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災) 대신을 화관을 “이스라엘에서 애통하는 모든 자에게 그는 재대신 아름다움을, 애통 대신 기쁨을, 근심 대신 찬양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 그들을 강하고 우아한 참나무처럼 심으셨기 때문이다.” 이사야 61:3절을 쳇봇에게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더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도착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위로와 회복의 약속을 나타냅니다. 이사야 61장은 주로 메시아의 사역에 대한 예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고하는 내용으로 이해됩니다. 3절은 특히 고통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회복과 치유를 약속하는 부분입니다.” 일주일 내내 화마와 싸웠습니다. 화마와 꿈에서도 싸웠으니까,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게 사실인 모양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동화 권사의 영양 고택 근처까지 화마가 접근했고, 안전을 위해 제천으로 3일간 피신한 실제적 일이 있었기에 더 긴장하며 중보 했기에 아마 그런 꿈까지 꾼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도 남녘에서는 졸지에 집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우리의 이웃들이 속출하고 있기에 그 아픔에 대한 동통(同痛)이 스멀대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해서, 매일 주께 엎드려 기도한 것은 화마의 종식이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자연 앞에 무력한 존재인가를 여지없이 직간접적으로 체감한 일주일을 보내면서 목사로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꼰대 같지만 역시 원론적인 생각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5mm도 안 되는 소량의 강수가 내린 지역에서 그토록 맹렬하게 타오르던 화마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뉴스 보도를 읽으면서, 또 명징하게 다가온 원론이 있습니다. ‘호모데우스’의 교만한 기세를 자랑스럽게 뽐내는 이 시대가 얼마나 위험한 시대이며, 하나님으로 둔갑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재앙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겸손하게 삶을 살아내야 하는지를 강력하게 체감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제3 이사야가 유대 공동체를 향하여 선언하며 노래한 희망의 노래가 아픔을 당한 이웃들 모두에게 위로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물론, 현실에서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다시 ‘쿰’(קוּם)하는 희망의 자양분으로 작동되기를 화살 기도해 봅니다. 재대신 화관이 주어지는 반전이 이재민 모두에게 임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중보 하며 엎드려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