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0편의 시인은 하나님은 선하시고(토브) 인자하시며(헤세드) 성실하신(에무나) 주군이심을 선포했습니다. 차준희 교수는 하나님의 이 세 가지의 속성에 대해 이렇게 해제했습니다. “고대 근동의 신들은 인간을 선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을 괴롭히고 이용하려고 했다. 이런 배경에서 ‘야훼는 선하시다’라는 고백은 매우 파격적인 선언이다. 이 고백은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을 요약하는 특유의 신조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구절은 ‘작은 신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인류에게 확장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시간의 한계에 묶이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고,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대를 이어 그 영향을 발휘할 것이다.” (차준희, “시인의 영성2”, 새물결플러스, pp,554-555.) 그렇다면 이렇게 완벽한 속성을 가진 주군이 우리들을 소홀히 여길 리 만무입니다. 주군께서 자녀 된 우리들을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인격체로 견인하려는 것은 너무 마땅합니다. 시인은 이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제물을 준비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예배하며 그분은 찬양하라고 권합니다. 지난 6개월을 반추하면 도저히 얼굴을 쳐 들 수 없는 황송함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인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성실하셨습니다. 반면, 나는 하나님께 악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무자비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불성실했습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7월의 첫 주일에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뻔뻔해서가 아니라 차준희 교수의 말대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여전히 내게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제천세인교회 7월 2일 맥추절 설교 원고 중에서) 내일 맥추절 감사주일에 선포할 메시지로 실로 오랜만에 절기 설교를 준비했다. 밑져야 본전인 설교가 절기 설교임을 알기에 대체적으로 절기가 와도 기피하려고 했다. 왠지 내일은 생뚱맞게 절기 설교를 하고 싶어 사역을 준비했다. 시편 100편이 본문인데, 친구가 이미 남겨준 시편 100편 해제가 설교 준비에 귀한 역할을 해주어 감사했다. 역시 성서학자는 설교자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숙명적 존재다. 쉽게 말하면 믿을 수 있는 빽이다. 좋은 친구를 두는 것도 스펙이자 실력이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