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영상

제목진짜입니까?2024-03-13 18:26
작성자 Level 10


기본 정보

설교제목
: 진짜입니까?
분 류
: 절기 예배
설교자
: 이강덕 목사
설교일
: 2018년 12월 31일
성경본문
: 고린도후서 13:4-5

본문내용

 

2018년 송구영신 예배 설교

 

제목진짜입니까?

본문고린도후서 13:4-5

 

서론)

 

지난 주 토요일에 저녁 식사를 하는데 텔레비전에서 불후의 명곡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것을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가수들끼리 나와서 선택한 곡으로 경연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저도 잘 모르는 김용진이라는 가수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저는 이 가수를 잘 모르는데 그날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다시금 재확인하게 되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세상이나 교회나 똑같은 공통분모가 있다는 확인이었습니다.

진정성입니다.

그 가수의 노래는 다른 가수들에 가슴으로 부르는 진정성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말이나 노래 안에 진정성이 있을 때 사람들의 마음은 움직입니다.

그날 김용진이라는 가수는 돌아가신 아버지께 드리는 막내아들의 사부곡과 같은 노래를 불렀는데 김광석 씨가 부른 그날들이라는 곡이었는데 가사가 이렇습니다.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

그대는 기억조차 못하겠지만

이렇듯 소식조차 알 수 없지만

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흐르곤 했었던 그날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

그렇듯 사랑했던 것만으로

 

노래가 끝나자 관중들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결국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그 날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 역시 가수가 부르는 노래에서 진정성을 느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뒤에 온 불효자의 사부곡을 말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그는 이런 가사를 읊조린 것입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

그렇듯 사랑했던 것만으로

 

이 노래의 가사가 청중들에게 진정성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진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이야기나 말들 그리고 노래들은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반면 진정성이 있는 것들의 일체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묘한 감동을 줍니다.

그래서 진정성은 대단히 중요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오늘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이 귀한 시간오늘 담임목사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2019년의 첫 번째 메시지의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여러분은 진짜이십니까?

이 말을 이렇게 바꾸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진정성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습니까?

 

본론)

 

오늘 본문 4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저와 여러분의 주군이신 예수님은 공생애를 보내시면서 수많은 이적과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를 갖고 유감없이 많은 자들에게 위로와 치유와 기적들을 베푸시며 메시아로서의 당신의 위상을 세워가셨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강력한 권위와 능력을 소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으로 옭아매는 당대 최고의 세속적종교적 권력자들의 폭력에 항거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주 초라하게 아무런 반항도 못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면에서 바울이 본문 4절 전반절에서 언급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라는 구절은 적절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 이렇게 나약하게 항거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마태의 복음서에 나와 있는 말씀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유다의 배신으로 대제사장의 무리들에게 체포를 당하실 때 예수를 잡기위해 달려들던 가야바의 종이었던 말고의 귀를 베드로가 칼로 쳐서 떨어뜨리는 폭력적인 구도가 형성됩니다.

일촉즉발의 긴장된 순간주님이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주시면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하셨던 메시지가 마태복음 26:52-5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그리스도께서 나약한 모습으로 십자가를 짊어지신 이유는 아버지의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인류를 구원하는 대속은 단 한 가지 주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셔야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선언은 단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감동입니다.

4절 후반절을 읽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무슨 말입니까?

약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다시 사셨다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부활하셨습니다.

헌데 주님의 부활은 부활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당신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우리 믿는 자들도 다시 살게 하시는 능력을 부여하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5절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설을 피력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바울의 이 선언은 비장해 보이기까지 하는 선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다시 살리는 능력의 주님이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를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뒤에 이 질문에 대한 yes 와 no를 구분함으로 내 신앙의 내용을 시험하라고까지 독려합니다.

이 독려의 메시지를 전한 바울은 이제 서슬이 시퍼런 비수와 같은 메시지를 던짐으로 본문을 마감합니다.

무슨 비수였습니까?

주님이 나를 다시 살리시는 능력을 믿는 자는 주님 안에 거하는 자이고 그렇지 않는 자들은 주님 안에 거하지 않는 자들이기에 버림을 받은 자들이라고 강하게 역설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바울이 선포한 5절을 본 설교의 주제와 관련하여 이렇게 바꾸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자들은 진짜이지만 그 분 안에 거하지 않는 자들은 진짜를 뒤집어 쓴 가짜라고.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의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왜 수없이 많은 신자들이 진짜가 되지 못하고 가짜로 살아갈까?

말을 바꾸겠습니다.

왜 수없이 많은 신자라고 입술로 말하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고 거하는 체 하는 것일까요?

앞에서 노래한 가수의 노랫말로 변역(變易)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들을 다시 살리기 위해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온 주님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그 분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을그 분을 사랑했던 것들을 진정성이 있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헐몬 산에 올라간 베드로로 살기를 원할 때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것이 너무 좋다고여기에 주님께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형식적인 헌신도 하고형식적인 봉사도 하고형식적인 초막 셋을 지을 테니 여기에서 느끼는 황홀한 엑스터시를 계속 느끼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헐몬 산 밑에서 주님의 긍휼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귀신들인 아들을 둔 아버지의 간절함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에는 관심 두지 않습니다.

오직 이곳이 너무 좋으니 그냥 헐몬의 이대로를 유지하자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진짜에는 관심이 없이 진짜로 둔갑한 가짜로 살아가도 괜찮은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복음주의자라고 말하는 아이든 토저는 그의 걸작인 나는 진짜인가가짜인가?’에서 진짜 그리스도인들의 자가 진단법 7가지를 소개합니다.

 

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② 나는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가?

③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④ 나는 내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⑤ 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가?

⑥ 나는 누구를 존경하며어떤 것에 열광하고 있는가?

⑦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pp,71-75)

 

토저는 이 질문을 던진 뒤에 에둘러 진짜와 가짜를 부연하며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의 설명을 읽으면서 확연하게 다가온 진짜와 가짜의 분별에 대한 답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7가지의 질문에 사람이라고 말하는 자는 가짜입니다.

허나 7가지의 질문에 예수 그리스도라고 답한 자는 진짜입니다.

답변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교우들은 아마도 이런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지당연한 멘트라고.

그런데 오늘은 조금은 촌스럽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주 안에 있지 않으면 버림을 받은 자라는 이 지극히 촌스러운 멘트를 저는 곧이곧대로 믿기로 말입니다.

저는 어제 목양터의 이야기 마당에 이런 글을 기고했습니다.

 

사수(死守)

(상략)

 

금년에 제일 잘 한 일이 무엇일까사유하다가 섬기는 세인교회의 강단에서 예수를 사수(死守)한 것이라고 결론 맺었습니다.

에이내가 그럴 줄 알았어목사가 다 그렇지 뭐너무 식상해상투적 멘트야!”

반응이 이렇게 싸늘하십니까그러십니까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정말로 잘한 일은 예수를 사수한 것입니다. 2018년을 살아내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일은 오늘 내가 살고 있는 현장을 출애굽기 32장에 나타난 모세 없는 시내 산 난장(亂場)의 현장으로 세인교회를 만들라는 압박이었습니다음으로 양으로 조여 왔던 이 압박은 정말로 현장 목사로서 견뎌내기 버거운 폭력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해네가 잘난 게 도대체 뭐 길래 그렇게 고집이 세니너도 별 거 아니야시내 산 밑에서도 우리들이 만든 금송아지에게 드린 건 우상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이름 지은 존재에게 드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거잖아다른 게 아니라 시대에 부합한 하나님의 상을 만들어 달려간 것 것뿐이라니까다른 복음이 아니라 똑같은 건데 그렇게 유별 떨 것 없잖아너도 도찐개찐인데 잘난 체 하지 마!”

하루에도 수없이 듣는 이런 비수들이 날아들 때 심장을 강타하는 타격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5년 전소아시아의 7개 교회를 탐방하는 성지순례 때 바울이 도보로 걸으면서 죽음의 위기를 수없이 경험했던 타우르스 산맥을 고급 리무진 버스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너무 황송해서 두 번째 넘을 때는 남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습니다이렇게 무시무시한 산맥을 도보로 걸으면서 넘었던 바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도대체 얼마나 주군을 향한 사랑이 컸기에 이 무모한 짓을 감당했단 말인가그러다가 불연 듯 저에게 스며들었던 감동 중의 감동은 사수(死守)함이라는 감동이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걸작 중에 걸작인 나를 따르라에서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교회는 부당하게 세상 안에 머무를 수도 있고부당하게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 두 가지 행위는 모두 세상을 본받는 일이다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과 다른 모습을 지녀야 한다그 모습은 그리스도 자신의 모습이다.”(본회퍼, ‘나를 따르라’ 이신건 역, p,311.)

왜 교회가 예수를 사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고언(苦言)이었습니다교회는 세상과는 달라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 교회나 성도는 전부가 예수의 모습이어야 합니다타협은 없습니다. 2018년도 그랬지만 2019년도 역시 또 그럴 것입니다세인교회와 이강덕 목사는 예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정녕 아무 것도!

진짜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수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2018년 내내 내 안에 내주하시며 거하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러나 내가 죄로 인해 타협하고 죄를 묵인하고 죄를 선택적 기호로 여기며 암묵적으로 그 죄와 동행할 때 심히 근심하며 내 안에 내주 하실 수 없어 나를 떠나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러다가 내가 다시 주의 은혜를 깨닫고 주의 말씀의 은혜 안으로 돌아올 때 박수를 치시면서 내 안에 다시 들어오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속의 공격적인 포화가 쏟아지는 오늘이지만 그 분을 사수하셨습니까?

20세기 불의 사자라고 불렸던 레오나드 레이븐힐은 '부흥의 세대여 통곡하라'에 이런 글을 삽입해 놓았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엘리스의 왕 아우게이아스는 매우 부유했습니다심지어 태양의 신 헬리오스에게 바쳐진 12마리의 흰색 황소들까지 소유를 했을 정도로 모든 것을 다 가진 부를 소유했습니다그러나 그는 3,000마리의 소를 기르면서 30년 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외양간은 너무나 더러웠습니다이것은 안 유리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외양간을 청소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그러자 헤라클래스는 부근에 있는 두 개의 강물을 끌어다가 단 하루 만에 청소를 마치게 됩니다.

이 예화를 마친 레이븐 힐은 이렇게 피를 토합니다.

나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이여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처럼 더러운 개인 및 사회의 죄악에 장미 향수를 뿌려서 깨끗하게 하려는 짓을 중단하라눈물의 강기도의 강기름부음의 강에서 물을 끌어다가 죄악을 외양간을 청소하라”(p,122)

종이 하나님께 불타는 마음으로 다가서며 새벽마다 시간마다 기도하는 자존감이 있습니다.

하나님한국 교회가 더 이상 치욕을 당하지 않게 하옵소서하나님한국 교회의 성도들이 더 이상 모욕을 당하지 않게 하옵소서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바른 부흥을 위하여 통곡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절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사수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그 사람들을 종에게 붙여 주시고바로 그 사람이 종이 되게 하옵소서!”

 

결론)

 

저는 이제 2019년의 첫 번째 설교를 마감합니다.

본문 5절을 다시 읽습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예수를 믿었는데 주 안에 있지 않고주 밖에 있음으로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저는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영적 소회가 하나 있습니다.

아직도 깊은 내면에서 하나님하고 외치면 눈물이 솟구쳐 오르는 주님을 향한 간절함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주존감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26:29절에서 헤롯 아그립바와 버니게와 베스도를 향하여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너희들도 나처럼 결박된 것 외에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피를 토하며 외칠 수 있는 주님을 향한 열정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은 진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