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8일 (세 번째 주) 지역 셀 사역 1. 얼음깨기 (WELCOME) 내가 알고 있는 선한 영향력에 관한 스토리를 나누어 보자. 2. 찬양 (WORSHIP)
● 찬송가 510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 복음성가: 주께 더욱 가까이
3. 말씀 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창세기 45장 16-28절 ● 제목 : 세상도 기뻐하는 삶 1) 바로가 요셉에게 만난 형들에게 대우할 것을 명한 내용들은 무엇인가? ⓵ 본문 17-20절 참고
2)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요셉이 형들을 만난 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가? 또 그 이유를 말해보자 ⓵ 반응? - 16절 ⓶ 이유는 레마와 연관하여 설명해 보자.
3) 적용하기
⓵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친 사람을 소개해 보자. ⓶ 부족하지만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누어 보자. ⓷ 나로 인하여 세상도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4) 사역하기 셀 예배 순서 ※ 찬양하기 : 찬송가 부르기 ※ 얼음 깨기 나누기 ※ 찬양하기 : 복음성가 부르기 ※ 예배기도 : 맡은 이 ※ 말씀 증거와 문제 내용 나누기 ※ 적용하기 ※ 기도제목 중보하기 ※ 헌금 봉헌 ※ 헌금 기도: 셀 리더 ※ 피선교지 중보하기: 다 같이 ※ 폐회 : 주기도문 ※ 교제하기 중보 및 사역하기 1. 2024년 선정된 태신자를 위해 매 셀 예배 마다 중보하기. 2. 기도 수첩에 있는 셀원들의 기도 제목 일일이 중보하기 3. 사순절 릴레이 기도회에 성실하게 참석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4. 셀 묵상 나누고 확인하기 5. 담임목사의 목양을 위해 중보하기
● 설교요약 (SUMMARY)
본론) 오늘 본문 설교를 시작하는 첫 번째 텍스트가 크게 눈에 띕니다. 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그냥 생각없이 읽으면 아무런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구절이지만 조금이라도 성찰하며 묵상하면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구절이기에 가볍게 여길 수 없는 텍스트입니다. 접근해 보겠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디어 드러냈다고 했습니다. 이후 요셉은 가나안에 살고 있는 아버지와 조카들과 형수님들을 애굽으로 이주해야 함을 권면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및 주변 지역에 몰아닥친 살인적인 흉년이 끝나려면 아직도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하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먹고 살 곡식이 있는 애굽으로 이주하는 것임을 형들에게 알려주었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 우리는 지난 수요일 강해를 통해 나누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고, 해후했다는 소식이 바로에게 보고된 이후의 기사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 왔다는 소식이 바로에게 들렸습니다. 동시에 바로의 신하들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반응을 창세기 저자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기뻐했다.” 히브리어 ‘야타브’의 번역인데, 이 단어는 단순히 기뻐하는 것으로 끝남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호의를 베풀었다’는 것을 연속하여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 증거가 본문 17-20절입니다.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이제 명령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바로가 요셉에게 명한 명령입니다. 이 구절을 접하다보니 소스라치게 놀랄만한 내용임을 알게 됩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 보았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복기해 보겠습니다. 11-13절입니다.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그렇다면 11-13절에 기록된 메시지는 요셉이 아직 바로의 윤허를 받기 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제 1인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아버지에게 부귀와 영화를 보장할 테니 모시고 내려오라는 권언은 조금은 경솔해 보일 정도로 너무 말이 빠른 것처럼 여겨지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이렇게 형들에게 자신감을 내 비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요셉의 형들과 요셉이 해후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바로는 마치 요셉이 형들에게 약속한 것들을 미리 요셉과 말을 맞추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완벽하게 요셉의 약속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분한 약속을 받은 요셉의 형들은 금의환향하게 됩니다. 형들이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요셉은 바로의 명령에 순종하여 각종 재물들과 양식을 채워 보냅니다. 각자에게 수레를 주었고, 길 양식도 하사했습니다. 형들에게는 각각 옷 한 벌씩을 더불어 주고, 친동생인 베냐민에게는 특별대우를 하여 은화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선물로 줍니다. 아버지 야곱에게는 나귀 열 필과 아름다운 애굽의 물품들을 실어 보냅니다. 동시에 길에서 드실 양식과 떡을 채워 보냅니다. 이렇게 엄청난 환대를 받고 가나안에 돌아간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자기들이 애굽에서 경험했던 일체의 일들을 곧이곧대로 보고하자, 야곱이 어리둥절해 할 정도로 충격을 받고 기뻐합니다. 아들들이 야곱을 애굽으로 모시고 오라고 한 요셉의 전갈까지 야곱에게 알리자 본문 마지막 절은 이렇게 기록하며 야곱의 마음을 적시했습니다. 28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야곱이 받은 최고의 선물은 애굽의 진귀한 물품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보낸 극진한 선물도 아니었습니다. 야곱에게 바쳐진 최고의 선물은 11번째 아들인 요셉이 살아 있다는 전갈이었습니다. 그 요셉을 죽기 전에 보고 싶다는 내레이션으로 본문 45장은 마감됩니다. 45장의 해설을 함께 공유했습니다. 136번째 강해를 통해 교우들과 나누고 싶은 영적 가르침을 추출해 보겠습니다. 다시 본문 16절로 돌아가겠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요셉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형들과 해후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습니다. 요셉의 직속상관이었던 바로는 이어 요셉에게 가족 전체를 애굽으로 이주시킬 것을 명령했습니다. 최고의 예우를 약속하면서 가족들을 모실 것을 명한 것입니다. 바로와 요셉 형들과는 일면식이 없는 관계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 바로는 애굽의 12-18 왕조를 이룬 힉소스 왕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어림잡아 주전 2000-1500년 정도로 보는데 이 당시의 정치적 정황으로 볼 때 애굽 왕조는 대단히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천하를 호령하던 시기였기 변방에 있던 부족 국가 형태로 살고 있었던 가나안 지역의 사람들을 미개한 존재로 여기던 때였습니다. 대제국을 형성하고 있던 애굽의 바로가 미개민족으로 여겼던 가나안 거민이었던 야곱 일가를 이렇게 극진하게 환대하고 대우하면서까지 애굽으로 이주할 것을 종용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파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진단해 보십시다. 애굽의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야곱 일가에게 파격의 대우를 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왜 요셉이 형들을 만난 것을 두고 바로는 기뻐했으며 최고로 환대했을까요? 답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요셉 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이 답은 대단히 선명합니다. 요셉 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무엇 때문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격이 한 단계 아래라고 보았고, 미개 민족이라고 여겼던 가나안의 한 부족을 그리도 극진히 환대하고 대우했을까요? 요셉의 7년의 풍년을 이용하여 7년의 흉년을 대비하는 기가 막힌 정책을 폈기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그것도 답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한 가지만으로 답을 제시하는 것은 부족합니다. 해서 저는 이렇게 외연을 확장하여 답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애굽 전역에 끼치고 있었던 요셉의 전 방위적인 선한 영향력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의 성품을 보더라도, 요셉이 갖고 있었던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 믿음을 보더라도 우리는 요셉이 얼마나 선한 영향을 애굽 전역에 퍼뜨리고 있었을는지 충분히 공감합니다. 단순히 위기를 극복함에 있어서 탁월한 리더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갖고 있었던 하나님 사람으로서의 인격적 영향력이 바로는 물론, 애굽의 전 정치인들에게 미쳤기에 그의 가족들에게 그런 파격의 대우를 하게 한 것입니다. 이제 후에 다시 살피겠지만 창세기 50장을 보면 대단히 감동적인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야곱이 147년의 연수를 마치고 죽음을 당했을 때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창세기 50:1-3절을 봅니다.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무슨 말입니까? 추측건대 애굽의 장례사들이 야곱의 시신에 향을 섞어 처리하는데 들어간 시일이 40일을 소요했다고 전합니다. 얼마나 야곱의 시신을 극진히 방부 처리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더불어 그를 장사하며 곡한 기간을 30일이라고 적시합니다. 누가 곡했습니까? 자녀들입니까? 아닙니다. 본문은 애굽 사람들이라고 보고합니다. 어떻게 요셉 당사자가 아니라 그의 부친인데 이런 극진한 예우를 보였을까요? 다시 강조합니다. 요셉 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애굽에 남긴 선한 영향력 때문입니다. 다른 설명으로 대체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단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이 그와 관계된 사람들에게까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 결정적인 자료가 오늘 본문입니다. 지금부터 24년 전인 2000년에 읽었던 이재철 목사의 메시지 북인 『비전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 글은 2000년 3월 29일-31일까지 장신대 신학대학원 신앙사경회에서 이재철 목사가 선포한 설교를 녹취한 책인데 당시 이 글을 읽다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4개의 설교 중에 마지막 설교인 ‘비전의 사람’이라는 챕터에 실려 있는 이제 소개할 글의 내용을 오늘 설교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하여 다시 한 번 상기해보려고 합니다. 20세기 초에 일본 기독교에서 갓 안수를 받은 나가노 목사는 가나사와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자신과 아내 그리고 아이 둘을 개척 멤버로 교회를 개척했는데 6개월이 지나도록 단 한 명의 교인이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가노 목사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5년을 지키며 사역했습니다. 5년이 지난 어느 수요일 저녁에 장막 커튼을 치고 한 청년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나가노 목사는 예배 시간에 최선을 다해 설교를 한 뒤에, 저녁 식탁공동체를 가족과 함께 나누며 식사를 하는데 갑자가 청년이 ‘욱’ 하고 피를 쏟았습니다. 폐병 환자였습니다. 순간, 나가노 목사는 갈등했습니다. 쫓아내야 하는가? 아니면 핏덩이를 쓸어내고 계속 밥을 같이 먹어야 하는가? 갈등하고 있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게 처음 보내준 내 사람이다.” 나가노 목사는 핏덩이를 치우고 음식을 가져다가 다시 식사를 했습니다. 이 청년은 우연히 복음을 접하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고 있던 유명 정치인의 사생아였는데, 폐병을 얻게 되자 학교에서는 정학을 당하고 다니던 교회에서는 파문까지 당했습니다. 자기에게 임한 공격과 수모로 인해 이 청년은 성경이 말하는 일체의 것들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교회와 신학교를 떠납니다. 그리고 자살을 결심합니다. 죽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한 지인에게 가나사와에서 사역하는 나가노 목사를 찾아가보라는 권면을 받고 방문했다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갖고 찾아갑니다. 그렇게 만나 수요 예배를 드리고 나가노 목사 가족과 식사를 하는 순간, 핏덩이를 쏟아낸 것입니다. 기막힌 상황이었지만 나가노 목사는 피를 닦아주고 다시 밥을 차려와 식사를 마쳤습니다. 그 순간, 이 청년은 위선적인 그리스도인 아닌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다시 변화됩니다. 이윽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합니다. 이후 그는 고베와 도쿄 지역에서 수많은 빈민들과 생을 같이 하는 헌신의 삶을 드리며 사역자로 변신했습니다. 빈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변비였습니다. 항문에 변이 차돌처럼 굳어져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허면 이 청년은 장갑을 끼고 손으로 변을 후벼냈습니다. 그것으로도 되지 않자, 자신의 입을 가져다가 혀로 변을 핥으며 녹여냈습니다. 그렇게 변비 환자들을 섬겼습니다. 이 쇼킹한 일이 소문이 나자 한 여론의 기자가 그를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까지 할 수 있습니까? 청년은 대답했습니다. “저는 배운 대로 합니다. 제 선생님은 제가 각혈한 핏덩이를 닦아 주셨습니다. 그분이 제게 하신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청년은 안수를 받고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중국에서도 빈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섬김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장개석 총통의 부인이었던 송미령 여사는 이 젊은 목사가 인도하는 성경공부에도 참여했고. 그가 행하던 사역을 지근거리에서 보면서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했습니다. 일본인들이 중국에서 철수할 때 민간인들은 테러의 제일순위였고 대상이었습니다. 헌데 200만 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이 철수를 할 때 단 한 명의 민간인들이 테러를 당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은 장개석 총통의 포고령 때문이었습니다. “철수하는 일본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는 중형에 처한다.” 왜 이런 포고령을 내렸는가? 전후 기간 동안 중국의 빈민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사역하며 섬겼던 단 한 사람의 젊은 목사에 대한 감사의 반응 때문이었습니다. 이 젊은 청년 목사의 이름은 빈민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가가와도요히꼬(賀川豊彦) 목사입니다. 제가 이 설교를 2000년에 들었고 읽었습니다. 24년이 지났습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 재조명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이 땅에도 나가노 목사와 같은 목회자가 있었다면, 가가와 도요히꼬와 같은 목사가 있었다면 산소 호흡기를 끼고 있는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적시되어 있는 요셉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온 애굽이 기뻐했고, 슬퍼했다는 본문 텍스트를 보면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부끄러움마저 없다면 산소 호흡기를 꼈어도 조만간 기계는 멈출 것임을 압니다.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여기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세상이 기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그 사람이 우리 교회에서 나오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세상도 기뻐하는 삶을 살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 희망이 될 수 있기에 말입니다. 결론)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다시 본문 16절을 읽겠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오늘 목회 현장에 있는 종과 설교를 듣고 있는 교우들 모두가 함께 새기고 또 새겨야 하는 레마입니다. 바로의 궁과 바로와 신하들(세상)이 도무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선한 영적 영향력을 미치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