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느린 걸음으로 걷다.2024-04-17 17:50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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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걸음으로 걷다.

 

지지향(紙之鄕)에서 수요일부터 휴가를 지냈습니다얼마 전동기 모임 때 친구 목사가 말해준 파주에 있는 북 카페 게스트하우스였습니다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곳에서의 머묾은 저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선물해 주었습니다휴가의 절정기도 끝났기에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않은 여유로움이 있었고눈앞에 펼쳐진 하늘은 8월의 끝자락이었지만 성큼 가을 하늘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푸르렀습니다무엇보다도 말 그대로 북 게스트 하우스이기에 로비에 세팅되어 있는 엄청난 도서 진열대는 저를 황홀하게 할 정도로 압도했습니다조용하다 못해 적막함의 기운까지 감도는 대한민국 최대 출판 단지 안에 조성된 북 카페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쉼은 그 동안 휴가 때면 방문했던 여느 휴가처와 달리 너무도 행복한 여운을 남겨 주었습니다.

휴가처에서 얻을 수 있었던 최고의 행복은 느림의 미학이었습니다게스트 하우스의 모든 것은 아날로그적이라 행복했습니다오랜만에 텔레비전이 없는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했습니다책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즈넉함을 만끽했습니다휴가처에 가지고 간 책들이 있었지만 왠지 게스트하우스에 진열되어 있는 책 중에 하나를 읽지 않으면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손에 잡힌 책을 읽었습니다.

여행 작가 김준희가 쓴 오래된 길우즈베키스탄을 걷다실크로드 1200㎞ 도보 횡단기

그의 글을 읽으면서 마치 그가 걸었던 느림의 여행지에 나 또한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흠뻑 빠져 독서의 기쁨을 누렸습니다무엇보다도 그가 쓴 여행기에서 왜 걸어야 하는지걷는 동안 얻게 된 하늘의 은총이 무엇인지를 공유하면서 행복했습니다.

모든 여행은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여행이라는 말도 아마 그런 맥락일 것이다여행하면서 발견하는 것들은 새로운 문화와 풍광이 아니라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자신의 또 다른 모습들일 것이다내가 걷는 이 길도 타슈켄트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드리워져 있던 나 자신의 색다른 이면으로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p,179.)

나 자신의 색다른 이면으로 가는 길

기막힌 성찰로 받아들였습니다헬레나 노르베르 호지가 오래된 미래에서 라다크가 결코 문명이라는 법제화되어 있는 폭력에 의해 피폐해지지 않고 영원히 그들만이 간직하고 있는 보물 중의 보물인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로 영속되기를 기대했습니다묘한 것은 나 또한 휴가처에서 느리게 걷는 여행을 경험하면서 그 느림의 여행이 결국은 목사로서 살아가야 하는 오래된 미래’ 라는 정로(正路)에서 나를 이탈하지 않게 하는 무기가 아닐까 하는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금년 여름휴가는 저에게 가볍게 잊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계 일본 작가인 쓰지 신이치가 이렇게 말했던 것을 노트에 담아 놓았는데 오늘 글쓰기에 적합한 것 같아 소개합니다.

슬로 라이프의 첫 걸음은 산책을 되찾는 일이다.”(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디자인 하우스,p,21.)

이번 여름휴가는 산책을 되찾은 느낌이 강한 여행이었습니다돌아오며 생각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느린 걸음의 여행을 지속하겠다고.”

가을 하늘은 언제나 푸르러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