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일 월요일 성서 일과 묵상 곧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06:1-6, 13-23, 47-48, 신명기 4:9-14, 디모데전서 4:6-16, 시편 144:9-15, 아가 3:6-11 꽃물 (말씀 새기기) 시편 106:13-23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그들이 진영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거룩한 자 아론을 질투하매 땅이 갈라져 다단을 삼키며 아비람의 당을 덮었고 불이 그들의 당에 붙음이여 화염이 악인들을 살랐도다 그들이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 그는 함의 땅에서 기사와 홍해에서 놀랄 만한 일을 행하신 이시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마중물 (말씀 묵상) 시인의 술회가 무척이나 아프다. 야훼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살핀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장소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인한 승리였다. 하지만, 오늘 성서 일과가 무거운 이유는 그 은혜를 선민 공동체가 잊었다는 데에 있다. 번역본에 기록된 부사 ‘곧’은 매우 아프다. 430년은 결코 짧은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다. 매우 긴 세월이다. 그 기간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이 체감헤야 했던 고통의 심연(深淵)이 얼마나 컸을지, 36년이라는 세월이 치욕을 경험한 선조의 후손인 나는 직접 체휼한 세대가 아님에도 치가 떨리는 수치감을 느끼는데 하물며,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주신 야훼 하나님의 은혜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온 선민 공동체는 그 은혜를 잊었다고 오늘 성서 일과 기자는 고발한다. 곧 잊었다고 말이다. 신앙의 여정이란 무엇일까? 내게 주신 은혜를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로 두려운 것은 은혜가 만연하고 익숙하면 그 은혜가 당연한 것이라고 치부하며 무감각해지는 재앙에 무뎌지는 삶이다. 요즈음 핫한 복음성가 가사가 적절한 표현이 된다. 그렇다. 은혜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은혜는 주어진 특권이었다. 오늘 생명의 삶 묵상 에세이에 C.S, 루이스가 인용한 블레즈 파스칼의 촌철살인을 교우들과 읽었다. ”하나님이 기도를 만드신 목적은 피조물에게 어떤 유발하는 존재로서의 특권을 부여하시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방편들을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은혜는 특별한 것이다. 오늘 말씀 묵상을 통해 다잡이한다. 은혜를 곧 잊어버리는 영적 패륜아가 되지 말자고. 오늘 성서 일과에 제시된 부사 ‘곧’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두레박 (질문) 나는 은혜에 민감한 그리스도인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주님, 주님이 공급하시는 은혜에 둔감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은혜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은혜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무감각을 지워버리게 하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시분초마다 은혜를 복기하고 상기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이타적인 삶을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 9월, 세인 교회가 이타적 사역에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