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제목뿌린 대로2024-04-19 11:41
작성자 Level 10

2024년 4월 3일 수요일 저녁 예배 설교 (창세기 백 마흔두 번째 강해)

 

본문 창세기 49:1-28

제목 뿌린 대로

 

서론)

 

갈라디아서 6:79절을 읽으면서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구절을 메시지’ 번역으로 다시 한번 나누어 보겠습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사람은 심은 대로 거두게 마련입니다다른 사람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기심을 심는 사람은 잡초를 거둘 것입니다그런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면서 온통 잡초만 키워 낼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응답으로 심고그것을 키우는 일을 하나님의 영에게 맡기는 사람은 참된 삶곧 영생이라는 알곡을 거둘 것입니다그러니 선을 행하되 지치지 마십시오포기하거나 중단하지 않으면때가 되어 좋은 알곡을 거둘 것입니다.”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져 있기에 익숙한 성서 구절입니다.

기실갈라디아서 6:79절은 성서만의 이야기를 아닙니다.

흔히 쓰는 사자성어 중에 自業自得事必歸正因果應報 등등의 단어가 있는 것을 보면 동양적 종교와 철학에도 이런 사상이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철학에서 놓치지 말고 붙들어야 할 시금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의 권언처럼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말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때가 되면 반드시 그 뿌린 것에 대한 열매가 나타날 것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야곱이 죽기 전에아들들을 불러 축복함과 동시에 앞으로 자식들의 세대에서 경험하게 될 내용들을 함께 알려주는 창세기에 나타난 결론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텍스트입니다.

해서 본문 1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야곱은 아들들에게 영적 권위를 갖고 그들에게 임할 여러 미래적인 비전과 당할 일들을 알려줍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종을 앞두고 자녀와 손자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말해 줄 수 있는 삶을 살았다면 헛된 삶을 산 인생은 아닐 것이라는 왠지 모를 감동 말입니다.

나는 내 아들에게 무엇을 남기며 강복할 수 있을까를 성찰하는 시간도 가져보았습니다.

12 아들 전부를 다 다루면 좋겠지만 양도 많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기에 몇 아들에게 집중하는 것으로 본문 이해를 갈음하려고 합니다.

 

1) 르우벤입니다.

 

먼저 34절을 나눕니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이 구절을 표준 새 번역 성경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르우벤아너는 나의 맏아들이요나의 힘나의 정력의 첫 열매다그 영예가 드높고그 힘이 드세다그러나 거친 파도와 같으므로또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와서 네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네가 으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너무 선명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자업자득의 결과물을 아버지 야곱에게서 장자 르우벤이 받고 있습니다.

르우벤에게 떨어진 경종은 장자권 상실이라는 결과물이었습니다.

르우벤에게 어찌 보면 심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결과물을 얻게 된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아버지의 소실인 빌하와 통간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천륜을 어긴 죄 때문입니다.

창세기 35:22절은 이렇게 고발합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르우벤은 장자였습니다.

르우벤의 동생 중에는 단과 납달리가 있습니다.

이 두 동생을 낳은 어머니가 바로 빌하입니다.

결국 르우벤은 자기의 이복동생들의 어머니와 통간한 천륜의 죄를 어긴 패륜 자식이 된 셈입니다.

그러니 야곱이 장자였지만 르우벤에게 복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르우벤에게 선언한 야곱의 일갈은 도리어 저주에 가까운 독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4)

 

2) 시므온과 레위입니다.

 

두 번째로 살펴야 할 구절은 본문 57절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장자였던 르우벤에 비해 그 강도가 조금은 약해졌지만둘째와 셋째였던 시므온과 레위에 내려진 미래 예언도 부정적인 기류가 더 강합니다.

르우벤이 장자권을 박탈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장자권은 둘째나 셋째에게 계승되어야 하는데 둘째 시므온도셋째 레위도 장자권을 계승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를 창세기 34:2830절이 증언해 줍니다.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이 구절의 배경은 야곱이 세겜에 잠시 거주했을 때 그의 유일한 딸인 디나가 하몰의 아들인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에게 누이동생이 강간당한 치욕을 경험한 시므온과 레위는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둘을 결혼시키자고 협의하러 온 때에 세겜에 살고 있는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결혼을 허락한다는 거짓 조건을 내세웁니다.

좋게 받아들인 하몰 족속은 그 협의 조건을 이행합니다.

하몰 족속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 시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때를 이용해 시므온과 레위는 귿들을 급습 하여 대량 학살을 자행합니다.

이렇게 잔악무도한 일을 저지른 이 두 형들에게도 장자권을 줄 수 없었던 야곱은 복이 아니라저주의 메시지를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시므온과 레위를 통해 얻어야 하는 교훈은 이유 있는 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성경은 어떤 상황이 된다고 할지라도 폭력을 정당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렇습니다.

합당한 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3) 유다입니다.

 

이제 넷째 아들유다를 살펴보십시다.

812절 본문입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메시지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너 유다야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할 것이다네 손가락이 네 원수들의 목을 누르고 네 형제들이 네게 경의를 표할 것이다유다너는 젊은 사자다내 아들아너는 짐승을 잡아먹고 힘차게 보금자리로 돌아올 것이다백수의 왕 사자처럼 웅크린 그를 보라누가 감히 끼어들어 그를 방해하랴왕권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최후의 통치자가 오고 민족들이 그에게 복종할 때까지유다는 지휘봉을 놓지 않을 것이다그는 자기 나귀를 포도나무에 단단히 매고 순종 나귀 새끼를 튼튼한 가지에 맬 것이다그는 자기 옷을 포도주에 빨고 자기 겉옷을 붉은 포도즙에 빨 것이다그의 두 눈은 포도주보다 검고 그의 이는 우유보다 흴 것이다.”

이 구절로 접근하면 마치 유다가 장자권을 획득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아버지 야곱이 선포한 복이 무궁무진합니다.

영원한 왕권이 주어질 것이고모든 형제 지파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형제들은 유다를 찬송할 것이고그를 대적하는 원수들은 그에게 짓밟힐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온 열방까지도 유다에게 순종하게 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특히 본문 10절에 보면 유다의 왕권이 이어질 시기를 한정하고 있습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실로는 성전이 완성되기까지 이스라엘 성전의 역할을 했던 성소가 있었던 장소입니다.

그러니까 성소의 주인이 오실 때까지 유다의 왕권이 이어진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구절이 10절입니다.

실로의 주인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다의 족보를 통해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이런 차원으로 접근하다 보니 유다가 받은 복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납니다.

유다는 어떻게 이런 복을 받은 주인공이 되었을까요?

몇 가지만 예를 들어봅니다.

유다가 요셉에게 행했던 일련의 일들을 그 예로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창세기 37:26절입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유다는 요셉을 살리는 데에 기여합니다.

유다는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리고 가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창세기 43)

요셉이 계획한 은잔 탈취라는 시나리오대로 베냐민의 짐 보따리에서 은잔이 발견되어 형들과 베냐민이 심대한 궁지에 몰렸을 때솔선수범하여 애굽에 목숨을 담보한 인질이 되겠다고 자처한 이가 유다였습니다. (44)

이상이 유다가 아버지로부터 강력한 축복을 받은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창세기 기자는 유다의 면을 곳곳에서 살려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의 표현이 아니라창세기 기자의 의도적인 표현 기법이었을 것입니다.

유다 지파를 통해 구속사의 완성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가늠하게 해주는 시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해서 유다 지파는 야곱에 의해 복을 받는 아들로 본문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요셉에게 주어진 복을 보십시다.

본문 2226절이 요셉이 받을 복을 제시해 줍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송병현 교수가 정리한 주석 하나를 읽겠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빌어준 복은 크게 네 가지였다첫째위로 하늘에서 내리는 복이요 둘째아래로 깊은 샘에서 솟아오르는 복이며셋째로젖가슴에서 흐르는 복과 넷째태에서 잉태되는 복이었다처음 두 개는 요셉 자손이 거하게 될 땅의 풍요로 기름진 것에 관한 것들이고다음 두 가지는 자손들의 번성에 관한 것들이다.” (송병현엑스포지멘터리주석-창세기, 819)

결국야곱에게서 요셉에게 선포된 복은 최고의 복이었습니다.

이렇게 요셉에게 임하게 될 복도 너무 엄청난 복이었지만 요셉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복의 내용은 르우벤에게서 박탈한 장자권의 승계라는 복이었습니다.

즉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들로 입양하여 장자권을 승계하게 한 창세기 48:8-22절의 복은 압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몇몇 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미래적인 승계와 예고를 살폈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야곱의 축복 선언과 저주 선언을 보면서 오늘 우리는 창세기 142번째 강해의 교훈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 단서가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28절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이 자식들에게 내린 복과 저주를 살피면서 28절이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 가장 성서적이고 복음적인 교훈은 뿌린 만큼 거둔다는 교훈입니다.

 

오늘 우리는 한 알의 영적 씨앗을 뿌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씨를 뿌리는가이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며 법칙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성서적 교훈이자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만에 하나내가 뿌린 것보다 더 많은 것더 좋은 것을 기대한다면 그건 정말로 나쁜 일입니다.

너무 많이 들었기에 간과할까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뿌린 만큼 삶에서 열매로 거둔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기십시오.

그게 정직한 그리스도인의 태도입니다.

시편 126:56절은 멋진 간구가 아니라 슬픈 간구입니다.

포로로 끌려갔던 이들이 얼마나 예루살렘을 그리워했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지 않았던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와해 되었습니다.

뒤늦게라도 절치부심하며 각오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겠다고 말입니다.

이 슬픈 애가의 노래는 오늘 우리에게 너무 시의적절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명심하십시다.

성경이 말하는 법칙과 가르침은 뿌린 만큼 거둔다는 진리임을.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젊은 날에 가슴 뜨겁게 불렀던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파주에서 목회할 때 섬기던 교회 청년들과 거리에서 찬양 노방전도를 하면서 불렀던 찬양입니다.

주변 방해가 너무 심했지만 청년들과 눈물을 흘리며 영혼 구원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두고 무릎을 꿇고 소리쳐 불렀던 찬양입니다.

이 찬양을 드림으로 설교를 맺으려고 합니다.

 

우리 오늘 눈물로

 

우리 오늘 눈물로 한 알의 씨앗을 심는다

꿈꿀 수 없어 무너진 가슴에

저들의 푸른 꿈 다시 돋아나도록

우리 함께 땀 흘려 소망의 길을 만든다

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저들

노래하며 달려갈 그 길

그날에 우린 보리라 새벽이슬 같은 저들

일어나 뜨거운 가슴 사랑의 손으로

이 땅 치유하며 행진할 때

오래 황폐하였던 이 땅

어디서나 순결한 꽃들

피어나고 푸른 의의 나무가 가득한 세상

우리 함께 보리라

 

기도하겠습니다.

 

1) 하나님내가 눈물로 죽어가는 자들을 위해 눈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겠습니다.

2) 하나님남은 3일 동안태신자와 잃은 양들을 찾아가 섬기겠습니다.

3) 하나님, 4월 7일에 예비 된 영혼을 보내주십시오.

4) 하나님세인교회가 부활절 이후 영혼 구원에 전심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5) 하나님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리는 도구 되겠습니다사용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