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제목파라클레토스2024-06-17 15:47
작성자 Level 10

2024년 5월 19일 성령 강림 주일 설교 (요한일서 다섯 번째 강해)

 

제목파라클레토스

본문요한일서 2:1-6

 

서론)

 

오늘은 2024년 성령강림주일입니다.

내 삶의 한복판에 전 인격적 개입하심으로 찾아오신 성령의 내주하심을 오늘 주일을 통해 더 강력하게 체휼하는 주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께서 부활하신 이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하신 이후 승천하시면서 감람산에 있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명령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45절을 읽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주께서 제자들에게 명한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⓵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⓶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 명령을 하시고 승천하신 지 50일이 되는 날에 제자들이 모여 있었던 예루살렘 모처에 있던 다락방으로 약속하셨던 성령이 찾아오셨습니다.

사도행전 2:14절은 이렇게 보고합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은 유월절을 지낸 후 50째가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날을 구약성서의 증언으로는 칠칠절이라고도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날의 의미를 현대적인 기독교적인 용어로 대체하자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50일이 되는 날이라고 해서 오순절 혹은 성령강림절이라고 명명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을 기념하는 2024년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저는 오늘 2024년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일일 부흥성회 차원에서 말씀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오늘 세인 교회 예배당이 제자들이 떠나지 않고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찾아온 예루살렘에 소재해 있는 다락방이 되기를 소망하고 그날 그곳으로 제자들을 찾아오셨던 전인격적인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행복한 주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론)

 

본문 여행으로 들어가겠습니다.

1절을 눈을 크게 뜨고 주목하는 교우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代言者)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 구절을 공동 번역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믿음의 자녀인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그러나 혹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그분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구절에서 특히 눈에 띄는 단어가 변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대언자’ 혹은 변호해 주는 분은 헬라어 단어 파라클레톤’(παράκλητον)의 번역입니다.

파라클레토스를 요한복음에서는 보혜사라고 번역했고근래 다른 번역 성경들은 변호자’ 혹은 조력자’, ‘위로자’, ‘상담자’, 혹은 오늘 본문처럼 대언자라고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성령님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요한복음 14:16절을 읽어 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한복음 저자는 파라클레토스를 보혜사’(保惠師)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단어가 곧 성령님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주목할 것은 우리들이 오늘 읽은 요한일서 본문에서는 파라클레토스를 대언자라고 번역하면서 그 대상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못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종합적인 결론에 도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대언해 주시는 보혜사입니다.

하지만 보혜사이신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고지 한 내용은 너희들을 위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보혜사이셨기에 또 다른 구별된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파라클레토스는 예수님이시기도 하고성령님이시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주일 설교를 통해 파라클레토스가 예수님이자 성령님이라는 이해를 조금은 더 세밀하게 성서적으로 주석해보려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오십일이 되기 전까지 당신의 자녀들을 위한 대언자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고난주간의 목요일 저녁에 제자들에게 기독교 교리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비밀을 알려주었습니다.

두 구절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16:7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또 한 구절인 요한복음 15:26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이 두 구절을 종합하면 이런 의미가 다가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 우편으로 승천하셔야 성령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줄 것인데그 진리는 다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고 설명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임을 분명히 시사합니다.

이제 요한복음 14:26절을 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뿐 아니라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일체 은혜와 교훈과 진리를 생각나게 해주는 돕는 하나님이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결국 성령님의 역할은 예수께서 행하셨던 사역을 계승하며 보전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12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한서신의 저자는 이 편지를 쓰게 된 목적을 주후 1세기 후반 기독교 공동체 안에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이것이 편지를 쓰게 된 분명한 목적입니다.

하지만 요한일서 저자는 이런 목적을 선언한 뒤에 너무 중요한 기독교 신앙공동체가 흔들리지 않고 견지해야 하는 중요한 교리를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합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하겠지만혹시 당신의 자녀들이 죗성으로연약성 때문에 영적으로 무너져 짐짓 범죄 한 일이 벌어지면 예수께서 변호사가 되어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죄를 방어해 주신다는 중요한 교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교우들에게 각색하여 설명해 보겠습니다,

김은총이라는 모태 신앙인이 있었습니다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먹으며 자랐기에 태어난 이후에도 별 탈이 없이 잘 자랐습니다부모를 따라 교회학교도 잘 출석하고신앙생활도 잘했던 은총이었습니다그렇게 성장하던 은총이는 고등학생이 되자이성적인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했고이성적인 머리로 받아들이는 성경은 모순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교회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대학에 입학하자 그런 이성적 자아는 극점에 도달해 아예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불신앙자가 되어 교회를 떠났습니다그렇게 하나님을 멀리하며 세속주의에 빠져 살다가 불신자 남자를 만나 아주 자연스럽게 결혼했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결혼을 하고 나서 자기 가정은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임신해서 첫 아이를 출산했는데 다운증후군 장애아였습니다이 아이로 인해 가정의 행복은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설상가상으로 세상에서 잘 나가던 남편이 어느 날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 불행이 겹겹으로 닥쳐왔습니다은총이는 자기에게 엄습한 불행을 이길만한 자세나 용기가 없는 여인이었습니다도무지 더 이상 삶을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자살을 결심했습니다죽기로 결심한 바로 그날 저녁하염없이 울다 지쳐 잠이 들었고 은총이는 꿈을 꾸었습니다그녀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 있눈 꿈이었습니다검사석에 앉아 있던 사탄이 판사인 하나님께 은총이의 삶의 이력서를 꺼내며 낱낱이 그녀를 정죄했습니다은총이는 사탄이 읽어 내려가는 죄의 이력 앞에 그 모든 일이 사실이었기에 도무지 방어할 수 없어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사탄이 고발하는 은총이의 죄 고발장을 다 읽자하나님께서 최종 선고를 내리기 위해 판결문을 들었습니다바로그때 변호인석에 앉아 있던 예수님께서 벌떡 일어서서 하나님의 심판 선언을 잠시 멈추게 한 후에은총이를 위해 변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ㅂ변호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아버지사탄이 읽었던 은총이에 대한 죄 고발장은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완벽합니다죄의 목록과 내용을 근거한다면 은총이는 단테가 말한 대로 지옥의 9옥 중의 한 곳에 있어야 하지만은총이에게 무죄를 선고하셔야 합니다왜냐하면 내가 은총이의 죄를 위해 먼저 죽었기 때문입니다아버지가 내게 약속했습니다나를 믿는 자는 그들의 죄를 기억도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내가 은총이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먼저 죽었으니까 은총이는 이미 죄를 용서받은 딸이기에 무죄입니다.”

아들의 변론을 들으셨던 하나님께서는 갑자가 판결문을 다른 것으로 택하셨습니다그리고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피고의 죄는 유죄의 이유를 증명하고도 남지만피고의 죄를 아들 예수가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한다.”

잠에서 깬 은총이는 너무나 생생한 꿈 때문에 쏟아지는 눈물로 밤을 지새웠고다음 날 아침에는 그 옛날 부모님과 함께 다니던 교회를 찾았습니다그녀는 그곳에서 주체할 수 없는 회개의 눈물을 쏟으며 자기의 삶이 얼마나 교만했고이기적인 삶이었는가를 발견하고 회개한 뒤에 하나님의 품으로 회귀했습니다이후그녀의 삶이 새로워졌음은 물론남편과 아이를 위해 새로운 인생을 살았음을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세계적인 정신과 의사이자 크리스천 심리학자로 유명한 M, 스캇 펙이 쓴 거짓의 사람들에 나오는 한 상담 실례를 담임목사가 각색한 글로 읽어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저와 여러분의 대언자이자 변호자이신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이제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 강림 주일을 맞아 성령님으로 대입시키려고 합니다.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오늘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실까요?

본문 36절에서 요한일서 저자가 이것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본문 저자의 일성은 매우 단호합니다.

주님이 명령하셨고 직접 지키셨던 계명 안에 그리스도인들이 있게 하는 것이며더불어 그 계명을 지키도록 인도하는 일이 바로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자 임무였음을 본문이 보고합니다.

본문 마지막 6절의 교훈이 오롯하게 다가옵니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너무 선명한 교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의 증거는 예수께서 행하셨던 것을 그대로 행하며 실천하는 자임을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홀로 이렇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0%입니다.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성령님은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또 다른 보혜사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하명(下命받은 대로 살 수 있도록 독려하고 응원하며 때에 따라 변호하는 하나님이 성령님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령강림주일 아침에 본문을 통해 받게 되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 성령님은 나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머물게 하심으로 그분의 삶을 살아가도록 만드시는 인격의 영이십니다.

 

지난 목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스케줄에 따라 금요일 새벽에 나눌 큐티 본문을 펴고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날 텍스트는 열왕기상 18:115절이었습니다.

말씀을 집중하여 묵상하는데 성령께서 서재에 오셔서 저를 강권해 주시며 새겨준 구절이 6절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묵상할 때 강력하게 조명하신 말씀을 근거로 묵상 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문해 보았다. 3년 동안북쪽을 휩쓸고 있는 가뭄이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의 결과물이라고 아합은 생각했을까순전히 개인적 소회이기에 주관적일 수는 있겠지만아합은 악녀 이세벨의 영향하에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암묵적으로 묵인한 바알리즘을 숭배하게 한 공범자임은 분명하다하지만 아합의 내면에는 야훼 신앙에 대한 정서적 여백을 갖고 있었기에 작금 자신이 통치하는 북쪽에 몰아닥친 가뭄의 원인 제공자가 자신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아합의 그늘진 마음의 후미에 있었을 것으로 나는 추론한다그러기에 아합은 자신의 통치 영역에 임한 심각한 자연재해가 자기의 죄악 때문이라고 심증적으로 동의했을 것이고엘리야를 만나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풀고 싶었을 것으로 추측된다아합은 야훼 신앙인이었던 내각 참모 오바댜를 불러서 물을 낼 수 있는 근원을 찾아보자고 독려했고두 사람은 북쪽의 생사가 걸려 있는 물 찾기에 나섰다이 보고를 적시한 오늘 성서 일과의 한 구절이 내게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6)

이 구절에 대한 문자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두 패로 나뉜 아합과 오바댜의 국가적 권력들이 물 근원을 찾기 위해 모든 공권력을 동원하여 사활을 걸고 몸부림쳤다는 보고일 것이기에 말이다하지만 나는 이 구절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아합의 치세 기간은 야훼 신앙을 무시하던 랜덤의 시기였기에 아합의 길은 대세의 길이었지만 하나님과 관계없는 길이었다반면 오바댜의 길은 발견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고통스럽고 외로운 비주류적 신앙의 길이었지만 그 길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길이었다이 두 길은 같은 길이 아니다전혀 다른 길이다나는 이 두 사람의 길이 갈라졌다고 표현한 오늘 성서 일과 묵상에서 전율하는 감동을 받는다그리스도인이 걷는 길이 편한 길이어서야 되겠는가승승장구하는 길이어서야 되겠는가성공의 성공을 거두며 희희낙락하는 길이어서야 되겠는가안전한 너무나도 안전한 길이어서야 되겠는가주군이 그런 길을 걷지 않으셨는데오바댜가 걸었던 길은 아합이 걸었던 길과는 반대의 길인 것이 맞다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성서의 구절이 오늘을 시작하는 내 삶의 출발점에서 오롯이 성큼 다가온다.

아합은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저 길로 가니라

세속적 야망과 성공의 길은 같이 걸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길이다오늘 성서 묵상의 레마다.

이렇게 적은 묵상 노트를 중심으로 큐티 설교를 하기 위해 금요일 새벽 예배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 묵도했습니다.

순간성령 하나님께서 다시 오셨습니다.

그리고 전날 주셨던 말씀과 연계하여 또 다른 구절의 감동을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바로 열왕기상 18:7절 전반절이었습니다.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그를 만난지라

이 평범한 구절이 그날 새벽에 내게는 성령님의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습니다.

아합이 걷고 있는 안락의 길이 아니라아합과 이세벨 모르게 야훼 선지자 100명을 숨겨 지원하고 있던 오바댜는 살얼음판을 걷는 지난한 삶의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살벌하고 아픈 길을 걷던 그 걸음의 노정에 엘리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이 말씀의 조명을 나는 이렇게 받았습니다.

주님이 걸으셨던 그 길을 걷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천로역정의 길에 주님이 기다리고 계신다고.

이 말씀은 그날제게 주신 성령님의 음성이자부족한 종을 은혜의 자리에 머물게 만드신 성령의 인격적인 일하심의 증거였습니다.

 

결론)

 

저는 이제 설교를 맺으려고 합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하여 1990년대까지 한국교회에 성령의 은사 운동이 날개를 달고 활개를 쳤습니다.

그 결과한국교회는 수적으로 부흥하고 각양의 은사 활동들이 일어나면서 정적 부흥의 물꼬들이 터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외적 은사주의가 판을 치다 보니 교회 안에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부작용 중에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은 외형적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하면 은혜가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이고믿음이 부족한 것이 그 이유라고 몰아치는 몰상식한 처사들이 한국교회를 잠식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했기에 당연히 따라온 부작용은 성령의 내적 은사들이 무시되었다는 점입니다.

성령의 내적 은사를 이재철 목사는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내적 은사는 모두 말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말씀을 적용하는 은사말씀을 해석하는 은사말씀에 신실해지는 은사입니다이 세 가지 은사를 통해 우리는 내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이재철성숙자반, 351)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내재적인 은사는 공통 분모가 있습니다.

전부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임하시는 성령님의 전인격적인 동행하심이라는 공통점입니다.

나는 오늘 성령강림주일에 성령님께서 세인 교회 공동체 지체 모두에게 전인격적으로 오셔서 말씀이라는 통로를 통해 여러분과 동행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급해 주시는 은혜에 지속해서 머무는 교우들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성령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혜사로 여러분에게 임하셔서 날마다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세인 지체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오소서 진리의 성령님 이 땅 흔들며 임하소서 거짓과 탐욕 죄악에 무너진

우리 가슴 정케 하소서

오소서 은혜의 성령님 하늘 가르고 임하소서 거룩한 불꽃 하늘로서 임하사

타오르게 하소서 주 영광 위해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 땅 가득 불어와

흰 옷 입은 주의 순결한 백성 주의 영광 위해 이제 일어나

열방을 치유하며 행진하는 영광의 그 날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