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제목한 때 소중했던 것들2024-06-11 09:36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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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지은이 이기주
ㆍ출판사 도서출판 달
ㆍ작성일 2018-09-29 22:43:51

 



이기주의 ‘한 때 소중했던 것들’(도서출판 달 간)을 읽고 


리베카 솔닛은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멀고도 가까운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p,100.) 


그러면서 그녀는 한 마디를 덧 붙였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며,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같은 책, 같은 면에서.)
이기주의 글을 읽다가 리베카의 말이 어쩜 그리 정확한 진단이었는지를 경험했다. 적어도 ‘한 때 소중했던 것들’을 그랬다. 느낀 감동의 여운이 커서였을까? 왠지 화가 났다. 이런 객기 때문에.
이제 사십을 갓 넘긴 사람에게서 도무지 표현될 수 없는 언어들이 화사하게 꽃피고 있는데 필자는 육십을 바라보면서도 종교적인 언어의 사슬에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초라함 그것 때문에. 시니컬한 냉소는 이 정도만 하자. 내 운명이니까.
‘언어의 온도’ 그리고 ‘언어의 품격’에서 얻은 부스러기 동냥이 너무 많아 작가의 신간을 출간하자마자 마치 독수리가 사냥감을 낚아채는 것과 같은 순발력으로 나 또한 걷어 올렸다. 일인 출판의 대성공을 거둔 주인공처럼 그의 글은 이번에도 나에게 할 수 없는 말을 빼놓지 않고 전하는 폭격을 퍼부었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나는 그의 공습에 아픈 것이 아니라 마냥 즐거웠다.
“그리하여 당신의 눈물이 빠져 나간 자리에/햇볕이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마음이 햇살이 어른거리지 않으면/우린 언제나 겨울이다.”(p,241)
작가가 남긴 맨 마지막 글이다. 그의 글 폭격을 당한 뒤에 맨 마지막으로 남긴 확인사살과도 같은 촌철살인에 난 그만 넋 다운이 되고 말았다. 부인할 수 없는 팩트이다.
마음에 햇살이 어른거리지 않으면  우린 언제나 겨울이라는 말에 나는 항복했다. 저자는 이렇게 지난(至難)한 본인의 글쓰기를 표현했다.
“글쓰기는 삶을 부대끼고 미끄러지면서 생각의 결과 감정의 무늬를 문장으로 새기는 일이다.”(p,239)
독서하는 내내 나는 작가의 이 실토를 고스란히 증명 받았다. 그러기에 작가로서의 그의 고백은 정직했다. 약 250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감정 무늬 그리기들 중에 가슴팍에 강하게 부딪친 글감을 소개한다.
“누군가 내게 이별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호칭이 소멸되는 일인 것 같아요.’라고 답하겠다. 서로의 입술에서 서로의 이름이 지워지는 순간, 우린 누군가와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덧없이, 속절없이, 어찌할 수 없이”(p,197)
성결교회 목회자로 살았던 21년이라는 세월이 있었다. 그리고 성결교회는 떠난 지 11년을 맞이했다. 계산해 보니 그래도 거의 반에 가까운 시간의 중력이 직전 교단에서의 추억, 인간관계, 사역의 고갱이들로 남아 있건만, 아주 우연치 않게 그 때의 경험들을 삶에서 만날 때 일체의 일들이 망각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낯설어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몹시 당황스러운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그래서 잊어지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실감한다. 작가는 이렇게 일갈했다.
“새로운 것은 그립지가 않다. 그리운 것은 대개 낡은 것이다. 혹은 이미 오래 전에 내 곁에서 떠난 것들이거나.”(p,202)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들 역시 시간이 흐르면 내게 또 다시 그리운 것들이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정했나 보다.
“한 때 소중했던 것들”
또 하나의 글을 들추어내보자.
“사랑은 변하지만 사랑했던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죠. 그래서 우린 세월이 지나도 과거의 사랑을 더듬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p,207)
너무 사랑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읽는 내내 마치 어떤 개그맨이 한 때 유행어로 만들었던 상투적 멘트를 읊조렸다.
“그래 결심했어! 더 많이 사랑하기로”
작가가 이 책을 열면서 했던 말을 소개하며 나의 글말도 맺으려 한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반드시 상처를 남긴다. 가장 큰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한때 내 일부였기 때문이고, 나는 한때 그 사람의 일부였기 때문이다.”(p,12)
생뚱맞은 결론이다. 이별이 아파서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그러지 말자. 아파도 사랑하자. 언젠가 그 아픔마저도 나와 너를 오늘 여기에 있게 해 준 성숙 호르몬임을 알 테니까. 너무 많은 감동의 글 잔치가 이 책 내에 담겨 있다. 감동 받기를 원하는가? 강추한다. 

사족)

감성도 사람을 차별하나 보다. 작가의 감성 앞에서 왜 나는 자꾸만 작아지는지. ㅠㅠ.

주일 설교 원고 암송을 마치고 잠간의 자투리 시간인 2018년 9월 29일 오후 10시 40분,  제천 세인교회 서재에서 (주일에 새벽 예배가 없어서 객기를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