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참 좋습니다.
제천에 친구들이 왔습니다. 인천에서, 부천에서 최선을 다해 사역하고,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목사, 교수 친구가 반갑게 찾아 왔습니다. 조금 늦은 시간인데도 보고 싶어 찾아왔다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아무리 개인차로 이동하는 시대라고 해도 부천, 인천에서 제천은 상당히 먼 거리인데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친구들이 눈물 나게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함께 모여 수다 떨기, 신변잡기 이야기하기, 추억 나누기 등등으로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너무 귀하고 행복했습니다. 제천에 친구들이 또 찾아왔습니다. 서울에서 건실하게 목회하는 친구 목사들이 바쁜 시간들을 내서 찾아왔습니다. 왜 왔냐고요? 그냥 보고 싶어서 왔답니다. 이것보다 더 분명한 이유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찾아 온 친구들에게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따뜻한 밥 한 그릇 사 주는 것, 그리고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 같이 수다 떠는 것이었습니다. 그리 긴 만남은 아니었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헤어지면서 아쉬워하는 것이 이제 50대 후반을 사는 친구들인데도 가능한 걸 보니 친구 좋음이라는 정서가 나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됩니다. 이제는 사역은 내려놓았지만 노동의 현장에서 정말 귀한 땀을 흘리며 또 다른 일상에서 사제 역할을 감당하는 친구가 천안에서 제천까지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도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때때마다 나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내가 정글 같은 목회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항상 응원해 주는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친구는 지금 15층 옥상과 망루에 올라 방수 작업과 도색 작업을 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삶의 현장에서 또 다른 치열한 땀 흘림 때문에 주변을 살피기가 쉽지 않은 데도 언제나 부족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있는 참 좋은 사람입니다. 역시 찾아온 친구에게 보답할 수 있는 저의 인사는 따뜻한 식사 한 끼 대접하는 것이 전부인데 그럼에도 교제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친구가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9년 전, 섬기던 직전 교회에서 짐을 쌓았을 때 친구들이 무척이나 안타까워하며 애석해하던 친구들이 이제는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제천을 찾아옵니다. 만나면 수고를 서로 격려하고 짓궂게 장난도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찾아온 친구들에게 아픈 이야기가 아니라 희망찬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줄 수 있는 것이 있기에, 그리고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기에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의미 있고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소박한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친구들이 건강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제 60을 바라보는 때가 되어서 그런지 만나면 건강에 대한 이야기도 메뉴 중에 하나로 등장했습니다. 해서 화살기도를 드리곤 합니다. “하나님, 친구들이 섬기는 교회, 현장, 학교에서 대과(大過) 없이 사역 잘 마치고 훗날 주군으로부터 ‘애썼다.’ 고 칭찬 받는 나날 되게 하옵소서.” 이번 달에도 아직 두 번의 친구들과의 만남이 예약(ㅎㅎ)되어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따뜻한 핸드드립 커피를 대접하려고 합니다. 이 커피에는 프리마가 첨가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정이라는 사랑이 프리마를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공자의 말은 정말로 정답입니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