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9일 금요일 성서 일과 묵상 자식이 뭔지… (ㅠㅠ)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34:1-8, 사무엘하 17:15-29, 갈라디아서 6:1-10, 시편 130편, 사무엘하 14:25-33 꽃물 (말씀 새기기) 사무엘하 14:33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아들 내외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지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을 넘겼다. 아들을 출가시키면 이제 뒤치다꺼리가 끝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챙겨야 할 식구가 많아졌다. 특히 며느리한테는 무조건 항복하는 시아버지인 나는 그렇다. 시어머니인 아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참 이상한 건, 우리 부부는 언제나 을(乙)이다. 아들 내외가 무언가를 요구하면 항상 들어준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수없이 복기하지만 여전히 원래 자리에 있다. 무슨 죈 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1년은 더더욱 그랬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 관계는 별로 개선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압살롬은 다윗에게 있어서 버려야 할 자식이었다. 천륜을 어겼고, 인륜을 어긴 패륜아였기 때문이다. 이복형이었고 원수보다 못한 형이었기는 하지만 암논을 죽인 것은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간 질 나쁜 행위였다. 그러기에 2년 동안 다윗은 압살롬과 관계를 단절했다. 문제는 그 관계의 단절을 다윗이 항상 마음에 두었고, 그 불편한 관계를 다윗이 청산한다. 오늘 성서 일과 33절에서 입을 맞춘 것은 용서를 빌려온 압살롬이 아니라, 다윗이었다. 자식이 뭔지, 다윗이 항복했다. 이 우유부단함은 다윗을 더 큰 절망을 경험하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고, 절망적인 불행을 불러오는 단초가 되었다. 아들 압살롬은 이런 차원으로 바라볼 때 존재하지 말아야 했을 씨앗이었다. 그런데도 다윗은 압살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렇게 울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삼하 18:33) 이론 설명 불가다. 자식이 뭔지. ㅠㅠ 두레박 (질문) 혹 나에게 자식이 우상은 아닌가? 깊이 질문해 본다.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아들 내외의 삶이 내가 이끄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적으로 이끄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아들 내외가 영적으로 의존적인 자들이 아니라, 독립된 자아로 설 수 있는 목회자 부부가 되도록 중보해야겠다.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주말로 들어서는 금요일입니다. 지체들이 세속과 줄타기하며 중간에 서는 이들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방향을 선회하는 날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