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5일 화요일 둘째 날 설교 제목: 궁극의 치유 본문: 말라기 4:1〜3 본문 1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우리 믿음 사람들은 이 예언의 말씀에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반드시 풀리는 날이 올 것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자, 악을 행하는 자가 지푸라기같이 될 날이 올 것임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이 확인은 약속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악인 즉 교만한 자,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한 심판을 천명해 주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1) 우리들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에게 심판이 임할 것을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믿는 자의 신앙생활을 경멸하며 조롱하는 자들, 그래서 자기들 멋대로 즐기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엄숙한 심판이 임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용광로의 극렬한 불이 임하는 날이 도래할 것을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그날이 되면 그 불이 바로 악인을 태울 것이며 그들의 근원을 모조리 패하게 하실 것이라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예언서인 말라기만 이렇게 선언한 것은 아닙니다. 예언자 스바냐도 분명히 선포했습니다. 스바냐 1:14〜16절을 봅니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이 구절을 묵상하노라면 작금의 현실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시편의 대명사인 시편 1편에서 익명의 시인이 일갈한 것에 대한 컨펌이 말라기 예언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1:4〜6절을 보십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오늘 본문의 예언서는 이런 악인들을 지칭하여 지푸라기라고 재정의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혜서인 잠언에서 저자는 이렇게 동반하며 응원합니다. 잠언 24:1〜2절입니다.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 2) 야훼를 경외하는 백성들에 대한 분명한 복을 말라기는 예언합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무슨 복입니까? ① 공의로운 해가 야훼를 경외하는 자에게 떠오른다고 약속합니다. ② 치료하는 광선을 비출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③ 외양간에 나온 송아지처럼 뛰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④ 악인들을 밟게 될 것임을 약속했습니다. 이 네 가지를 종합하면 이런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모든 육체적, 영적 문제에서 치유 받은 백성들이 마치 송아지처럼 뛰놀게 될 것인데 그날은 악인들에게는 심판과 진노의 날이지만,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한 자들에게는 전인적 치유의 드라마틱한 날이 될 것이다.” 시인은 시편 2:7〜9절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알려 주마.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 오늘은 네 생일이다. 원하는 것이 있느냐? 말만 하여라. 나라들을 선물로 주랴? 대륙들을 상으로 주랴? 너는 그것들을 마음대로 갖고 놀다가, 내일 쓰레기통에 던져도 좋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시편 2:7〜9절 번역』 그렇습니다. 성도가 받게 될 궁극적 승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성도의 믿음의 승리를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마가복음 10:46절 이하를 보면 바디매오가 승리한 기사가 등장합니다. 기사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여리고 성으로 내려오신 나사렛 예수를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 외침을 꾸짖는 주변 사람들이 그를 짓누릅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여겨집니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굴하지 아니하고 더욱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결국 주님은 바디매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보게 해 주셨음을 마가가 보고합니다. 이런저런 세속의 소리가 우리의 신앙생활을 마구 흔듭니다. 그러나 그 소리에 매몰되지 않는 신앙의 견고함을 유지한 백성은 끝내 이깁니다. 성도가 끝내 맛보게 되는 승리 즉 치유의 결과물을 마가복음 10:52절에서 이렇게 알려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우리들의 신앙 모습 속에서 세속의 시험, 영적 시험 그리고 사탄의 시험 등으로 지치고 지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도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예언서 말라기의 보고가 감동이라는 점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2) 앞에서 제시한 두 가지, 하나님이 일하시는 치유의 궁극적인 목표를 설명하고 나니 떠오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7-9절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줍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책에서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젊은 나이에 광산에서 일하다가 부상을 당해 평생 불구를 살아가는 백발이 성한 노인에게 어떤 젊은이가 방문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는 노인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할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어떻게 이런 형편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나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 본 적이 없나요?” 그러자 노인이 잠시 주춤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맞아, 사실은 사탄이 낡아 무너질 것 같은 내 영혼의 집을 찾아오지. 그리곤 내 침대 옆에 바짝 붙어서 나를 조롱하곤 하지. 나하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보라고 지시하면서 저들은 저렇게 건강한데, 그대 꼴이 도대체 얼마나 초라하고 우스운 줄 아냐고 다그치지. 사탄은 내게 이렇게 다그친다네.” “그래도 하나님이 그대를 사랑한다고 믿는가?” 젊은 청년이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사탄이 그렇게 물으면 할아버지는 뭐라고 대답하시나요?” 그러자 노인이 답했습니다. “나는 사탄의 손목을 잡고 갈보리라는 언덕으로 이끌고 간다네. 그곳에서 가시로 찟어진 이마와 못 박힌 손과 발, 창에 상한 그분의 옆구리를 가리키면서 사탄에게 되묻지.” “사탄, 이래도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브라이언 채플 목사의 글에서 이 담론을 읽다가 울컥했습니다. 궁극의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사탄의 심판을 믿는 자들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구원이 상황에 따라 바뀌는 구원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임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무장한 자가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 찬송은 립싱크로 부르는 찬송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궁극의 치유를 받은 그리스도인만이 부를 수 있는 찬양입니다. 찬양의 가사가 이렇습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 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 하리라/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 나라 갈 때에/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기도 제목) 1) 하나님,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에 약속하신 치료의 광선을 내게 비추소서. 2) 하나님, 날마다 내 신앙의 여정이 외양간에 나온 송아지와 같은 역동적 믿음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3) 하나님, 사탄의 궤계가 내 삶의 현장에서 떠나가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