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를 하고 난 뒤 그 죄 사함의 페널티로 주어지는 것 중의 하나가 주기도문 암송이라는 것을 아주 오래 전에 누님을 통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천주교회에서는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이나 마리아의 찬송시를 엮어 만든 마리아 신경과도 같은 다양한 경전을 고백함으로 죄 사함의 은혜를 얻는다는 것은 그들만의 고유한 고집인 것이 분명합니다. 이에 비해 우리 기독교는 두 가지의 공동고백을 공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드립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주일 낮 예배도 예외는 아닙니다. 종도 주일 예배에 이 이 두 가지의 고백을 순서에 첨가한 것은 중요한 예배학적인 기초를 근거로 한 것입니다.
지난 주 주일 오후예배를 마치고 제 서재로 돌아왔습니다. 사무실에 마침 올라온 지체 중의 한 명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주일 낮 예배 시간에 주기도문 두 번 하신 것 아세요?"
"아니요. 전혀 모르겠는데. 왜, 오늘 예배 시간에 주기도문을 두 번 했어요?"
사정이 이랬습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순서가 되면 통상적으로 예배를 인도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오니'라고 멘트를 해야 하는데 그 시간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멘트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사도신경 고백의 순서에 주기도문이 고백되어지고 또 다시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드림으로 주기도문을 두 번이나 고백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입니다. 나름대로 예배에 대한 부분만큼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이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예배를 인도하는 제 스스로가 그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체를 통하여 들었으니까 알았지 이야기하지 않으면 전혀 모른 채로 지나갔을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종을 찾아온 제자 목회자 부부에게 교제 중에 이런 이야기를 고백한 것이 있습니다.
'자네들을 양육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두 가지가 힘들어. 하나는 체력이고 둘째는 집중력이야!'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닌데 절감하는 목양적인 연약함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나이인 120세 때에도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압니다. 85세의 고령의 나이에 헤브론 산지를 점령한 갈렙을 기억합니다. 중단된 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할 것을 서슬이 시퍼렇게 독려한 학개가 사역한 것이 80세가 넘어서였음을 압니다. 그러기에 사실은 종이 많이 부끄럽습니다. 가장 역동적으로 사역할 나이인데 조금씩 집중력이 떨어지는 스스로를 보면서 말입니다. 지난 번, 집중 훈련을 받을 때 강사 목사께서 힘차게 외쳤던 말이 기억에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 같은 사역자들에게는 체력은 국력이 아니라 영력입니다."
정답입니다. 조금 더 승리하는 사역을 위해 체력과 집중력을 키워야 할 것 같습니다. 교우들의 중보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