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금요일) 묵상 – 사순절 열여섯 번째 날 격상(格上)되었나요?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95편, 출애굽기 16:9-21, 에베소서 2:11-22 꽃물 (말씀 새기기) 에베소서 2:19-22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돌아가신 선친께서 내 이름을 ‘강덕(康悳)’이라고 지어주셨다. 의미는 ‘크게 편안한 인생을 살고 그 편안함을 크게 베푸는 삶’을 사는 아들이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뒤돌아보며 자문한다. 나는 그렇게 살았는가? 흔히 이런 말을 던진다. “모든 이들이 이름답게 살면 세상이 아름다울 것”이라고. 결국 이 표현은 이름대로 사는 인생이 그리 많지 않다는 에두름일 것이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 외인이었다. 나그네였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인격적인 주군으로 영접하고 난 뒤에 적어도 내 삶의 판도는 격상되었다. 성도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권속으로. 문제는 외형은 격상되었는데 내 삶의 내용이 진짜로 그렇게 격상되었는가에 정직하게 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신약성경 에베소서는 교회론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신학적 기초를 제공해주는 탁월한 메시지로 넘쳐난다. 성서신학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는 바로 ‘나’다. 그러나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가 붙기 위해서는 지어져 가는 프로세스에 합당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도 성령의 은혜로 견인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아름다운 처소로 지어져 가고 있는 격상된 그리스도인가? 대답해야 한다. 주저앉아 있지 말자. 오늘도 지어져 가자. 두레박 (질문) 하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실 수 있는 자리가 있나?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내주하시는 성령은 이동성이 있으신 인격의 영이심을 압니다. 주님은 내 안에 영원히 거하고 싶어 하시지만 내 신앙의 정도에 따라 이동하실 수 있음을 알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윗이 고백한 대로 내 안에 정한 마음을 주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셔서 주의 영이 결코 떠나지 않는 행복한 신자 되게 하옵소서. 주님, 신앙생활 잘하게 해주십시오. 나비물 (말씀의 실천) 오늘 새벽예배 큐티가 감사한 일을 찾아내기였다. 찾아내서 감사를 표현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종도, 교우들도 감동을 주시고, 감사의 내용을 주시도록 역동하시는 성령으로 충만한 날이 되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