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총회 준비 차 기도원에 올라왔다. 1년이라는 시간이 정말로 빨리 흘렀다. 이제 섬기는 교회 사무총회가 12년차다. 11년 전 북풍한설의 추운 계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퇴직금 900만원을 갖고 광야로 나와 개척을 했으니 지금 생각을 해도 참 대책 없는 목사였다. 하지만 이렇게 무식하고 대책 없는 목회를 시작했는데 벌써 이만한 시간이 흘렀다니 은혜 중에 은혜다.
2020년 사역을 준비하러 온 첫 날, 무조건 푹 쉬었다. 오늘은 그 동안 못 잔 잠도 원 없이 자보련다. 나에게 또 하나의 쉼의 습관대로 저녁 식사를 하고 손에 든 책에서 본회퍼의 기막힌 일갈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이 글을 읽다가 마틴 부버가 Ich und Du에서 직설했던 신학교 졸업반 때 나를 요동치게 했던 그 유명한 어록이 오버랩 되었다.
“자기의 창문을 통해서 응시하는 무신론자가 자기가 만든 거짓된 하나님 상에 사로잡힌 신앙인보다 하나님에게 더 접근해 있다.”
본회퍼는 자기가 만든 거짓된 하나님의 상을 지워야 나의 실체이자 진정한 주군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기가 막힌 신앙적 성찰을 남긴 것이다. 그래서 근래 어떤 이상한 자가 자꾸만 본회퍼를 들먹일 때 나름 역겹고 분노스럽기까지 하다. 그가 정말 본회퍼를 읽기는 했나 싶어 말이다.
지난 11년 동안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면서 사랑하는 지체들과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를 살아내기 위해 좌우를 보지 않고 치열하게 몸부림치며 달려왔던 것 같다. 무식하게 용감한 이 사람이 아무 것도 잘한 게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세인교회를 지난 시간 동안 이렇게 분연히 서게 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이 우리 세인 교회를 긍휼이 여기셨다고,”
한 주간, 조금 더 깊이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를 살아내고 돌아가련다. 기도원의 지금은 천지가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