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금요일 묵상 회색빛이 짙게 드리운 시대에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17:1-9, 시편 145:1-5, 17-21, 창세기 38:1-26, 스가랴 6:9-15, 사도행전 24:1-23 꽃물 (말씀 새기기) 사도행전 24:5-9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오늘 아침, 서재 창밖으로 보이는 제천 산하가 푸르고 푸르다. 이틀 동안 미세먼지, 초미세 먼지가 극에 달해 창문을 제대로 열지 못할 정도였는데, 반짝 추위는 밀려왔지만 날씨와 공기는 청명해져서 너무 다행이다. 오늘은 창문을 활짝 열고 물러가는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련다.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보면, 지옥의 아비규환을 여지없이 본다. 단테가 ‘신곡 지옥 편 11곡’에서 “불의의 끝은 다른 사람을 폭력과 배반으로 해치는 것”이라고 정의한 그대로 그 해침이 여기저기에서 마치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보여 섬뜩하다. 이처럼 독기서린 시대에 발 딛고 사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가 해머를 맞은 것처럼 나에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한 본문의 한 구절 앞에서 마음의 무릎을 꿇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예루살렘이라는 스올에서 살면서 그 알량한 종교적 기득권이 흔들릴 것을 두려워하여 바울이라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비 무장한 연약한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몰아가던 자들이 붙여준 이 구절을 읽다가 바울이 너무 부러웠다. ‘전염병 같은 자’라는 폄훼의 문장이 왜 이리도 눈부시게 아름답게 들리는지. 때론 여기에 들러붙었다가, 또 때론 저기에 기생하는 회색빛이 짙게 드리운 시대에 나도 전염병 같은 사람이라는 공격을 받고 싶다. 오래 전,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의 이 글을 읽는 순간 벼락을 맞는 느낌이었다. “인간됨은 존재의 인간화요, 의미 없이 주어진 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변질시킴이다.” 사정이 이런데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간다면 훗날,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리요! 싶다. 오늘 아침은, 학창 시절 많이 들었던 팝송이 듣고 싶어 ‘70-80’ 명반을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 가 감미롭게 서재를 에워 쌓고 있다. 주님, 오늘 밤만이 아니라 내 삶의 남은 여생동안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기도가 절로 나오는 서재의 아침이다.
두레박 (질문) 세상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정의할까?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게 인도해 주십시오. 바울처럼.
나비물 (말씀의 실천) 오늘 하루, 보폭을 딛는 곳마다 그리스도 예수를 보이는 삶을 살아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다른 무기가 없습니다 마음을 발사합니다 두루미를 쏘아올립니다 모든 미사일에 기러기를 쏘아올립니다 모든 폭탄에 도요새를 쏘아올립니다 모든 전폭기에 굴뚝새를 쏘아올립니다 모든 포탄에 뻐꾸기를 발사합니다 모든 포탄에 비둘기를 발사합니다 모든 무기상들한테 따오기를 발사합니다 정치꾼들한테 왜가리를 발사합니다 군사모험주의자들한테 뜸부기를 발사합니다 제국주의자들한테 발사합니다 먹황새 물오이 때까치 가마우지...... 하여간 새들을 발사합니다 그 모오든 死信들한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