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출간된 故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제목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 운명을 말하는 거다. 지난 주, 추석 명절 연휴 기간에 아들 내외가 인사차 내려왔다. 아들이 혼자였을 때 제천에 내려오면 무덤덤해 하던 아내가, 짝을 지어놓고 난 뒤부터는 하나가 아니라 이제는 둘이 내려와서 그런지 며칠 전부터 대단히 긴장한다. 딱히 뭐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데 그렇다. 나는 거실 화장실을 거의 쓰지 않는 편이다. 안방 화장실이 내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의’ 쓰지 않지만 ‘종종’ 쓰기도 하기에 거실 화장실의 분위기 정도는 안다. 언제나 거의 정신병적인 수준으로 아내가 꼼꼼히 청소하는 곳은 화장실이다. 평소에도 잘못하면 미끄러질 정도로 청결한 수준을 만들어놓는 곳이기는 하지만, 지난 주 거실 화장실에서 세면을 하고 수건을 꺼내기 위해 수납장을 열었다가 웃펐다. 그곳에는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던 새 수건들로 세팅되어 있었다. 며느리를 위한 배려였다. 아들이 총각일 때 사용했던 방에 침대가 있다. 그곳에 있는 침대는 그때부터 더블이다 보니 크기가 있다. 아들 내외가 내려온다는 공포스러운 이야기가 들리면 무조건 침대와 베개 커버는 의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게 우리 집의 내규다. 나는 아들 내외가 자야 하는 처소까지 신혼 부부 룸으로 바꿔주어야 하는 운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더불어 아들 내외가 내려오기 전까지 우리 가정은 마치 대 심방을 준비하는 교우 가정처럼 집을 뒤집어 놓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아내에게 핏대를 세우면서 볼 멘 소리를 하지만 들은 척도 안 한다. 장보기는 전공 선택이다. 피할 길이 없다. 한번 장을 보고 왔는데 미처 사오지 못한 게 있으면 열 번도 간다. 나는 아들 내외를 위한 운전수가 되었다. 이게 내 운명이다. 장가가기 전에 간 한 번도 자기 엄마에게 음식을 떠 준 적이 없는 아들놈이 아주 가끔 엄마가 손에 파스 붙여가며 만든 음식을 며느리 입에 떠 넣어주는 것 볼 때 속에서 불이 올라온다. 며느리는 어른들 앞이라고 제발 그러지 말라 하는데 요지부동이다. 아주 오래 전, 박조준 목사께서 설교 중에 손자, 손녀들이 명절에 인사를 오면 딱 30분만 좋다고 농하던 말을 듣고 웃었던 적이 있었다. 진짜 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결혼한 지 이제 불과 6개월 밖에 안 되었는데 아들 내외가 내려온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딱 30분만 좋다. 아들내외를 지극히 정성스럽게 섬기고 보낸 뒤, 시어머니는 그날부터 파스를 달고 산다. 밤에 끙끙거리며 앓는다. 아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다가 이제는 아들 내외를 위해 또 다른 희생적인 삶을 보이는 여자와 살아야 하는 게 내 운명이다. 멀지 않은 날에 두 명이 아니라 세 명, 네 명이 내려올 텐데 눈앞이 캄캄하다. 그놈이 내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는다. 아들이 걸어야 할 사역을 생각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잠에서 깬다. 그 길을 같이 걸어야 할 며느리를 생각하면 애틋하고 짠하기 그지없다. 그러고 보면 나는 죽을 때까지 목회를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보다. 그런데 진짜로 해석 불가한 일이 있다. 그 웬수들이 왜 또 보고 싶은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