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회 일기를 씁니다. ‘목양터의 이야기 마당’이라는 A₄ 용지 1장의 2/3 분량이 되는 글입니다. 이렇게 쓴 글은 주보의 한 면을 담당하는 역할을 해주고, 제 개인 SNS에 공유해서 나누기도 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줍지 않게 쓴 목회 칼럼의 글들을 모아 파일에 담았는데 이 글이 담길 페이지 숫자가 3,780p를 가리키고 있으니 적지 않은 분량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2년 전, 지인들이 칼럼의 내용들을 묵히지 말고 책으로 출간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유혹에 솔깃하여 ‘시골목사의 목양심서’ (동연 간)라는 이름으로 부끄럽지만 세상에 내놓기도 했습니다. 칼럼 쓰기 덕분입니다. 뒤돌아보면 목양터의 이야기 마당에 글을 쓰면서 내게 임한 보너스는 너무 많습니다. 그 중에 단연 돋보이는 복은 치열한 목회자로 살게 해 주신 주군의 은혜입니다. 표현 자체가 적절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칼럼을 매주 쓸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서 지체들과 함께 울고 웃는 부대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목회의 필드에서 목사로서 한 눈 팔지 않고 걸었다는 방증(傍證)이기도 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칼럼을 쓸 수 있는 내용이 없는 목회,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 30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보너스는 자연스러운 글쓰기 훈련이었습니다. 저는 286 컴퓨터를 사용하기 전부터 설교를 준비할 때, 철저하게 원고 설교를 해왔습니다. 노트에 기록한 수기 원고 노트가 서고의 5칸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 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약 10p 분량으로 만든 젊은 시절의 설교 원고를 지금 펼쳐보면 헛웃음이 나옵니다. 이것도 설교라고 준비했나싶어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부터 시작한 원고 작성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수훈갑은 바로 칼럼 쓰기였던 것 같습니다. “자면서도 글을 씁니다.” (조정래, “황홀한 글 감옥” 시사 IN 북스, p,396) 어떤 사람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나무라겠지만 작가 조정래가 이렇게 말했을 때, 왠지 저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목회 칼럼을 쓰기 위해서는 한 주간 목양의 현장에서 사역하는 목사로서 긴장하며 교회를 섬기는 것은 기본, 사유하고 성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자면서도 사유해야 하는 것은 목사의 운명입니다. 목회 칼럼 쓰기는 단지 글을 다듬는 훈련의 방법이기도 했지만, 사유와 성찰이라는 마음의 글쓰기에 집중하도록 견인한 선생님의 역할도 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목회를 마치는 날, 아니 내 삶을 마감하고 주군 앞에 서는 날에 목양터의 이야기 마당에 쓴 글들은 소풍 마치고 주님께 보고할 아주 자그마한 보고서(assignment report)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서재에서 바라본 예비일 제천시내는 자욱한 안개로 점령되어 있습니다. 아마 오늘, 날씨는 무척이나 쾌청할 듯합니다. 내일 맞이할 주일에 교우들의 기상도도 이렇게 쾌청하기를 화살기도 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