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금요일 성서일과 묵상 제발, 내버려둬 쫌!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103:8-13, 창세기 41:53-42:17, 사도행전 7:9-16, 시편 114편, 출애굽기 14:1-18 꽃물 (말씀 새기기) 출애굽기 14:11-12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마중물 (말씀 묵상) 애굽을 떠나 믹돌과 비하히롯 앞에 있는 바알스본 맞은편에 도착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그곳에 장막을 치라 명령하신 하나님의 하명대로 머물게 되었다. 이후 바로는 이 소식을 보고받는다. 10가지의 재앙을 경험했던 바로는 곧바로 약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노동 인력을 송두리째 상실하는 것이 큰 손해임을 알고 군사를 재정비해 애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포스트를 정한 비군사적인 이스라엘을 다시 노예로 삼기 위해 출정한다. 이 소식 역시 이스라엘 진영에 알려지자 순식간에 이스라엘은 아비규환이 된다.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무장한 애굽 군사들이 이스라엘 진영 근처에 도착하자, 백성들은 모세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우리가 언제 애굽에서 이끌어내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느냐고 대든다. 우리는 죽는 것보다 노예로 사는 것이 훨씬 낫았는데 우리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고 원망한다. 이 항의의 절정처럼 보이는 한 구절이 먹먹하다. “우리를 내버려두라” 생각해보면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본능적인 욕망은 간섭받지 않고 싶어 하는 랜덤의 삶이 아닐까? 오늘 21세기 현대인의 초상화는 건드리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의지적 삶이 아닐까. 한편으로 공감이 된다. 동의도 된다. 어떤 인간이 간섭받고 싶어 하는가, 없다. 문제는 그러면? 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이다. 괜찮을까? 나는 부정적이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성서가 제시하는 역사상 가장 암흑의 시기를 뽑는다면 사사시대다. 어떠했나? 인간 스스로 자기의 소견이 옳다고 믿고 살았던 그 시대의 자화상은 괜찮았나? 우리는 안다. 그 시대는 최악의 재앙이었음을. 내버려두라! 라는 성서일과에 기록된 외침이 두렵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하나님께 요구하는 유기하라는 외침이 무섭다. 하나님이 진짜로 인간의 외침대로 하실까봐. 두레박 (질문) 나는 혹시 막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나를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제발. 나비물 (말씀의 실천) 하나님께 소속되는 삶을 철저하게 살아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주님, 대한민국이 랜덤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막 살아도 이기면 되는 그런 나라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