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주일 성서일과 묵상 하나님, 오늘 당신보다 더 좋은 것을 단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성서일과 열왕기상 19:9-18, 시편 85:8-13, 로마서 10:5-15, 마태복음 14:22-33 창 37:1-4, 12-28, 시편 105:1-6, 16-22, 45b 꽃물 (말씀 새기기) 마태복음 14:22-23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마중물 (말씀 묵상) 오병이어라는 도구들을 가지고 도무지 이성적으로, 이론적으로 형용할 수 없는 기적을 이루신 주님의 공적 인기는 하늘 천정을 뚫을 기세였다. 왕으로 옹립하려는 무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주님이 마음만 그쪽으로 동하면 일사천리로 유다를 장악할 수 있는 여건들이 조성되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그러나 역시 주님은 이래서 주님이시다. 그 기회를 발로 차버린다. 찬물을 끼얹는다. 주군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민중들의 기세를 보고 제자들은 흥분했다. 이 기회에 나도 한 자리를. 하지만 주님의 반응은 대단히 매서웠다. 벳세다를 떠날 것을 강제하신 것이다. 미온적으로 행하신 것이 아니라, 대단히 단호하게 그 자리를 벗어날 것을 종용하신 것이다. ‘재촉하사’가 이것을 증명한다. 헬라어 ‘아낭카조’가 이를 뒷받침한다. 영어적인 표현으로 기록한다면 ‘to compel’이다. 주님이 제자들을 몰아 내쫓은 것이다. 왜 이렇게도 강하게 하셨을까?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는 비본질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로 둔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독교의 본질로 변질시키려는 일체의 시도에 대해 주님은 경계하셨다. 세속적인 영광 추구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님을 강력하게 시사한 셈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다. 이후, 주님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셨다. 주님은 세속적인 영광이 흘러 차고 넘치는 벳세다에서 머물지 않으셨다. 따로 산으로 이동하셨고, 그곳에서 다음 사역을 위해 기도하셨다. 내 스스로 각오하고 또 도전하는 것 중에 하나는, 벳세다의 영광을 복음의 최우선의 자리에 앉게 하고 싶어 하는 욕망과의 처절한 싸움이다. 편리함에 안주하지 않고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경주하는 것이 내 목회의 목적이자. 내 신앙생활의 목표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읽은 글 하나 남겨본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방문한 은퇴한 선교사께서 하루 동안 라스베이거스의 찬란한 세속적 풍경들을 보고 고백한 말이 눈물 짓게 한 글이다. “시끄러운 음악소리. 휘황찬란한 호텔들, 세계 최고의 자동차 쇼, 카지노에서 벌어지는 슬롯머신과 도박, 온갖 진귀한 술과 음식을 파는 식당, 유명 연예인들이 벌이는 쇼 등을 목격하고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돌아와 선교사는 커튼을 열지 않고 거리가 내다보이는 창문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당신보다 더 좋은 것을 단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카일 아이들먼, 『NOT A FAN』, 183쪽에서) 그래, 이 선교사의 고백이 끝까지 내 목회 여정 안에서 나에게도 고백되어지도록 치열하자. 두레박 (질문) 벳세다인가? 산 속인가? 내 목양의 지향점이. 손 우물 (한 줄 기도) 주님, 어떤 일이 있어도 벳세다에 머물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걷게 하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세속적인 영광의 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오늘이다. 반면, 주님의 세미한 음성은 작게 들린다. 여전히 주님의 소리가 작지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를 크게 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오늘 주일을 섬겼습니다. 말씀을 듣고 세상으로 파송된 자들, 말씀의 사람들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