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에 간접적으로 경험한 일들이지만 그래도 나름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아 기쁨을 느끼게 해 준 일들이 있었습니다. 새 생명 교회에서는 서부동 관내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진료를 계획하여 의료 봉사로 섬겼습니다. 성리 교회는 매년 서부동 동장 협의회와 연합으로 어버이날을 즈음하여 실시하는 관내 어르신 초청 경로잔치를 열어 저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너무 귀한 일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부활주일을 기점으로 관내 차 상위 계층 한 가정을 선별해서 낙후된 집을 수리하는 사역을 지금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공교롭게 세 교회들이 근 몇 주 동안 행한 일들이 교회내적인 섬김이 아니라 교회 외적인 섬김에 집중하였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주 오래 전 신학교 시절, 작가 이청준님의 ‘당신들의 천국’ 을 접했을 때는 한국교회가 그런 대로 잘 나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신학생 신분이었던 저에게 교회 공동체의 그림자로 앞으로의 세대들에게 그려질 내용을 소설에서 보았다면 너무 논리적으로 큰 비약을 한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그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뇌리에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불행히도 오늘의 교회 공동체에서 참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들만의 리그를 치른다는 비판이 이제는 극에 달한 상태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저 또한 이 비판의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프지만 인정할 것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틀 안에서 그래도 소박한 꿈을 꿔 보는 것이 있다면 북한의 노동당에서 기가 막히게 만들어내는 거창한 슬로건의 문구처럼 요동치는 그 무언가를 당장이라도 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교회가 눈에 보이는 이웃의 아픔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 그래도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들만의 천국을 이루어간다고 교회의 일들을 폄훼하는 고난의 시대에서 삶과 행동으로 교회를 방어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리 교회에서 실시한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 새 생명 교회에서 세밀하게 주민들을 살핀 무료 의료 봉사에 대하여 그래서 저는 큰 박수와 응원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더불어 우리 세인교회는 당연히 우리들의 이웃 사랑의 몫을 감당하여 거창한 여론 플레이식의 보여주기가 아니라 주님이 이 땅에서 행하셨던 일들을 조금이라도 따라가는 행복한 나눔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주님의 말씀이 큰 공명으로 울리는 것은 5월이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계절이기를 소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태복음 25:3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