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제목빛에 거하기2024-06-14 19:08
작성자 Level 10

2024년 4월 28일 주일 설교 (요한일서 세 번째 강해)

 

제목빛에 거하기

본문요한일서 1:5-7

 

서론)

 

그룹 BTS가 소속되어 있기에 K-POP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인 하이브(HYBE)와 그 하이브와 관계되어 있기는 하지만독립된 레이블이라고 볼 수 있는 어도어(ADOR) 사이에 벌어진 경영권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한 뉴스가 한 주간 거의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도배한 톱 기삿거리였습니다.

저는 목사이기에 이 두 기업 간의 벌어진 경영권 다툼에 대한 내막이나 줄거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스토리를 설교의 화두로 삼은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BTS가 속해 있기에 하이브가 갖고 있는 주식의 가치그리고 CEO의 재산은 거의 천문학적 가치를 갖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연히 하이브 관련 뉴스가 화젯거리가 되자하이브 본사에 대한 리포팅들이 방송에서 여러 차례 영상으로 보도되었는데제 눈에 띈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이브 사옥 정문에 새겨져 있는 문장이었습니다.

We believe in Music. (우리는 음악을 믿습니다.)

이 문장은 그 유명한 미국 달러 지폐에 새겨져 있는 문장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미국 지폐 1달러의 뒷면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In God We trust.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저는 미국 1달러 지폐에 담겨 있는 문구를 보면서 아주 묘한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가 그려진 1달러 지폐의 앞면이 상징하는 것은 아마도 그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고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그가 취임식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서약한 것처럼 미국이라는 나라는 앞으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나라가 될 것임을 선포한 것이기에, 1달러 뒷면에 In God We trust.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라는 문구를 삽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신생국 미국 경제의 영역도 주님의 통치하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이 좋았던 미국은 지금 1달러 지폐에 문구를 바꿔야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In Mammon We trust. (우리는 맘몬을 신뢰합니다.)

미국은 지금 전 세계를 맘몬의 힘으로 통치하는 나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맘몬의 본부인 월 스트리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숨통을 쥐고 있는 빅 브라더입니다.

하이브가 왜 음악을 믿는다고 공언했습니까?

음악 자체가 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음악을 통해 주어지는 천문학적인 맘몬의 이익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이 추구하던 것들이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시카고 대학교의 종교학자였던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가 언급한 대로 인간은 호모 렐리기오수스이었습니다.

즉 인간은 종교적 인간이었다는 말입니다.

저는 종교의 완전성에 대한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가 믿는 기독교도 종교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완벽하지 않습니다.

내가 기독교를 선택한 이유는 기독교가 흠이 없고 완벽한 종교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내가 믿는 하나님이 완벽하시기 때문에 나는 기독교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적인 인간을 학문명으로 호모 렐리기오수스라고 말할 때는 오늘의 이 시대가 겪고 있는 비인간적 참담함은 극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참담한 지경으로 우리의 사회가 몰락한 이유는 지금 시대가 호모 데우스의 시대 즉 신이 된 인간의 시대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맥을 오늘 성경 본문으로 적용해 본다면 빛에 거하던 인간이 어둠에 거하는 인간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본론)

 

본문 5절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이 구절은 본서와 같은 저자로 여겨지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이미 갈파했던 내용을 뒷받침해 주는 중요한 요절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49절을 소개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복음 기자는 이렇게 역설했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예수는 이 땅에 빛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예수께서 오신 이유는 빛을 비추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못 박고 있습니다.

하지만 빛으로 오신 예수를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어둠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하나님은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그의 길을 예비하도록 하기 위해 세례자 요한을 앞서 보냈지만그는 빛 자체가 아니라 빛을 소개하는 자라고 요한복음 기자는 세례 요한의 역할을 분명히 정했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 증언할 때 이렇게 증언하였음도 요한복음 저자는 밝힙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1:9)

빛은 에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 빛이셨을까요?

그 답은 오늘 본문이 제시해 줍니다.

다시 본문 5절입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답이 너무 선명합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기에 그가 보낸 아들도 빛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공식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어둠이라는 여백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전제할 때우리들은 너무나 명징한 교훈에 도달합니다.

본문 67절을 나누어 보십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저자가 발언한 메시지는 너무 당연한 메시지이고 명쾌한 성찰이기에 다른 어떤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명약관화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두 번째 강해 설교를 통해 사귐의 영성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레마를 기억하십니까?

주님과 사귄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귀로 듣고그분을 만지고그분을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전제 조건이 분명해집니다.

그분의 속성인 빛으로 비춤을 받는 것 즉 그 빛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만진다는 것은 곧 내가 그분의 빛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본다는 것은 곧 내가 그분의 빛 안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반면이런 명확한 교훈의 반대도 보입니다.

내가 빛 되신 주님의 품 안에 거하지 않는 것을 요한일서 저자는 세 가지로 정의합니다.

⓵ 어둠에 머무는 것입니다⓶ 거짓말하는 것입니다⓷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곧 이 메시지는 요한복음에서 제시했던 메시지와 일맥상통합니다.

다시 요한복음 1:5절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렇습니다.

어둠에 머물면 거짓말하는 자가 됩니다.

어둠에 머물러 있으면 진리를 행하지 않습니다.

어둠에 있는 자들곧 빛 되신 주님과 교제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갖고 있는 공식입니다.

요한복음 12:911절을 읽겠습니다.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이 구절을 읽다 보면 목사의 직을 갖고 평생을 살아온 나를 긴장하게 하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주님이 베다니에서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경천벽지할 일이었습니다.

베다니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전역으로 예수에 대한 소문은 급물살을 타며 노도와 같이 번져 나갔습니다.

그러니 이 놀라운 기적의 진원지였던 베다니는 주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인파들이 베다니로 몰려들었습니다.

이유는 딱 한 가지죽은 사람을 살렸다는 예수와 그 예수께서 죽음의 터널 안에 있었던 나사로를 건져 다시 인생을 살고 있는 나사로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때 베다니로 몰려들었던 인파들은 기적이 사실적인 사건인가를 확인하고 싶었던 자들과 다시 살아나 활동하고 있는 나사로를 보는 순간이 기적이 사실임을 확인하면서 예수를 믿기도 작정한 자들 모두를 지칭할 것입니다.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죽었던 자가 다시 살림을 받은 것과 또 그 사건을 눈으로 목격함으로써 예수를 믿기로 한 자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어둠에 거하던 인생을 청산하고빛에 거하기로 결심하고 빛으로 옮겨 탄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대단히 반가운 일이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기쁨이 있었던 영역과는 달리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어둠 속에 끝까지 거하기를 다짐한 자들의 면면이 나사로 부활 사건과 관련하여 존재했다는 점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입니까?

대제사장들이었습니다.

모름지기 이들은 당시 종교의 핵심층에 있었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이라고 복수 명사로 거론한 것을 보면 이들은 예루살렘에 본부를 두고 있었던 산헤드린 공회의 수장이었던 가야바와 그에게 대제사장직을 세습한 그의 장인 안나스를 지칭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부활에 대한 종교 지도자로서 축하해 주어야 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축하는 고사하고 대단히 악한 일을 계획했음을 요한복음 저자가 보고합니다.

다시 한번 요한복음 12:10-11절을 복기하겠습니다.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대제사장들이 예수는 물론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베다니로 갔다는 보고는 음습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 이들은 이럴 수밖에 없었을까요?

자기들의 기득권이 허물어지는 것에 대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극단의 이기성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세속적 이익을 해치는 자들은 조금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악한 생각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목사로 느끼는 한 가지 소회를 숨길 수가 없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자기들이 계획하고 모의한 일이 사악한 죄악임을 몰랐을까이 질문입니다.

단언합니다.

모를 리 없습니다.

알아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저들은 자기들의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답을 한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둠에 머물러야 자신들의 유익이 극대화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어둠에 머물러 있어야 어둠이 주는 세속적 만족과 유익이 자기들에게 머물러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56절을 다시 읽어볼까요?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명심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에게는 조금의 어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금의 어둠도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에게 거하려면 내 어둠의 자리를 이탈해야 합니다.

머물면 나는 빛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결단을 해야 합니까?
그 답을 본문 7절이 우리에게 줍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렇습니다.

어둠을 떨쳐 버리고 빛 되신 주님과 사귀려면 한 가지를 해야 합니다.

 

※ 빛 가운데 거하면 됩니다.

 

빛 가운데 거하라는 말이 피상적으로 들리십니까?

그렇다면 로마서 13:12-14절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에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에 아멘 하는 자가 빛 가운데 거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진정성을 갖고 로마서 13:12-14절 말씀에 아멘 할 수 있습니까?

아멘 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혼란스러움에 대해 교통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설교를 준비하다가 지난 목요일에 있었던 담임목사 셀 사역에서 나누었던 지체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에 셀 원들과 나누었던 텍스트는 새신자반』 8과 예배란 무엇인가였습니다.

매번 하는 것처럼셀 원들이 8과를 읽고 난 뒤의 결과물들을 코멘트로 나누었습니다.

지체 한 명이 나눔 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이번 8과에서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특히 번제에 대한 해석으로 적용한 예배자의 모습은 정말로 압권이었습니다저는 우리 세인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새신자반을 아무리 늦어도 5년에 한 번씩은 반드시 다시 읽고 재훈련을 받을만한 충분히 가치가 있는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특히 번제의 방법에 나오는 것처럼 제물의 손과 다리를 절단하고껍질을 벗기고안에 있는 내장도 제거한 뒤에 가장 귀한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되 불에 태워드리는 번제가 주는 현대적 메시지가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는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자기를 죽이는 시간이 바로 예배 시간이며예배자의 모습이라는 가르침에 전율했습니다이 예배자의 모습을 나도 민감하게 견지하고 내 딸에게도 이런 태도로 예배하도록 지혜롭게 가르칠 예정입니다.”

지체의 고백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해서 또 하나의 감동을 모든 셀원들과 나누며 그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저는 소제를 예로 들었습니다.

소제는 곡물을 예물로 삼되 그 곡물을 반드시 고운 가루로 빻아야 했다조그마한 덩어리가 있어도 안 된다미세한 분말이 될 때까지 갈아야 한다제사를 드리는 자는 그처럼 곡물을 갈면서 자기의 생각과 뜻을 몽땅 함께 가는 것이다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그 위에 고운 가루와 유향을 더해야 했다보통 기름이 아닌 고운 기름과 유향은 모두 귀함이 상징이다예배는 우리의 뜻과 생각을 말씀의 절구통에 넣어 빻고 가는 시간이다.” (이재철새신자반,홍성사, 2000, 289)

인간은 예외 없이 어둠속에 거하기를 좋아하는 본질적 죗성이 있습니다.

어둠에 거하면서 나를 드러내기 좋아하는 죗성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은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포기할 것인가?

그러면 되겠습니까?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거하는 자가 되도록 치열하게 분투하며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방법으로 저는 한 가지를 제시합니다.

신실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주님과 만나는 신실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기에 성공할 것입니다.

이전에 이런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살지 마십시오신앙생활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바꾸겠습니다.

단 한 번의 예배를 드려도 그 예배를 통해 여러분의 자아를 완전히 가십시오.

여러분 모두의 욕심의 자아를 말씀의 절구통에 넣어서 산산조각 내십시오.

단 한 번의 예배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그 예배를 통해 당신을 완전히 죽이십시오.

여러분이 오늘 드리는 예배는 폼 잡을 만한 예배가 아닙니다.

지금도 제삼 세계의 지하 기도처에서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또 한 번의 예배입니다.

저는 35년이라는 세월 목양의 현장에 있으면서 거의 영적인 대헌장같이 여기게 된 목양의 철학이 있습니다.

나는 쳐서 복종하는 예배를 드리는 자나를 산산조각 내서 신실하게 예배하는 자나를 온전히 죽이고 나라는 자아를 번제물로 드리는 예배자는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 거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진리이시며 빛이신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 신실한 예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저는 이제 설교를 맺으려고 합니다.

얼마 전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소개를 받았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찬사까지 받은 잘 나가는 나라 영국은 사실은 햇빛 보기가 쉽지 않은 나라라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1년 1/3만 해를 볼 수 있고그 나머지 시간에는 해가 뜨지 않는 흐린 날이 거의 대부분인 나라가 영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사에 의하면 영국인들이 갖고 있는 우울 지수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배나 높다는 보고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왜 아니 그러겠습니까?

해를 자주 보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질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배가 높다는 보고를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 있습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질병이 아닌 우리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치명적 암세포입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신실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신실한 예배자는 빛 안에 거하여 어둠을 물리칩니다.

이 은혜에서 빗나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신실하게 진실하게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 마음 만져주소서

하나님 나의 영혼 새롭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하나님 나의 기도 들어주소서

하나님 주의 길로 인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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