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올 여름 나에게 있어 가장 관심이 향했던 곳은 어디였나요? | 경배와 찬양 (WORSHOP)● 찬송가: 만왕의 왕 내 주께서 (151장) ● 복음성가: 예수 피를 힘입어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 십자가의 은혜 ● 본문 : 골로새서 1:22 1)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의 사역의 3가지를 함께 말해보자. 마태복음 11장 5절, 이사야 35장 5-6장, 이사야 61장 1절 참고 |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무엇을 행하셨는가? 3) 적용하기 ⓵ 오늘 나에게 주어진 예배의 자리를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⓶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나누어 보자. ⓷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써 한 주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나누어 보자. | 사역하기 (WORK)※ 찬양하기 : 찬송가 부르기 ※ 얼음 깨기 나누기 ※ 찬양하기 : 복음성가 부르기 ※ 예배기도 : 맡은 이 ※ 말씀 증거와 문제 내용 나누기 ※ 주중 기도제목 중보하기 1) 가을 3/4분기 사역이 승리하도록 2) 다시 재개되는 지역 셀 사역의 승리를 위하여 3) 교우들의 삶이 힘들지 않도록 (건강, 사업, 가정 등등) 4) 군 복무, 대학 입학 준비, 피선교지 주의 사역자들을 위한 중보 5) 투병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하여 6) 담임목사의 목양을 위해 ※ 헌금 봉헌 ※ 헌금 기도: 셀 리더 ※ 피선교지 중보하기: 다 같이 ※ 폐회 : 주기도문
사역하기
1. 공예배 출석 독려하기 2. 아픈 교우들 손 잡아주며 격려하기 3. 힘들어 하는 지체들에게 중보 약속하기 4. 후반기 사역의 승리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기
| 설교요약 (SUMMARY)본론)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은 그 당시의 정말 획기적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들은 여기 나오신 모든 분들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다시 한 번 진하게 다가와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내려오셔서 집중하신 3가지가 있습니다. 가르치시며, 전파하시고,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으며, 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큰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단순히 말로만 가르치는 랍비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말씀의 가르침과 일(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셨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획기적인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있을 때, 세례요한조차도 감옥에서 그 소식을 듣고 그의 제자를 예수님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다가가자,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자신의 사역을 말씀하시며, 그대로 세례요한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5절입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님은 메시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있는 사실은 구약의 이사야서에 나온 하나님 나라의 회복의 사건들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35장 5-6절을 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계속해서 이사야 61장 1절이 말해줍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반응을 들었던 사람들이 내린 결론은 호산나였습니다. 오늘의 언어로 다시 말하면, “다윗의 자손이여 지금 구원하소서. 내일도 아니고, 모레도 아니고, 지금 구원하여 주옵소서” 즉, “예수님 지금 당장, 우리의 왕이 되어주십시오. 그리하여 지금 세상을 뒤엎어 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그들이 원하는 당장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달라는 반응과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이 예전에 호산나를 외치기 전에도 이러한 요청이 있으셨을 때 어떠한 반응을 보이셨는지 요한복음 6장 15절이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을 때에도 그들이 왕으로 삼으려 하자 오히려 산에 오르시는 모습, 그곳을 벗어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생각했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오늘 우리의 왕이 되어주소서, 이러한 백성들의 요구가 커질수록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해버리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람이 원하는 의미가 아닌, 하나님의 의미를 성취하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과 같은 예배의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오늘 예배 가운데 우리 각자가 기대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어떠한 기대를 가지고 예배에 나오셨을지 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각자 어떠한 기대와 소망이 있기에 은혜의 자리로 나온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 더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기대가 무엇인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감히 예측하거나, 예상하기 어렵겠지만, 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예배, 하나님이 받으실 예배,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국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게 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바람대로 반응하여 예수님이 그들의 왕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주님은 이 땅 가운데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왕은 언제나 영원하지 않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역사의 왕조는 결국에 멸망하며, 영원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잠시 이스라엘의 왕으로 계실 수는 있지만, 그런 인간의 모습으로의 통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던 부분은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것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자신의 삶의 가장 큰 목표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큰 목표를 둔 예수님의 마음가짐을 알 수 있는 본문이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읽고 우리의 마음 또한 이와 같이 다시 한 번 결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누가복음 9장 51절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그렇습니다. 예수님 또한 예루살렘으로, 호산나 호산나 외침이 들리는 상황 가운데 그 길을 가는 것, 십자가의 길을 가는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굳게 결심을 하셔야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살다보니, 어찌하다 보니, 길이 열리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굳은 마음과 굳은 결심을 가지고 걸어가야 합니다. 내 삶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려고, 주님의 뜻대로 걸어가려고 생각하신다면 우리는 편하게 생각하거나, 편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편하게 생각하셨다면, 그것이 큰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그저 신앙생활을 하면서 편하게 살아가려는 것이 나의 기대일 뿐이지, 하나님의 기대는 그게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려면 예수님 또한 굳게 결심하셔야 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마찬가지로 굳은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왜 굳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 하셨습니까? 우리가 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말하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방향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십자가 사랑이 예수님의 마음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럼 우리는 오늘을 사는 이 땅에 대해서 알아가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세상을 요한일서 5장 19절을 쉬운 성경을 통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이 세상은 악한 자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볼 때, 세상은 자연스러워 보이고, 여전히 좋은 세상인 것처럼 보이고 있지만, 성경은 이 세상이 악한 자의 통치 아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 현실, 이 세상의 신이라 불리는 사탄과 마귀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계속해서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이 세상의 통치자가 하는 행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쉬운성경으로 봅니다. “이 시대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악한 통치자들의 하는 일은 할 수만 있다면, 막을 수만 있으면, 그리스도의 영광과 광채를 늘 막아내고, 이 세상 가운데 복음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사람들을 미혹하여, 이 세상의 풍조와 자유의 미혹으로 인해 사람들을 살아가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유의 미혹 때문에, 내 마음대로 살아가고, 내 뜻대로 살아가고,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은 채, 내가 보기에 좋은 것, 내가 입기에 좋은 것, 내가 즐기기에 좋은 것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끝은 온갖 파괴됨으로 끝이 나게 됩니다. 처음엔 내 뜻과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게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파괴적인 것으로 끝이 나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세상 풍조의 자유가 아닌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해 이 세상의 자유를 심판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이 세대와 다른 믿음의 길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구별하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 왔고,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상의 풍조는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더 잘사는 길, 빨리 성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빨리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문화와 유행은 빠르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사실은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실만큼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망라하여 변하지 않고, 똑같이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시대, 문화, 상황, 모두가 다르지만 하나님을 배척하는 일들은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세상의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지는 것, 미련한 것,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켠의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선물로 보입니다.
결국, 양쪽으로 의견이 나뉠 때에는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한 쪽은 생명의 길이라 말하고, 한쪽은 멸망의 길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도,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갈라디아서 1장 4절에 나와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이 악한 자들의 통치 아래 있는 세상 속에서 주님께서는 이 악한 세대에서부터 건져내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예수 십자가의 은혜가 당연하게 느껴지고 또 뜨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그 십자가를 안고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을 올바르게 정해야 합니다. 여름 사역을 다 마친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노선정리를 올바르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오늘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무엇이 뛰어나서, 내가 무엇을 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늘 그분이 나를 붙잡고 계셔서, 나는 오늘 발버둥 치고 벗어나려 노력하는데, 주님이 나를 꽉 붙잡고 계셔서, 자격 없는 내가, 주님 앞에 속해있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음을 되새겨야 합니다. 오늘의 레마를 통해 우리는 다시 힘을 얻어야 합니다.
※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악함으로부터 날 건지신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그 분의 길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레마의 말씀을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은 확신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말씀 골로새서 1장 22절을 읽습니다.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오늘 본문말씀처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다는 그 확신을 우리는 오늘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거룩하지 않습니다. 흠이 많습니다. 상처투성이입니다. 결국 흠 없는 자는 우리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주님께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오늘 누구에게 속해있는 지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셀 사역 여름방학을 마치는 우리들이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의 무너져 내렸던 신앙을 다시 한 번 끌어올려야 합니다.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시 다잡이하여야합니다. 우리를 위해 악한 세대로부터 건지시려는 주님의 은혜를 다시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면서 계속해서 삶을 살아갑니다. 여전히 넘어질 수 있고, 무너져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리의 믿음은 과거에 얽매여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그 주님이 이 악한 세대를 따르지 않게 하시려고, 그 악한 세대 속에서 우리를 건지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러한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 때때로 오늘 내게 응답을 주시지 않더라도,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좋으신 그 주님을 날마다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다시 한 번 그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여, 날 살리시는 주의 은혜 때문에 주님을 날마다 진실하게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는 세인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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