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에 대학에 입학하여 4개월 남짓 캠퍼스에 나갔습니다. 막 중간고사를 준비하려는 즈음, 대학 당국에서 대자보에 검은 글씨로 휴교령을 알리는 공고가 떴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흑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습니다. 당시 같이 공부하던 동기가 한 동안 보이지를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방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려 왔습니다. 당시 동인천역 근처는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는데 그곳의 80년 봄에는 대학 교련복을 제대로 입고 다니지 못하던 쓰라린 아픔이 생생합니다. 모든 사상이 통제되던 말 그대로 ‘1984’ 에 등장하던 괴물인 한국판 빅브라더에 의해 통치되던 무서운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2018년입니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오늘입니다. 38년 전과 비교해 보면 오늘은 얼마나 자유롭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인지 모릅니다. 피로 지켜낸 대한민국의 민주화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합니다. 저는 오늘이 그 때보다 더 무서우니 말입니다.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소름끼치게 무섭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80년대는 그래도 상록수의 노랫말처럼 끝내 이기리라는 희망이라도 꿈꿀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서럽고 쓰리던 날이지만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며 나아가면 끝내 이길 것이라는 소망이라도 그때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길 것이라는 소망보다도 어디까지 죽일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에 소름이 끼치도록 더 무섭습니다. ‘다름’은 ‘다름’이지 나쁜 것이 아니라고 수없이 많은 지성들이 외치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집의 집합체들이 그 다름을 반드시 척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가 바로 오늘이기에 오싹합니다.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인터넷은 오늘날의 빅브라더입니다. SNS는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의 부하들이자, 프리모 레비가 말한 대로 가장 잔인한 카포들입니다. ‘다름’ 이라는 객체에 대하여 이 괴물들은 반드시 응징합니다. 더불어 그 응징 이후 확인사실까지 합니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요즈음은 글쓰기가 두렵습니다. 글을 써야 하는데 가장 상식의 글을 써도 그 글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합니다. 이 공격은 좌우의 예외가 없습니다. 지성과 비지성의 구별도 없습니다. 신앙의 유무도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한번 타켓이 되면 실체의 규명에 상관없이 이미 그 대상은 치명상을 입어 재기 불능이 됩니다. 몇 주 전, 난민에 대한 일고(一考)를 밝혔습니다. 한 세미나를 섬기면서 탈 교회시대의 선교적인 대안에 대한 목회자로서의 나름의 몸부림도 피력했습니다. 더불어 이타적인 교회 공동체의 사역의 소회도 공유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름의 사람들에 의해 참 견디기 어려운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자와 산 자의 부활을 복음주의 권에 있는 목사로서 신앙의 고백에 따라 전했습니다. 공개된 글에 대하여 아직도 성경에 기록된 방식의 부활론을 믿는 아둔한 목사라고 폭격을 당했습니다. 그 고통은 당해 본 사람들만이 아는 고통입니다. 이런 공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사람들이 우울의 모드를 경험한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될 정도였습니다. 지인들 중에 많은 생각 있는 사람들이 해서 인터넷을 끊나봅니다. 외롭지만 SNS와 결별하나 봅니다. 아마도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사는 시대는 정말로 무서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나도 SNS와의 단절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갈등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19:28) 이래저래 고통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