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유영남 권사의 장례를 마쳤다. 목사가 미쳤다. 쓰리고 쓰리며 또 쓰린 장례식인데 박수쳐서 보내드리자고 말했으니 온전하게 미쳤다. 목회 현장에서 30년이 넘게 섬기는 지체들과 부대꼈으니 마주친 장례의 성격에 따라 이 장례를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는 거의 무당 수준으로 잘 안다. 입관예배 시간에 딸이 울다가 혼절하고, 여기저기에서 보내야 하는 고인과의 추억들을 남긴 지체들은 거의 통곡 수준으로 울고 있는데 박수를 쳐서 보내자는 목사가 제 정신인가 싶다. 18년 전, 고인을 처음 만났을 때, 육십 중반의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곱게 늙으신 것을 보며 고생이라고는 담을 쌓으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교회에서 고인을 섬기면서 권사님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며 삶을 일구어 왔는지 체감하며 선입관을 탓했다. 순간순간, 삶의 질곡이 너무 커서 목사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우시던 권사님의 그 울음에 같이 울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난의 여정에서 무릎으로 평생을 사시던 권사님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비일비재다. “권사는 저렇게 처절하게 믿음으로 사는데, 목사가 딴 짓하며 살 수 있나!” 한편으로 보면 삶으로 부족한 사람을 가르쳐 주었던 신앙의 선생님이셨다. 교회를 개척할 때, 일선에 서서 부족한 사람과 함께 하겠다고 나서 주신 권사님, 그렇게 13년을 개척교회에서 동역한 권사님, 오늘 납골당에 모시기에 앞서 예배 단 위에 올려 져 있는 권사님의 영정 속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더 아프게 한다. 모든 예배를 마쳤다. 발인하며 읽었던 말씀을 권사님께 다시 선물로 드린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2-24) ‘하나님, 제 장례를 이강덕 목사님이 집례 할 수 있게 건강을 허락해 주세요.’라고 떼쓰시던 권사님의 기도가 응답되었다. 그리고 마쳤다. 장례식 예배는 왜 이리도 많은지. ㅠㅠ 납골함에 모신 영정 앞에서 이렇게 속삭였다. 유영남 권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무 사랑했습니다. 박수 쳐서 화 안 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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