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 목사 중에 인간성이 참 괜찮은 친구가 있습니다. 괜찮다고 말한 이유는 립 서비스가 아닙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항상 좌충우돌하는 나에게 따스함으로 언제나 다가오는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동기 목사들 중에 나름 안정적인 목회라고 할 수 있는 서울에 소재해 있는 중형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친구이기에 은연중에 내세우고 싶은 것들이 충분히 있을 터인데 본인의 상황에 대하여 말하는 것보다는 들어주는 편을 항상 선택하는 본받을 만한 것이 매우 많은 친구입니다. 해서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 중의 친구입니다.
며칠 전, 졸저를 친구에게 보내주었습니다. 그래도 척박한 시골에서 목회하는 친구가 쓴 책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헌데 친구가 배신했습니다. 읽으라고 보내 준 책을 당사자는 읽지 않고 친구의 아내가 읽었으니 말입니다. 어제 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전화가 늦은 시간에 왔습니다. 비몽사몽 간에 받은 전화의 저 편으로 들려오는 소리 왈, 와이프가 네 책을 읽고 글을 하나 써서 보낸다고 하니까 책값 대신한다는 전언이었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친구 아내의 글은 시골에서 목회하는 남편 친구를 위로하기에 충분한 서평이었습니다. 혼자 보기에는 조금 아쉬워 원저자에게 공유의 허락을 받고 페이스 북에 올려봅니다.
사족 하나, 내 사랑하는 친구가 훌륭한 인간으로 설 수 있었던 것은 알고 보니 친구 아내 때문이었습니다. 친구가 선택한 인생의 최고 선택은 이정수 사모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서부 교회 임채영 목사는 참 수지 맞은 친구입니다.
행복의 미끼
어느 날 저녁, 남편이 친구랑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얼마 전 두 번째 책을 펴낸 친구가, 책을 보냈으니 읽어보라 듯 했다.
그런데 남편이 다짜고짜 “야, 나 책 안 읽어, 그리고 임마, 책을 내려면
좀 읽기 쉬운 걸 써야지... 서평이 뭐냐! 누구한테 소개할 수 있겠냐!” 한다.
옆에서 듣고 있는 내가 괜히 민망하고 미안해졌다.
‘아무리 격이 없이 지내는 친구라도 그렇지...’
그래서 어제 오전 남편의 책상에 올려있는 책을 슬그머니 가져와서
숨 가쁘게 읽었다. 그 책이 바로 『시골 목사의 김기석 글 톺아보기』이다.
사실 2년 전에도 비슷한 제목의 책을 선물 받았다.
『시골 목사의 행복한 글 여행』
이 책 역시 소설과 인문학 서적들의 서평을 실은 글이다.
처음 내는 책이 서평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왜~~?’, ‘잘 안 팔릴 텐데...’ 생각하며 걱정부터 했다.
책을 엄청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면 서평집을 사 볼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저자가 읽은 대부분의 책을 안 읽은 상태라서
그 책을 볼 염두를 못 냈다.
그런데 두 번째 책도 13편의 글 모두 김기석의 글을 평한 것이다.
김기석의 글이라고는 차정식과 공저로 쓴 『예수』, 딱 한 권 읽었는데...
‘그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그냥 읽지 뭐.’
친구에게 도리는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자아를 성찰하게 만드는 통로가 막혀 있다’고 진단한 저자는 그 해결 방법을 ‘독서’에서 찾고 있다. 바로 책이 교회를, 그리스도인을 새롭게 하는 정화의 기초와 능력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공동체의 영성 회복과 조국 교회를 생각하며 모든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책이 들려지길 간절히 꿈꾸고 있다. 책 속의 보화들로 ‘천박했던 자아’들이 ‘공감의 지성’들로 바뀌게 되길 소망하고 있다. 들어가는 말과 나가는 말을 통해 저자의 마음을 전해 받은 나는 어느새 저자와 한 마음이 되어 책속에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목차를 보고는 맨 마지막 장 <내가 부담이라고? 난 너희들이 부담이다>부터 읽기 시작했다. 한두 편 읽고는 내려놓으려고 했는데, 웬걸 단숨에 절반을 읽어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나머지 절반도 숨 가쁘게 읽어 내려갔다. 솔직히 가슴이 뛰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김기석의 글을 읽고 ‘소름끼치는 감동’, ‘벼락 치는 감동’ 그리고 ‘무시무시한 부담’들을 느꼈다고 했는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동시에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 같아서 괜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 전율을 느끼며 ‘산산조각 내는 글’ ‘마음이 뜨거워지는 글’들을 읽으며 ‘숨이 가쁜 책읽기’를 하고 있는 저자가 무한 부럽기도 했다.
평상시 페북을 통해 접했던 그의 글은 독서량이 턱없이 부족한 내게 좀 버거웠다. 그의 논지를 따라가기 어려워 중도에 포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의 글은 달랐다. 저자가 독자들을 배려해서 얼마나 공을 들여 글을 다듬었는지 느껴졌다. 또한 책 제목에서 보듯 그의 글 군데군데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순화시켜주고, 눈을 정화시켜 주어 책읽기에 신선함을 더해 주고 있다.
서평은 책의 내용과 특징들을 소개하며 논평하는 글로 책에 대한 정보와 평가를 담은 글이다. 그래서 소개하는 책을 읽지 않은 채 서평만 읽으면 재미도 없을뿐더러 별 유익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이 책을 읽으며 ‘이거 서평 맞나?’ 생각할 정도로 저자의 글은 김기석의 책을 소개 한다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오히려 중간 중간 김기석이 저자의 생각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읽은 김기석의 글이 그의 삶속에 체화된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김기석을 ‘영혼을 울리는 감동의 글쟁이’라고 표현하며, 글 곳곳에 그를 향한 사람의 밀어를 쏟아놓고 있다. 그는 김기석이 수구적이지 않아서, 항상 개방적이어서, 생각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를 남겨놓는 글을 써서 그리고 약자의 편에 서서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해서, 등등 많은 이유를 들어가며 그의 팬(김빠)이 되길 자처한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글 속에서도 겸허함을 엿볼 수 있다. 솔직하게 털어 놓는 그의 이야기들은 단호하지만 강요하는 기색이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편안했다.
“신학적 성찰과 이론적 혜안이 아무리 뛰어난 혁명적 발상이나 주장의 발견이라고 해도
그것은 반드시 현장과 연결되어야 한다.”(66)
믿음의 4대 손으로 태어난 나는 대학시절 함께 신학을 공부하던 남편과 만나서 결혼을 했고, 30년 넘게 사역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아직도 메워지지 않는 삶과 신앙의 간극이 창피하고 슬프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간극을 좁히려고 치열하게 투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론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이런 삶을 보여주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억울해하기도 한다. 이런 평신도의 사정을 알아차린 저자는 성서 해석의 현장화에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고집스러운 촌스러움’에 나도 슬쩍 한 발 들여놓고 싶은 심정이다.
책들과의 여행을 즐기며 책읽기에 최선을 다하는 저자는 ‘참말’을 그리워하고 있다.
“말은 많은 데 말이 없다. 참말 말이다. ‘다바르’ 말이다. 숨이 있는 말 말이다.”(166)
“‘다바르의 현재성’이 바로 성육신이다. 성육신의 신비를 경험하면 하나님의 말의 숨이
나의 폐에 주입되는 것이다.” (167)
어느 날 부터인가 ‘말’이 힘들어졌다. 가볍고, 무의미하고, 무례하기까지 한 많은 말들을 주고 받는 삶이 거북했다. 그러나 삶은 여전하다. 오랜 시간 존재 깊숙한 곳 박혀 있는 ‘자아’는 좀처럼 버려지지 않는다. 아니 변화될 기미가 안 보인다. 그래서 ‘숨이 있는 말의 현재화’가 어려운가보다. 그런데 저자는 ‘다바르’가 폐에 주입되도록 말씀 앞에 머물면서 ‘참말’을 목말라 했고, 그 결과 ‘김기석과 함께 공명한 말씀의 빛 속으로 거닐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언어의 온도』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기주는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고 말하면서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는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말에 비법은 없다. 평범한 방법만 존재할 뿐이다.
그저 소중한 사람과 나눈 대화를 차분히 복기(復棋)하고 자신의 말이 그려낸 궤적을
틈틈이 점검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법을 찾고
꾸준히 언품을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
(이기주의 『말의 품격』133)
소중한 그분, ‘말씀’과의 대화에 더욱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고 진솔한 사랑을 담은 말, 유연하면서도 의연하고 정제된 생명을 실은 말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참말인 예수의 뼈있는 말 숨’들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대놓고 자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가끔 보는 친구이기에 늘 만남은 반가 왔고, 헤어짐은 아쉬웠다. 그런데 어제 오늘 그의 책을 읽으며 오랜 시간 친구와 함께 하면서 그동안 미처 나누지 못했던 속 깊은 이야기들을 맘껏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평상시 생각했던 대로 원칙과 소신이 있는 삶과 목회를 통해 ‘알천’과 ‘알짬’을 뿜어내는 친구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맹그로브 숲의 나무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은 모든 이들의 손에 이 책을 꼭 쥐어주고 싶다.
이 책을 통해 ‘행복의 미끼’를 던진 이강덕 목사,
제법 고수인가 보다.
김기석의 책 5권을 이미 주문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