 않은가? 또한 도전이 되는 것은 그것을 온몸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 그 고통은 일개 선지자의 고통이 아닌 저 하늘로부터의 고통이요, 애끓는 눈물이라는 것.(하나님의 파토스) 하나님은 나를 만드시고 길러주셨는데....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이끌어 주셨는데..... 배신하여 죽음의 길로 가는 안타까운 인생들........휴~~..
이스라엘을 사지에서 구원하시고 구별된 거룩한 땅으로 인도하시고 “나만 봐!” 하시는데... 지금 우리의 사회는 성경에 옛적 말씀처럼 공의가 무너지고 공법이 하수로 흐르는 즉 종교가 다원화되고 진정한 목회자가 드문 시대에 살고 있다. 진정한 하나님의 목소리를 대언하는 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종말적 상황에 놓여있다. 부와 권력의 추종자가 되어버린 종교 지도자들....예전의 (첫 고백) 기억들을 망각한채..자기 이기주의에 빠져 자가진단의 형편이 어려운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는 아주 극진하게 나를 사랑하시는 만유의 하나님!” 이라는 망상속에서 죽음이 이미 모퉁이를 돌고 있는데... 그것이 안타까워 고통스러워하시는 하나님의 성정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그들을 구할 수 있다. 목회 후보생으로써 하나님을 바로알고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가도록 성경말씀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하나님의 주권을 늘 인식하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진정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같이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참 예언자의 삶일 것이다.
선지자의 삶과 몸부림의 메시지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자. 책에 있는 것처럼 지금은 슬픔의 시절이요, 비탄의 때라는 것을 깨닫는 ,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파토스를 깨달아 제대로 전 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이 지금 몹시도 앓고 있는 중병이 무엇인지, 결국은 그것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그 병이 무엇인지, 그 실제가 ‘무지와 어리석음’ 이라는 병균이라는 것을 우리는 읽어내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씨름해야 할 ‘설교’준비가 바로 ‘하나님의 마음’ 읽기에서 판가름이 되어진다는 뜻이다. 물론 목사 후보생에게만 국한된 말씀이 아니라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다 적용되는 말씀이다.
“선 택”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본인이 원하지 않던 시대와 상황에 처해진 예레미야의 정확한 자기인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의 기본 자질이라 하겠다. 우리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의지 속에서 선택되어지고 그 상황으로 던져지는 예언자들의 모습이 꼭 우리의 졸업 후의 모습은 아닐까? 너무나 뜬금없는 당혹감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특이한 선택 방법에 주목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선택’은 특정한 시대와 역사 속에 우리들의 역할을 미리 정해 놓으셨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우리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아니 세상이 조성되어지기도 전에 이미 ‘나’라는 존재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의 근원은 저 ‘영원’속에 있는 것 아닌가? 하나님은 나의 그 자체만으로도 기뻐하신다는 것이 정말로 가슴 벅찬 희열이 된다. 생물학적으로 설명되어지는 우리네의 소위 출생의 신비로는 도저히 줄 수없는 감격이 아닐 수 없다.
절대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는 우연이라는 것은 자라잡지 못한다. 영원 전부터 작업하시고, 역사 속에서 계획하시는 하나님이 옛적에 예레미야를 선택하여 사용하신 것처럼 우리도 귀중한 선택을 받은 수혜자라는 것을 깨닫자.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우리의 출발점이 ‘창세전’ 영원으로 부터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크나큰 선물이다. 이는 보잘 것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먼저 알고 계셨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의 일정한 목적이 이 사회와 역사를 이끌어 간다. 그것에 우리는 전적으로 순응해야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선택을 받았다. 하나님을 홍보하는 홍보대사로서 말이다. 이에 그 직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처음의 완전한 상태로 돌리시고 있고 또 원하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 받았고, 하나님의 도구로 선택 받았고, 그를 위해 말하고 생각하며, 느껴야 할 것이다. 마치 예레미야 처럼 말이다.........
인간의 죄에 고뇌하시는 하나님의 고통이 더 불어나기 전에 밤낮으로 진리를 전하는 열정이 있는 우리가 되자.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존재로서 자존감을 지니고 살아가는 피조물이 되자.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도구가 되자.
“기 억” 봄날 같았던 신혼시절을 기억하십시오
예레미야의 ‘성전설교’에서 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설교 원고를 작성하셨다고 생각해야 한다. 설교는 하늘로부터 오는 하늘의 메시지인데....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통로로 나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서 부터이다. 설교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참된 설교자는 그 메시지의 근원이 내 속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이렇듯 성전설교는 저기 높은 곳에 계시는 야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다. 그분의 지상적 대리인인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인 것이다.
무엇이 작금에 중요하고 급한 것인지를 알리는 것.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진정한 의미를 올바르고 참되게 바라 볼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예레미야처럼..... 의식화되고 형식주의에 치우쳐 버린 우리의 예배 속에서 살아있는 설교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길을 돌이키고 행위들을 고쳐라!!” 라고 직업 할 수 있는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
그 옛날의 봄날 같았던 신혼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처럼, 설래는 마음으로 처음 하나님과의 언약의 장소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제 다시 돌이켜서 새로운 언약을 세울 준비를 하라고.... 하나님 중심으로 당신의 삶을 재정립하라고..... 그래서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담대히 전하는 설교자가 되어야 하겠다.
기억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주신 기능 중에서 아주 좋은 기능 중의 하나이다. 나라는 존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과거 옛날 옛적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하셨는지,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어떠했는지, 과연 지금까지의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나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기억해 내어야만 한다. 그 기억을 토대로 우리가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다른 일반 예언자들과 구별 짓는 기준은 미래의 사건을 미리 볼 수 있는 능력을 소유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다른 일반 예언자들이 소유하지 못한 독특한 능력이 그들에게 있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진정한 의미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선지자는 자신의 시대가 앓고 있는 중병을 진단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물론 이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성령님이 나를 떠났다고 느껴질 때, 그 때야 말로 우리의 기억을 다시금 새롭게 해야 될 때라고 한다. 우리의 학업과 우리의 신앙이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고착되어지는 지금 이순간이 바로 우리의 의식과 기억을 새롭게 하여야 할 시간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