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북스에서 발간한 ‘나는 누구인가?’ (부제: 인문학 최고의 공부)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석학이자 인문학적인 접근을 통해 많은 도움을 주는 7명의 학자들의 강의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정리한 글들입니다. 내용 중에 세계적인 석학 슬라보예 지젝의 일갈이 눈에 띠었습니다.
“진정한 지식인은 다른 사람이 정해 놓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올바른 접근법이 맞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p.198)
체크리스트를 하고 그 다음 학자인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최진석 교수의 글을 맞닥뜨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사람이 죽기 전까지 버려서는 안 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신뢰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사랑이다. 이 두 가지는 죽는 순간까지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pp.228-229)
글을 읽다가 지젝의 말대로 의문을 제기해 봅니다. 최 교수의 설파에 대하여 후자에 대한 접근은 이성적 공감이 됩니다. 해서 힘들겠지만 노력하는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나 또한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목사인 내가 철학자와 함께 할 수 갈 수 없는 대목이 바로 전자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결코 믿지 못합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면피성 발언이나 겸손을 가장한 위선적 토로가 아닙니다. 날이 갈수록, 달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나는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실감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에게 신뢰를 보낼 수가 없습니다. 해서 터득한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 말고는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그 답이 이미 나와 있기에 글을 소개함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괴테는 파우스트의 서곡에서 이렇게 메피스토펠세스의 독백을 소개합니다.
“인간들에게 이성만 없었다면 인간은 재미와 쾌락을 즐기며 잘 살 수 있었을 텐 데 하나님이 천상의 빛인 이성을 인간에게 주어 그것을 가슴에 지니고 살게 되었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인간들은 이성이라고 부르는 도구를 사용하여 짐승들보다 훨씬 더 짐승답게 사는 데 사용하고 있다.”
기막힌 통찰력이 아닙니까? 인간이 짐승보다도 못하게 이성을 사용하는 죗성 때문에 나는 나를 결코 믿지 못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결론입니다. 최진석 교수의 글에 반기를 듭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신뢰입니다.”