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걸음으로 걷다. 지지향(紙之鄕)에서 수요일부터 휴가를 지냈습니다. 얼마 전, 동기 모임 때 친구 목사가 말해준 파주에 있는 북 카페 게스트하우스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곳에서의 머묾은 저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휴가의 절정기도 끝났기에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않은 여유로움이 있었고, 눈앞에 펼쳐진 하늘은 8월의 끝자락이었지만 성큼 가을 하늘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푸르렀습니다. 무엇보다도 말 그대로 북 게스트 하우스이기에 로비에 세팅되어 있는 엄청난 도서 진열대는 저를 황홀하게 할 정도로 압도했습니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함의 기운까지 감도는 대한민국 최대 출판 단지 안에 조성된 북 카페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쉼은 그 동안 휴가 때면 방문했던 여느 휴가처와 달리 너무도 행복한 여운을 남겨 주었습니다. 휴가처에서 얻을 수 있었던 최고의 행복은 ‘느림의 미학’이었습니다. 게스트 하우스의 모든 것은 아날로그적이라 행복했습니다. 오랜만에 텔레비전이 없는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했습니다. 책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즈넉함을 만끽했습니다. 휴가처에 가지고 간 책들이 있었지만 왠지 게스트하우스에 진열되어 있는 책 중에 하나를 읽지 않으면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손에 잡힌 책을 읽었습니다. 여행 작가 김준희가 쓴 ‘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실크로드 1200㎞ 도보 횡단기’ 그의 글을 읽으면서 마치 그가 걸었던 느림의 여행지에 나 또한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흠뻑 빠져 독서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쓴 여행기에서 왜 걸어야 하는지, 걷는 동안 얻게 된 하늘의 은총이 무엇인지를 공유하면서 행복했습니다. “모든 여행은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여행이라는 말도 아마 그런 맥락일 것이다. 여행하면서 발견하는 것들은 새로운 문화와 풍광이 아니라,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자신의 또 다른 모습들일 것이다. 내가 걷는 이 길도 타슈켄트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드리워져 있던 나 자신의 색다른 이면으로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p,179.) ‘나 자신의 색다른 이면으로 가는 길’ 기막힌 성찰로 받아들였습니다.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가 ‘오래된 미래’에서 라다크가 결코 문명이라는 법제화되어 있는 폭력에 의해 피폐해지지 않고 영원히 그들만이 간직하고 있는 보물 중의 보물인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로 영속되기를 기대했습니다. 묘한 것은 나 또한 휴가처에서 느리게 걷는 여행을 경험하면서 그 느림의 여행이 결국은 목사로서 살아가야 하는 ‘오래된 미래’ 라는 정로(正路)에서 나를 이탈하지 않게 하는 무기가 아닐까 하는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금년 여름휴가는 저에게 가볍게 잊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계 일본 작가인 쓰지 신이치가 이렇게 말했던 것을 노트에 담아 놓았는데 오늘 글쓰기에 적합한 것 같아 소개합니다. “슬로 라이프의 첫 걸음은 산책을 되찾는 일이다.”(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디자인 하우스,p,21.) 이번 여름휴가는 산책을 되찾은 느낌이 강한 여행이었습니다. 돌아오며 생각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느린 걸음의 여행을 지속하겠다고.” 가을 하늘은 언제나 푸르러서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