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23년 3월 26일 (넷째 주) 지역 셀 사역2024-04-23 17:51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내가 추천하는 봄 꽃 관광지는?  

 
경배와 찬양 (WORSHIP)
● 찬송가: 목마른 내 영혼 (찬송가 309장) 
●  복음성가: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하셨습니다.
● 본문 : 창세기 28:10-15
1) 루스에 도착한 야곱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축복하신 내용은?
⓵ 약속: 창세기 28:13-14
⓶ 축복: 창세기 28:15  

2) 바울과 야곱 그리고 나에게 동일하게 행하셨던 주님의 일하심은?
⓵ 바울
⓶ 야곱
⓷ 나  

3) 적용하기
⓵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가치가 ‘조건’이 아닌 ‘은혜’임을 토론해 보자.
⓶ 창세기 28:15절을 경험한 간증들을 공유해 보자.
⓷ 사순절 다섯 번째 주간에 나눌 은혜가 있는 지체의 간증을 들어보자.  

 
사역하기 (WORK)
1. 찬양: 셀 리더 교육 시간에 정해진 찬양 (복음성가, 찬송가 공히 한 곡 씩)
2. 아이스 브레이크 (얼음 깨기)
3. 기도: 인턴부터 시작하여 주마다 셀 원들이 순서 맡음 (철저하게 기도문을 준비할 것)
4. 나눔: 한 주간의 삶에 대한 나눔을 실시–미리 준비한 지체가 진행, 3-5분을 넘지 않게 한다.
5. 간증: 사역자가 있으면 실시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됨) 
6. 말씀 증거: 수요일 저녁 예배 설교 피드백
7. 적용: 말씀에 비추어 한 주간 살아야 할 내용을 간단하게 제시. 셀 리더 교육 시간에 정해진 지침 진행
8. 중보기도 
⓵ 태신자 섬김에 최선을 다하고 그들에게 성령의 감동이 임하도록
⓶ 셀 원들의 기도 제목을 위한 중보
⓷ 세인 공동체를 위한 중보기도
⓸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위한 중보기도 
⓹ 맡겨준 태신자를 위하여
9. 치유기도 : 합심치유기도 - 대상자 앞으로 초청
10. 헌금 및 헌금 기도 : 셀 리더
11. 축복기도 : 셀 리더

사역 내용

1. 사순절 기간 다섯 번째 주간 사역 점검과 피정
2. 섬기는 피선교지 위해 합심 기도하기
3. 대 심방 기도로 준비하기
4. 4월 3-8일(고난주간) 특별 집회 시간 스케줄 확보하기 
5. 환우들을 위해 중보하기
6. 공 예배드리기 최선을 다할 것
7. 담임목사 목회 승리를 위해 중보하기  

 
설교요약 (SUMMARY)
본론) 형의 살해 위협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가는 야곱은 대단히 심란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계획대로 모사에 성공해서 결국 아버지의 축복까지 받기는 했지만 결국은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 그의 현실이었기에 말입니다. 야곱이 목적하고 가야하는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의 거리가 어림잡아 약 800km 나 되는 먼 거리였습니다. 그 거리를 도보로 가야하는 노정은 정말 힘들고 쉽지 않은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길을 떠나 약 90km에 위치해 있는 루스에  도착한 야곱은 해가 떨어져 그곳에서 하루를 묵기로 마음먹고 돌 하나를 가져와 베개를 삼고 잠에 들었습니다.  본문 12-15절은 그렇게 잠이 들었던 야곱이 꿈을 꾸었던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닥다리가 서 있는데 그 사다리의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 사닥다리를 이용하여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더불어 사닥다리 가장 위에 하나님이 서 계시는 것까지 목도했습니다.  야곱이 목도한 가장 충격적이며 감동적인 압권은 그곳에 서 계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점이었습니다.  본문 13-15절을 읽겠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도망자 야곱을 만나주신 하나님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약속하였던 축복의 계대가 너를 통해 이루어 질것임을 천명해 주셨습니다. 13-15절에 야곱에게 오셔서 두 번씩이나 반복하며 확인해 주신 메시지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야곱의 신분이 어떤 신분이었습니까? 도망자 신분입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 가서 어떤 일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답답한 신세입니다. 바로 이런 불투명한 미래를 목전에 두고 있는 야곱에게 오셔서 하셨던 이 두 마디는 야곱에게는 최고의 위로요 복된 약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재확인해 주신 약속이야 말로 최고요 최대의 위로였을 것은 자명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위로의 메시지도 감동적이지만 이보다 더 감동적인 것이 있어 오늘 수요 설교를 통해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 야곱에게 그렇게 하신 것처럼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당신의 사람들을 찾아오신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평신도 시절 때, 지금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이 명제가 얼마나 위대한 명제인지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신학을 공부하고 설교자가 되고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면서 오늘 교우들에게 전하는 이 명제보다 큰 기독교 신학의 은혜는 없다는 지식을 알고 나서 감격했습니다. 기독교 신학의 가장 위대한 정수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들을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더 큰 감동은 찾아오신 것도 은혜인데 주님은 매시, 분, 초마다 오늘도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교 중에 신앙의 대상자가 신앙을 추구하는 객체에게 찾아오는 하강의 종교는 없습니다. 기독교만이 유일합니다. 오늘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에게도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을 찾아가신 하나님은 예외 없이 야곱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의 현실은 위기 그 자체였습니다. 축복권을 빼앗았다고는 하나 그 축복의 내용이 무엇인지 야곱의 현실에서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그 축복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창세기 27:27-29절을 복기해 보십시다.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 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삭이 야곱에게 이렇게 축복했지만 루스에 도착한 야곱의 현실은 아버지의 축복이 1%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냥 홀로 도망해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아버지가 축복의 핵심으로 선포했던 야훼 하나님이 야곱에게 오신 것입니다. 오셔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야곱이 무언가를 종교적으로 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냥 잠을 자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야훼 하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십니다. 정말로 감동의 감동을 받게 하는 대목은 야훼  하나님이 야곱을 위시하여 오늘은 나에게 찾아오신 것이 ‘먼저’였다는 사실입니다. 요한 장로가 선언한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모든 종교의 기저에는 ‘∽ 때문에’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기저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기에 요한 장로의 말이 뼛속 깊이 체감되는 것입니다. 바로 ‘먼저’의 사랑과 찾아오심입니다. 주님이 야곱을 먼저 찾아가신 이유는 그가 사기꾼 기질로 어머니와 공모하여 형의 축복권을 빼앗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훼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주님이 먼저 나를 찾아오신 것은 나의 공로나 자격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내가 자격이 없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신 그 이유 때문에 나를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로마서의 한 대목은 감동의 압권입니다. 로마서 5:6-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아직’이라는 단어는 자격을 요구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부사입니다. 결국 자격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을 찾아가셨고, 나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로 로마서 5:6-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더 없이 알맞은 때에 오셔서 이런 일을 이루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다 준비되기까지 기다리지 않으셨고, 지금도 그러하십니다. 우리가 너무 약하고 반항적이어서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그때에, 그분은 자기 자신을 이 희생적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설령 우리가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갈팡질팡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을 위해 대신 죽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선하고 고귀한 사람을 보면 우리 안에 그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도 일어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아무 쓸모가 없을 때에 당신의 아들을 위해 희생적 죽음을 내어주심으로, 그렇게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사랑을 아낌없이 내놓으셨습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의 번역을 읽다보면 울컥하게 하는 감동의 여운이 진하게 남습니다. 왜 그럴까요?
밑줄 그은 구절에서 우리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야훼 하나님은 나의 완벽한 조건을 기대하지 않으시고 나를 찾아오셔서 나를 위한 당신의 일을 행하셨다는 점입니다. 조준모 형제가 부른 복음성가에 담겨 있는 가사처럼 정말로 주님은 나의 자격 조건을 보시지 않고 나를 사랑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네가 다른 사람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네가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너를 못 잊어하고 사랑하는 까닭은/내가 너를 영원히 사랑함이라
내가 너를 사랑하고 영화롭게 하는데/누가 너를 정죄하리요 욕되게 하리요
아무도 너를 만질 수 없음을/내가 너를 사랑함이라
내가 너를 사랑하고 영화롭게 하는데/누가 너를 정죄하리요 욕되게 하리요
아무도 너를 만질 수 없음을/내가 너를 사랑함이라 

  어제 성서일과 텍스트로 사도행전 9장을 보았습니다. 바울 사도가 경험한 다메섹 도상에서의 엔카운터가 텍스트의 내용이었습니다. 바울이 회심한 이 사건의 정황을 보면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당시 사울의 종교적 정황을 누가는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사도행전 9:1-2절입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의 종교적 정황은 바르지 못한 열심이었습니다. 이렇게 바르지 못한 열심을 내는 자는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한 자는 상식의 관점에서 볼 때 내치거나 심판을 행하심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놀라움이 무엇입니까?

  이런 바울을 주께서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사도행전 9:3-5절을 이렇게 보고합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자격은 고사하고 핍박자에게 까지 찾아오신 주님을 사도행전은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행하신 이유는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나오셔서 예배하는 지체들도 매일반입니다. 여러분 중 그 누구도 100점 만점에 커트라인인 60점을 받았기에 구원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으름장이나 협박성 발언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야곱에 비해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은 ‘나’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나를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바울 되게 하신 것처럼,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신 것처럼 야훼 하나님은 나를 그리스도인 되게 하셨습니다.

  1987년에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전도사 사역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꼭 36년째 성직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서 나를 목사로 세우셔서 하나님이 득을 보셨을까, 아니면 후회를 하셨을까 진솔하게 내면적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겸손을 가장한 교만의 모습이 아닌 진정성이 있는 답을 던진다면 후회하심이 더 많으셨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나름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추측하다보면 참 많이 힘들고 괴롭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36년을 목회자로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사역을 마칠 때까지 강단을 지키며  목회자로 생애를 마감할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져보며 오늘 본문 설교를 내게도 적용해 봅니다. 나는  목회자로 끝까지 잘 갈 수 있을까? 답을 이렇게 던져 봅니다. 자격으로 저울을 달아본다면 언감생심 그럴 수 없습니다.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자격을 보지 않으시고 먼저 사랑하셨던 그 사랑을 계속해서서 행하실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저는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들어가 봅니다. 자격 없는 야곱에게 오신 야훼 하나님께서 이렇게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5절을 다시 읽고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야곱에게 먼저 찾아오신 야훼 하나님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주님이심을 믿고 먼저 사랑해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사순절 네 번째 주간 남은 3일도 이 사랑을 기초로 승리하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