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4월 27일 교회 창립 16주년 기념 주일 설교 본문: 사도행전 11:25〜26 제목: 이런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서론) 저와 교우들은 지난 수요예배 시간에 『오 신실하신 주』라는 복음성가를 예배 전 찬양으로 불렀습니다. 2절 가사가 이렇습니다. “지나온 모든 세월 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세인교회는 2008년 12월 28일에 승리 반점에서 40여 명의 교우들이 개척 예배를 드리고 이듬해 4월 26일에 창립 예배를 드렸으니까 2025년은 교회 창립 16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늘이 바로 세인교회가 16세를 맞이하는 날입니다. 뒤돌아보니 지나온 모든 세월,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이 전혀 없다고 고백한 찬양 가사가 왜 이리 절절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찬양을 만들어 하나님께 헌정한 최용덕 형제가 마치 우리 교회를 생각하고 만든 찬양 같다고 여겨질 정도로 가사가 구구절절 은혜로 다가옵니다. 세상이 인정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우리는 지난 16년을 달렸는데, 앞으로 26년, 36년의 생일에는 더 많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 교회 정체성을 노래하는 우리 세인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본론) 오순절 성령 강림을 경험한 120명 정도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도무지 견딜 수 없는 복음의 감동 때문에 밖으로 쏟아져 나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에게 괴물 같은 유대 종교의 겁박이나, 핍박이 이제는 두려울 리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루살렘 주변 즉 헤롯 성전과 시내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의 메시지를 들었던 적지 않은 예루살렘 시민들이 유대 종교에서 그리스도의 사람들로 탈바꿈되는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복음을 토대로 한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나자,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가 세워졌는데 밀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예루살렘 교회는 기하급수적으로 부흥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폭발적으로 부흥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시기로 결심하시고 예루살렘 교회에 시련을 허락하셨습니다. 유대 종교의 집단적 핍박이 가일층 강하게 하셨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는 시기를 기점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당시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이방 지역 즉 마케도냐(그리스 북부 지역), 아가야(그리스 남부지역), 갈라디아(터키 중북부 지역), 소아시아(터키 중서부 지역) 등등으로 흩어지게 하심으로 이제 복음의 능력이 예루살렘과 유대를 뛰어넘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두루 편만하게 전염되게 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복음의 능력이 더 강하게 전해져서 이방 선교의 전진기지라고 할 수 있는 수리아 안디옥 지방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으로 변화 받고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이방 교회의 대표적 산실로 세워진 수리아 안디옥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1:19〜21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키프로스)와 구레네(북아프리카)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그림 하나 참고하겠습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폭발한 복음이 인근 각처로 퍼지는 은혜가 임했습니다. 특히 수리아 안디옥 교회는 밀려드는 이방인 회심자들로 인해 예루살렘 교회처럼 믿는 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런 놀라운 소식을 보고 받은 예루살렘 교회 집행부에 있던 제자 그룹은 수리아 안디옥 교회 공동체의 질서와 관리 그리고 사역을 위해 급거 바나바를 치리 목회자로 파송합니다. 그렇게 파송 받은 바나바의 정체성을 사도행전 11:24절에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치리 목회자인 바나바가 급히 파견되자 수리아 안디옥 교회는 더더욱 부흥의 부흥을 경험했다고 보고합니다. 오늘 교회 창립 기념 주일 설교 본문은 이것을 배경으로 하여 그다음 후속 조치를 말하는 본문입니다. 먼저 25절을 읽겠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이 구절을 해석하겠습니다. 바나바가 사울(바울)을 찾으러 다소에 갔다고 누가는 보고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인연을 떠올려 보십시다. 사울이었던 바울이 다메섹에서 회심하였습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무리의 선봉장이었던 사울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를 증언하는 증인이 된 것입니다. 사울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경험했던 그리스도 예수의 공동체인 교회가 당황했습니다. 그의 변화를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정서적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다메섹에서도 이 정도였으니 사울의 근거지였던 예루살렘은 재론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울을 놓고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킨 일과 사람이 있었음을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보고합니다. 사도행전 9:26〜30절에 주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사울의 급격한 영적 변화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당황하게 했는데 그 극점이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사울은 제자들을 찾아가 자신의 영적 변화를 간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워낙 사울의 악명이 높았던 터라 좀처럼 그에게 마음 문을 열지 않는 예루살렘 교회 제자들에게 직접 사울의 신원보증인을 자처한 사람이 바로 바나바 형제였습니다. 바나바는 사울 형제에 대한 적극적인 변호는 물론, 그가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지지해 주었던 응원자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문을 열었던 예루살렘 교회의 형제들과 사울은 의기투합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강력하게 증언하게 되었음을 사도행전 9장은 보고합니다. 이런 사역자로 변화된 사울을 가장 미워했고, 극도로 경계하며 그를 살해하고자 했던 헬라파 유대인들이 핍박이 거세지자, 예루살렘 교회 형제들은 사울을 보호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그의 신변 보호를 위해 고향 다소로 내려보냅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바울은 고향 다소로 내려가 어쩔 수 없이 칩거에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1장은 바울이 고향 다소에 내려가 칩거한 지 13년이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제부터 본문 해석에 더 집중해 주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에서 고향 다소로 거의 쫓겨가듯 피신해야 했던 바울은 그곳에서 13년이라는 세월을 숨죽이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다소 출신의 사울이라는 열혈 청년이 청운의 꿈을 안고 13년 전에 예루살렘으로 유학길에 올랐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울은 다소라는 이방 지역에 태어났지만, 그는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태어난 특혜를 받은 젊은이였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할 수 있는 베냐민 지파의 혈통을 갖고 있었고, 바리새파 출신이었기에 그는 유대적인 혈통으로는 진골 같은 존재였습니다. 더군다나 그가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한 이유는 당대 최고의 랍비인 가마리엘 문하에서 수학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탄탄대로를 걷고 유대 종교의 지도자로 굳건히 서가는 어간, 다메섹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서 그가 알고 있었던 일체 세속적 지식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 이방인을 위하여 하나님이 직접 부른 사도가 되었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랬던 그가 고향 다소로 피신해야 했던 이유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계획한 살해를 모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다소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500km 정도의 유격이 있는 장소입니다. 주후 1세기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두 장소의 물리적 거리는 평생 왕래할 수 없는 먼 거리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바울을 생각해 본다면 이 두 도시에 대한 담론에는 많은 신학적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접근해 보십시다. 성경을 유추해 본다면 사도 바울은 이 거리를 무려 세 번에 걸쳐 왕래했습니다. 물론 도보였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바울이 유학을 떠날 때였을 것입니다. 즉 다소에서 예루살렘까지 500km를 걸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루살렘에서 다소로 피해 내려올 때의 500km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때도 도보로 이동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세 번째는 오늘 본문이 증언해 주는 자료입니다. 바나바는 13년간, 고향 다소에서 칩거하고 있는 바울을 찾으러 다소를 방문합니다. 주목할 것은 수리아 안디옥에서 다소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175km라는 점입니다. 역시 도보로 산정할 때 이 거리 역시 만만하지 않은 거리입니다. 바울을 데리러 간 바나바는 그를 데리고 다시 175km 정도 떨어진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기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수고를 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점은 다소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든지, 아니면 수리아 안디옥을 가는 길이든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동선이 아마누스 산맥을 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네 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 11:26〜27절에서 이런 후기를 남긴 적이 있습니다.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이 왜 이런 지난(持難)했던 본인의 수기를 기록했는지 충분히 본문과 연계하면 이해가 됩니다.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바나바의 행보입니다. 바나바는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수장입니다. 오늘로 표현하자면 담임목사라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는 수리아 안디옥 교회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아 행복한 고민을 했던 소위 말하면 잘 나가던 부흥하는 교회의 담임목사였습니다. 그는 그가 누리고 있는 종교적 권력, 그리고 위상에 대한 자신의 입지가 얼마나 대단하고 견고하게 서가고 있는지를 몸소 스스로 체감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그냥 누리면 됩니다. 그러나 바나바의 행보는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무려 175k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바울을 데리러 다소를 방문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이 어떤 영적 권위와 하나님의 능력을 갖고 있는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를 안디옥 교회로 데려왔을 시, 혹여나 자신의 입지가 축소되거나 권위가 반감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이가 바나바였습니다. 이런 위험 인자를 안고 지니고 있던 사람이 바울인데, 바나바는 왜 그를 안디옥 교회의 동역자로 삼기 위해 그 먼 길은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그를 설득해 수리아 안디옥 교회로 데리고 와 동역하려고 했을까를 질문해 볼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 26절이 그 답을 통쾌하게 풀어줍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는 바울을 설득하여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동역 사역자로 세웠습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이 구절에서 이렇게 두 사람의 사역 보고를 남겼습니다. 이 두 사람이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동시에 협력 사역했는데 ‘큰 무리’를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구절입니까? 수리아 안디옥 교회 공동체가 더 부흥했다는 부흥의 연속성을 보고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보고가 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힘을 합쳐 안디옥 교회를 섬기자, 안디옥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이들을 향하여 별명이 하나 붙어졌음을 보고합니다. ‘크리스티아노스’(Χριστιανούς)라는 별명이었습니다. 이 명칭은 안디옥 교회 안에 있는 신앙인들끼리 주고받은 명칭이 아니었습니다. 이 명칭은 수리아 안디옥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붙여준 명칭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이 명칭은 고운 명칭이 아니었습니다. 비하하는 명칭이자, 호칭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신학적 함의는 매우 감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아노스’(Χριστιανούς)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들이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바나바의 적극적인 자기희생과 수고를 통해 이루어낸 바울과의 동역이 만들어낸 ‘걸작’(마스터피스)이 즉 ‘크리스티아노스’(Χριστιανούς)였습니다. 오늘 창립 16주년 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제가 왜 이 본문을 택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본문을 창립 기념 주일 본문으로 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나바 때문입니다. 전술했듯이 바나바는 자기의 입지를 견고히 하는 것에만 몰두했다면, 그는 절대로 175km나 떨어진 다소에 있는 바울을 떠올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자기의 입지, 출세, 입신양명에 눈이 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온 머리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을 주고 산 교회 즉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건강한 부흥과 그 안에 있는 성도들을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내는 것만이 존재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는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소에 방문하여 바울을 설득했고, 그 설득 끝에 그를 데리고 안디옥 교회에 데리고 왔음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후 보고한 대로 가장 이상형의 이방 교회인 안디옥 교회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나바를 통해 오늘 우리 세인 교회 지체들이 담아야 하는 창립 16주년 기념 주일의 영적 교훈을 담지(擔持)하겠습니다. ※ 세인교회와 성도들은 교회 본질을 붙드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에 담임목사가 묵상한 자료를 공유하겠습니다. 그날, 묵상한 성서 구절은 사무엘상 17:28〜30절이었습니다.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다윗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묵상 내용을 전합니다. “오늘 성서 일과를 꽤 많이 택해 설교했다. 그만큼 오늘 성서 일과는 내게 적지 않은 통찰을 하게 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블레셋과 전투가 치열했을 때, 이새가 아들들의 안위가 궁금해 막내 다윗에게 형들이 먹을 음식을 챙겨 보냈다. 전쟁터에 가보았던 다윗은 아연실색했다. 블레셋과 일전을 앞둔 이스라엘 진영은 이미 패색이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골리앗이 준 위상이 너무 엄청나게 압도적 위협이었기에 기세에서 밀려 있었다. 다윗은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능멸하는 모욕적 언사를 듣고 분노했다.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이 할례받은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언사가 하나님을 모욕하는 언사로 들렸기 때문이다. 전쟁터에 싸우러 나온 군사들에게 상황이 이 지경이 된 자초지종을 묻는 다윗을 보았던 장형 엘리압은 다윗의 행동을 퍼포먼스로 해석하고 혹독하게 나무랐다. 이런 큰형의 공격에 대해 다윗이 보인 반응이 언제나 목회자로 서서 현장 사역을 감당했던 내게 큰 울림이자, 거울이 되어 비춰주기에 언제나 내겐 경종의 소리로 다가온다. 다윗은 큰형의 질타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았다. 다만 자기가 느낀 영적 굴욕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며 전쟁의 상황에 대해 파악했다. 다윗이 큰형 엘리압에게 보인 태도를 표현한 이 단어가 굵직한 소리로 울린다. “돌아서서”다. 유진 피터슨은 이 단어를 이렇게 의역했다. “형을 의식하지 않았다.” 지난 시간의 목회 연륜 동안, 나는 엘리압과 싸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엘리압과 싸우는 것이 백해무익함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내가 왜 목사가 되었는가? 엘리압과 싸우기 위해서 목사가 된 게 아니다. 내가 치열하게 목회 현장에서 싸워야 하는 대상은 골리앗이다. 교회 상황이 어찌 된 일인지, 엘리압과 싸우면 기진하고 탈진한다. 골리앗과는 싸워보지도 못할 정도로 이미 탈진이다. 이런 주객전도가 어디에 있나. 이것을 젊은 날, 너무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나는 결심했다. 엘리압이 공격할 때 뒤돌아서리라고. 반응하지 않으리라고. 나는 골리앗과 싸우기도 버겁고 시간이 없기에 전혀 쓸데없는 엘리압과 겨루는 힘겨루기는 일도 반응하지 않기로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 안에 엘리압이 너무 많다. 그러기에 진짜 중요한 사역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게 하는 경우를 그들이 만든다. 너무 극명한 사탄의 계교다. 이기는 방법은 흔들리지 않고 무서울 정도로 골리앗에게 집중하는 일이다. 이것 말고는 엘리압을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러기에 다윗이 공격하는 큰형 엘리압에게서 돌아섰다는 메시지가 내게는 산소호흡기 같다. 나도 끝까지 그렇게 사역하련다. 내 영적 고집이다.” (4월 25일 묵상집에서) 교회가 붙들어야 하는 명제는 골리앗과 맞서 그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골리앗 무너뜨리기가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교회 안에서 엘리압이 공격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엘리압과 씨름하다 보면 골리앗과의 싸움은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쳐 쓰러질 때가 비일비재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엘리압과 싸우는 것은 비본질에게 쓸데없이 영력을 소비하는 일입니다. 전술한 금요일 성서 일과 묵상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을 알고 난 뒤에 결심한 게 있습니다. 엘리압과의 싸움이 벌어지면 주저 없이 돌아서서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러 다소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자기의 입지, 위상, 헤게모니 등등에 일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엘리압에게서 완전히 격리하기로 마음 먹은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 주님이 맡겨주신 안디옥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만드는 것, 이것 하나에 올인했습니다. 골리앗 쓰러뜨리기에 집중한 것입니다. 나는 세인 교회 창립 16주년 주일에 교우들에게 선포합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본질에 천착하고 달려가십시다. 교회를 교회답지 않게 만드는 비본질에서 과감히 돌아서는 교회가 우리 세인 교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 교회만이 하나님이 교회로 인정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알기에 오늘도 이렇게 기도하는 것에 소홀하지 않습니다. “주님, 세인 교회는 본질에 목을 걸게 하시고, 비본질에서는 돌아서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결론) 저는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지난 주간에 읽었던 김기석 목사가 포효했던 천둥소리 함께 듣고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가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노라 하는 신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고백과 삶의 거리가 너무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정원인 구체적 삶의 자리를 아름답게 가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말 1:10)는 말씀이 천둥소리처럼 우리 가슴을 울립니다. 이제는 달라지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시원함을 드리는 이들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를 버리지 마시고, 우리를 주님의 일꾼으로 삼아 주십시오.” (김기석, 『당신의 바다에 많은 길을 내시어도』, 꽃자리, 335쪽) 나는 세인 교회가 교회 문을 닫는 교회가 아니라, 활짝 여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려면 교회를 교회답게 하지 않는 일체 비본질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일체 본질을 붙들고 비본질은 버려야 합니다. 엘리압에게서 돌아서야 합니다. 오직 골리앗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향후 교회 창립 17년 이후는 세인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진정한 예배가 숨 쉬는 교회/주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 믿음의 기도가 쌓이는 교회/최고의 찬양을 드리는 교회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교회/성도의 사랑이 넘치는 교회 섬김과 헌신이 기쁨이 되어/열매 맺는 아름다운 교회 주님의 마음 닮아서/이웃을 사랑하는 교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빛 되신 주님 전하는 교회 사랑의 불꽃이 활짝 피어나/날마다 사랑에 빠지는 교회 주께서 사랑하는 우리 교회가/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