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골이 아파요!” 지난 주간, 침 치료를 받는 한의원에 들렸다가 옆 베드에 누워 있는 80대 즈음 되어 보이시는 어르신 두 분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건져 올린 말입니다. 통상 ‘속이 아파요!’ 와 ‘골이 아파요!’는 가끔 듣는 말이지만, 속골이 아프다는 표현은 참 생소했습니다. 어르신 중 한 분이 하신 말을 듣다가 생뚱맞은 생각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속골이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전두엽?, 후정엽, 측두엽? 그것도 아니면 소뇌일까? 그러다가 이렇게 나름 결론을 맺기로 했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다.” 80년 삶을 산 이 땅의 어르신들 중에 속골이 안 아프신 분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뇌 과학에 문외한이라 그 위치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그 의미는 자식으로 살아온 자로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엿듣다가 저는 속골이 아프다는 어르신의 말에 심정적으로 그 속골의 위치를 이렇게 정하기로 했습니다. 속골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그렇다면 속골이 아프다는 것은 마음이 아픈 것이겠지요. 대한민국의 치열했던 근현대사를 목도하면서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옳고 그름은 따지는 것은 사치였고, 다만 자식들 굶기지 않는 것이 최우선사(最優先史)였던 삶이었기에 허리를 띠를 졸라매야 했던 어르신들은 몸을 돌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나처럼 못 배운 것 때문에 무시당하는 삶을 자식한테만큼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비장한 일심으로 소 팔아, 땅 팔아 자식에게 올인 했던 부모들이기에 노후를 대비할 틈이 없었던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소위 자기 자신의 출세를 위해 고향을 등지고 부모를 버렸던 최초의 세대입니다.” 이재철 목사께서 쓰신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에 나오는 국문학자 김열규 교수의 글 인용에서 보는 것처럼 속골이 아프신 분들은 그렇게 자식들에게 배신당한 어르신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배신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식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돌보다보니 골병이 들 수밖에 없는 지경이기에 그 어르신은 한의원에 와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원장님, 속골이 아파요!” 원장이 최선을 다해 침을 놓고 치료를 하지만 저는 속으로 이렇게 결론을 맺었습니다. “저 병은 이 땅에서의 호흡이 끝나야 낫는 병이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의학적, 한의학적 임상 치료는 의사들이 하겠지만 어떻게 평생의 한을 짊어지고 난 뒤에 온 속골이 아픈 것을 한 번의 침으로, 한 번의 약물로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주간, 이제 하나님이 부르실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이모님의 병상에 도착하여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서 고통 중에 계신 이모님을 붙들고 이렇게 기도해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발 빨리 부르시옵소서! 그것이 하나님이 이모님을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근래, 하나님께 사랑하는 자들을 많이 보내서 그런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점잖게 기도가 나가지를 않습니다. ㅎㅎ. 가정의 달을 맞이한 차제에 이 땅에 존재하시는 속골이 아프신 일체의 부모님들에게 엎드려 절을 드리며 한 마디 사족을 남겨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두를 존경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