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섬기던 고향 교회 담임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오롯이 기억합니다. “주일을 범하는 성도는 지옥에 갈 확률이 100%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의 망언에 가까운 실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2025년에 이런 구태적인 발상과 사고로 목회를 하면 정신병자 목사로 취급할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유대인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아브라함 조수아 헤셀이 쓴 걸작 『안식』에 나오는 글 하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땅과 축제의 성스러움은 그것들을 성화하는 유대 사람들의 행위에 달려 있지만, 안식일에 성스러움은 이스라엘의 성스러움보다 우위에 있다. 설령 사람들이 안식일을 준수하지 못한다 해도, 안식일은 성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아브라함 조수아 헤셀, 『안식』, 복 있는 사람, 34〜35쪽) 선견자의 글을 읽다가 감동으로 다가와 오롯이 내 설교 메모 파일에 담아둔 글입니다. 주일을 생각하는 2025년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곱씹을 촌철살인이었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나는 주일이라는 개념과 그 의미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목사가 아닙니다. 고향 교회 목사님이 주일 성수를 강조하기 위하여 윽박지르듯 강제했던 것처럼 주일 성수를 율법화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헤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 주일에 대한 신학적 함의가 무시되는 일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헤셀이 갖고 있었던 안식일에 대한 유대 신학적 의미는 2025년이라는 크로노스의 복판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제천 세인 공동체의 교우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신앙적 가치이어야 합니다. 2025년은 주일에 대한 가치와 정신이 무시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저는 목사이기에 갖는 영적, 신학적 의지에서 물러서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것? 주일이 무시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주일이라는 가치에 대한 성스러움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영적 자존감 말입니다. 다음 주일은 전무(全無)했던 오랜 연휴의 첫날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이미 주일이라는 카이로스의 가치를 상실한 이들은 연휴로 이어지는 주일에 대한 가치를 무시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주일이라는 성스러움의 가치는 그리스도인들이 상실하지 말아야 할 신앙심의 보루입니다. 작은 소망인지 모르겠지만(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2025년의 목사는 아프다.) 세인 교우들은 본 교회나, 고향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기를 바랍니다. 행여나, 펜데믹을 지나면서 콜타르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으로 해외 관광지에서 주일에 서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펜데믹이라는 괴물에게 농락당한 이후,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치부되고 있는 인터넷의 유구한 세상에서 예배를 쇼핑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크리스티아노스들에게 주일은 무시될만한 가치가 아닙니다. 노아가 1년 17일, 그러니까 382일 만에 방주에서 나와 제일 첫 번째 행한 일을 창세기 기자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창세기 8:20〜21 전반절) 이재철 목사는 이 구절을 소개한 자기의 책에서 이렇게 매듭을 지었습니다. “노아는 예의의 사람이었다.” (이재철, 『사명자반』, 홍성사, 248쪽) 다음 주일, 여러분의 고향 교회에서, 아니면 또 다른 교회 예배당에서 예의를 지키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