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은 사형선고를 앞두고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죽음을 앞둔 한 사형수의 노래이지만 분명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실로 모든 인간은 집행날짜를 모르는 사형수인 것이다. 비록 그 기간에 차이가 있지만 모두 죽음과 대면해 있다. 그 유한한 삶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카뮈의 통찰력은 놀랍다. 그렇다. 수많은 사실 중에서도 내가 죽는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한 삶의 종결 역시 자명했다. 이러한 귀결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그 자체로 완전한 듯 보였다. 그러다 문득, 세상의 진리라 생각한 온전한 하나님이 사실은 온갖 모순과 이질감으로 가득했음을 고백했다. 자연스레 하나님을 종용했다. 그분을 나의 사고과정에 맞춰 변형하며 그동안 나와의 불협화음을 맞춰 나간 것이다. 또한 수많은 학자들의 사상과 세계관을 공부하며 나의 세계관을 완성하려 했다. 처음에는 흩어져 있던 퍼즐조각이 맞춰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렇게 완성한 세계는 항상 불완전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오히려 그 속에서 매스꺼움을 느낀 적이 허다했다. 분명 카뮈의 방점은 허무주의가 아닌 삶의 찬미에 있었으나 모두 죽음 앞에서 그러한 의미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유한한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으나 공허한 암흑 속에 놓인 인생만을 발견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진리를 알지 못했다. 유한한 삶이란 자명한 진리 속에 하나님은 없었던 것이다. 재단한 하나님은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었다. 또한 논리적이라고 생각한 사고체계가 18세기 이성주의에 머물러 있고 과학 또한 인간의 눈으로 물리적 세상을 기술해 놓은 학문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한 것들은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지만 한계 또한 그 특성에 있었다. 어떠한 사상이나 이론도 물질세계의 외연을 초월해 움직이는 세상에 완벽한 답을 주지 못한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본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방향성을 잃고 표류 중인 사회가 이에 대한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예수님과 하나님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재단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그분은 그 자체로 완전하신 하나님이었다. 오직 그 하나님 안에서만 세상은 온전히 완벽했다. 유한한 인생은 없었다. 그분은 분명 우리에게 무한한 삶을 주셨다. 그 속에서 자신이 준비하신 목적에 맞게 우리를 사용하고 계셨던 것이다. 또한 단순히 문자에 머물지 아니하시고 직접 삶에 참여하시며 우리 곁에서 그 길을 인도하시고 계셨다. 더 이상 하나님과 나와의 불협화음은 없었다. 삶은 아름다운 노래임을 깨달았다. 아마도 카뮈가 찾던 삶에 대한 찬미는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어느 순간 수많은 지식들과 세상을 해석하려는 나름대로의 각종 사상과 이론은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의 경험을 반추하며 세상의 것들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되새겼다. 모두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와 같이 연약한 것들이었다. 오직 영혼만이 가장 강한 것이었다. 또한 그 영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제서야 내 주변의 것들에 의미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내가 수없이 부딪혔던 공허한 암흑. 암흑이 밝아졌고 그 주변은 절대로 공허하지 않았다. 그곳은 하나님의 모략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이제 막 신학을 시작한 장종호 청년의 글입니다. 어제 주일 낮 예배를 마치고 교우들과 인사를 하는 어간, 남성 소그룹 지체들이 가을학기에 읽게 될 책인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들을 들고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침 종호 아빠도 그 책을 가지고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같이 예배를 페하고 나가는 종호에게 아빠가 읽을 이 책을 8월 15일까지 너도 함께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라고 압박 아닌 압박을 했더니 오늘 아침 저에게 보낸 독후감입니다. 알아본 죽은 담임목사의 말을 듣고 약 6시간 동안 숙독한 뒤에 보낸 독후감이었습니다.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놈 뭐지?” 일반인들에게는 결코 쉽게 읽혀지지 않는 650페이지 정도 분량의 책을 6시간 만에 읽어낸 것도 칭찬 받을 만한 일이지만 8월 15일까지 독후감을 제출하라고 강제적으로 압박한 담임목사에게 보기 좋게 1:0으로 만든 독후감의 내용도 저를 너무 놀라게 했습니다. 기대감을 주기 위해 종호에게 달라스 윌라드가 이 책의 제목을 왜 기피 단어인 하나님의 모략’(The Divine Conspiracy)이라는 모략의 단어를 붙였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하고 저에게 보내라고 사유함의 세계를 이어가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재단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그분은 그 자체로 완전하신 하나님이었다. 오직 그 하나님 안에서만 세상은 온전히 완벽했다. 유한한 인생은 없었다. 그분은 분명 우리에게 무한한 삶을 주셨다. 그 속에서 자신이 준비하신 목적에 맞게 우리를 사용하고 계셨던 것이다. 또한 단순히 문자에 머물지 아니하시고 직접 삶에 참여하시며 우리 곁에서 그 길을 인도하시고 계셨다.” 이제 막 신학의 길에 들어선 종호가 저를 전율하게 한 첫 번째의 선물이 너무 귀해 여기에 남겨 놓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