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경배와 찬양 (WORSHIP)● 찬송가: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 복음성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 야곱의 가족 이야기 (2) ● 본문 : 창세기 30:1-8 1) 라헬이 세속적인 무리수를 두고 대리모를 통해 낳은 아들들의 이름과 그들의 이름의 의미는? ① 다섯 번째 아들과 그 아들의 의미 ② 여섯 번째 아들과 그 아들의 의미 |
2) 5-6번째 낳은 아들들을 통해 얻어야 할 반면교사의 영적 의미는? 3) 적용하 ⓵ 내 판단으로 사는가? 말씀의 판단으로 사는가? ⓶ 내가 이기기 위해 사는 것이 영적인 것인가? 세속적인 것인가? ③ 내 안에 있는 단과 납달리를 제거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 | 사역하기 (WORK) 1. 찬양: 셀 리더 교육 시간에 정해진 찬양 (복음성가, 찬송가 공히 한 곡 씩) 2. 아이스 브레이크 (얼음 깨기) 3. 기도: 인턴부터 시작하여 주마다 셀 원들이 순서 맡음 (철저하게 기도문을 준비할 것) 4. 나눔: 한 주간의 삶에 대한 나눔을 실시–미리 준비한 지체가 진행, 3-5분을 넘지 않게 한다. 5. 간증: 사역자가 있으면 실시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됨) 6. 말씀 증거: 수요일 저녁 예배 설교 피드백 7. 적용: 말씀에 비추어 한 주간 살아야 할 내용을 간단하게 제시. 셀 리더 교육 시간에 정해진 지침 진행 8. 중보기도 제목 ⓵ 선포된 태신자 섬김을 매뉴얼에 맞추어 신실하게 실천하기 ⓶ 5월 28일 성령강림주일에 내 셀에서 구원 받는 자들이 나오도록 ⓷ 세인 공동체가 2023년 구체적으로 부흥하도록 ④ 5월 9일 경로잔치 중보 9. 치유기도 : 합심치유기도 - 대상자 앞으로 초청 10. 헌금 및 헌금 기도 : 셀 리더 11. 축복기도 : 셀 리더
사역 내용
1. 지난 주간 제 1차 사역 점검하기 (태신자와 차 마시기) 2. 경로잔치 지원하기 3. 태신자 섬기기 2차 사역 철저히 실시 (태신자와 식사하기) 4. 22-27일 주간은 지역에서 열린 모임 진행하기 주간 셀 리더는 지체들과 상의하여 열린 모임 날짜를 정하여 지역 열린 모임으로 태신자 초청하기. 반드시 진행하기. 5. 5월 28일 성령강림주일 전도 축제에 태신자 초청과 구원을 위해 전심하여 기도하기 | 설교요약 (SUMMARY)본론)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야곱의 가정은 이런 면에서 출발 자체가 좋지 않았던 가정이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설교를 통해서 살폈듯이 레아와 라헬이라는 두 자매의 미묘한 관계 속에서 야곱의 가족은 출발하게 됩니다. 야곱은 본처인 레아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두 번 째 아내였던 라헬만을 사랑했습니다. 이 기구한 처지에 놓인 레아는 자녀들을 낳음으로 빼앗긴 남편의 사랑을 되찾으려는 필사의 노력을 경주합니다.
첫 아들 르우벤(보라, 아들이라)이 그랬고, 시므온(고통을 들으셨다.)도 매일반이었습니다. 셋째인 레위(연합하다.)는 레아의 속마음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넷째(유다)를 낳고서야 레아는 비로소 인간의 욕망이 덧없음을 나름 깨달게 되었음도 지난 강해를 통해 나누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반대편에 있었던 라헬의 심리적 구도를 알려주는 텍스트입니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남편의 첫 아내인 레아가 차지해야 할 사랑을 독차지한 부러울 것이 없는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이 라헬에게서 증명됩니다. 본문 1절은 라헬의 욕심을 보여주는 압권입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남편의 사랑 가지고는 성이 차지 않았던 라헬임을 알려줍니다. 남편의 일방적인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언니가 계속해서 남편의 자식들을 낳는 것을 보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 부아의 끝은 남편에게로 향했습니다. 본인이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이 마치 남편의 탓인 양 매도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택한 대단히 인간적인 술수는 자신의 몸종인 빌하를 남편에게 씨받이로 바쳐서라도 아이를 얻겠다는 어리석은 선택이었습니다. 본문 5-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야곱이 빌하에게서 낳은 아들들의 이름을 라헬이 ‘단’과 ‘납달리’로 지었습니다. ‘단’이라는 이름의 뜻은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라헬이 이렇게 판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알고 판단하여서 나에게 아들을 주셨다고 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판단을 한 것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일을 라헬이 자행한 것입니다. 아무리 당시 종이 소유물이라고 하지만, ‘단’의 어머니는 ‘빌하’이지 본인이 아닌데도 단지 언니에게서 느끼는 시기와 질투 한 가지 때문에 그렇게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라헬은 ‘단’이라는 아들 가지고서도 성이 차지 않았습니다. 언니 레아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쟁해서 지기 싫었던 라헬은 두 번째로 빌하로 하여금 씨받이가 되게 함으로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을 ‘납달리’라고 명명했습니다. ‘납달리’라는 이름의 뜻은 ‘겨룸’, 혹은 씨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참 어처구니없는 생각입니다. 수준이 이 정도면 사실은 대화 불가입니다. 라헬이 대단히 불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시녀이자 몸종이었던 빌하를 통해 낳은 두 아들에 대한 기사를 통해 오늘 우리들이 접해야 하는 영적 교훈을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 불신앙은 내 삶의 전반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알려준 라헬의 행태는 대단히 불신앙적인 행태였습니다. 본문 1절에서 그녀는 자신이 임신하지 못한 상태에 대해 대단히 불신앙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을 남편에게 행합니다. 오죽하면 오직 유일하게 사랑한 아내인 라헬에게 야곱이 보인 반응이 이러했겠습니까? 2절입니다.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무슨 말입니까? 나에게 죄가 없다는 에두름입니다. 성을 ‘냈다.’고 번역된 히브리어 ‘하라’는 얼굴이 빨갛게 붉어지는 상태의 흥분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풀면 대단히 격노한 상태라는 말입니다. 야곱이 격하게 표현한 분노의 원인 제공을 추적하다보면 단순히 라헬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를 남편에게 돌렸기 때문이라고 하기 보다는 라헬에 대한 불신앙적인 면이 더 컸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어떤 면에서 그럴까요?
야곱은 라헬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도전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2절을 복기하겠습니다.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유진 피터슨은 2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된다는 말이오? 내가 당신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기라도 했단 말이오.”
적어도 야곱은 자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전적인 선물임을 인식하는 믿음이 있었던 자였습니다. 하지만 라헬은 남편의 이런 믿음과는 달리 하나님에 대한 믿음 영역이 제로였습니다. 그러기에 남편이 이 정도까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세속적인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빌하’라는 대리모를 통한 아들 얻기라는 대단히 불신앙적인 술수를 택한 것입니다. 본문 3-4절입니다.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주목할 것은 하나님을 향한 나름의 신앙을 갖고 있었던 남편 야곱이 라헬의 불신앙적인 요구에 동의했다는 점입니다. 빌하에게도 들어가 아들을 낳게 되었다는 것은 오늘 본문을 읽는 저와 여러분에게 남겨주는 시사점이 매우 큽니다. 신앙의 사람도 불신앙의 사람과 함께 있으면 신앙의 길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위험에 노출됩니다. 신앙이 있었던 남편을 신앙이 없는 길로 인도한 장본인이 바로 라헬인 것입니다.
이런 불신앙적인 부정적인 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대리모로 낳은 두 아들의 이름 짓기를 보면 얼마나 라헬이 불신앙적인 여인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빌하를 통해 낳은 첫 아들 ‘단’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판단’이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라헬이 무엇을 판단했다는 말입니까? 본문 6절을 나누어 보십시다.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이럴 때 가끔 사용해야 하는 미국식 관용어가 바로 ‘O, MY GOD’입니다. 라헬은 하나님이 자신의 억울해 하는 마음을 보시고 판단하신 끝에 주셨기에 그 아들의 이름을 ‘단’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이런 오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아전인수식의 해석이 도대체 어떻게 가당키나 합니까? 또 다른 아들 ‘납달리’라고 이름을 지은 라헬의 행태는 점입가경입니다. 7-8절입니다.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자녀 생산을 시기하고 있는 언니를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믿었던 라헬은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순전히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한 의미를 하나님의 해석과 판단이라고 자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라헬을 향하여 유감스럽지만 저는 이렇게 정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헬은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불신앙의 여인이었다.’ 이렇게 불신앙적인 여인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던 여인이었던 라헬의 끝을 잠시 언급해 보겠습니다. 창세기 35:16-1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야곱의 막내아들 베냐민의 탄생을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라헬은 요셉을 낳은 후에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아들을 자기의 몸에서 생산하지만 막내를 낳을 때 그녀는 난산으로 인해 유감스럽게도 사망합니다. 그녀가 죽으면서 낳은 아들의 이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었는데 ‘베노니’라고 지었음을 알려줍니다. 번역하면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왜 아니 그러겠습니까? 세상에 태어나면서 어머니가 없는 아들이었으니 태어난 아들이 어찌 슬픔의 아들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아버지 야곱은 자기의 아내가 지은 막내의 이름을 ‘베노니’에서 ‘베냐민’으로 개명했다고 창세기 기자는 보고합니다. 번역하면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어머니가 지은 불행했던 이름을 아버지가 긍정의 이름을 바꾸어 준 것입니다. 이 구절을 접할 때마다 저는 의미 있게 본문을 해석하곤 합니다. 물론 해석의 다양성이 있기에 제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제 의견을 개진하곤 합니다. 라헬이 내 던진 한 마디가 그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해석입니다. 내가 자식을 낳지 못하면 죽어 버릴 거야! 그러나 저는 남편에게 협박성을 던진 이 한 마디에 묘한 해석의 뉘앙스가 느껴져서 이렇게 매치하곤 합니다. ‘자식을 낳기는 낳았지만 자식을 낳다가 죽은 라헬’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할 수만 있다면 긍정의 언어와 믿음의 언어를 생산해 내야 합니다. 이렇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간에게 사랑을 쟁취하여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외형적으로 승승장구하던 라헬이었지만 그녀의 인생은 행복하지 않은 인생이었다고. 그렇다면 다시 한 번 교훈을 상기해 보겠습니다. 라헬은 왜 이렇게 불행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은 무엇보다도 신앙 위에 서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을 우선순위로 채우는 가정은 결코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가정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야곱의 가족 이야기 두 번째 연구를 통해 결코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업체 심방을 하다가 본 상호 중에 가장 인상 깊이 보았던 액자가 있습니다. 그 액자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져 있었습니다.
GOD FIRST, OTHER SECOND, THIRD MYSELF
이 문구는 무엇보다 우리 세인 공동체 가정에 새겨야 할 문구입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바로 세워져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일 순위는 하나님이십니까? 만에 하나, 내가 내 가정의 일 순위라면 하나님의 복은 포기 하십시오. 당신은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라헬이기 때문입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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